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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4

롱 워크 - 스티븐 킹 / 송경아 : 별점 2.5점

롱 워크 - 6점
스티븐 킹 지음, 송경아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레이 개러티는 "롱 워크" 대회에 참가했다. 100명의 도전자가 몇 가지 조건에 따라 걷기 시작하여, 끝까지 살아남은 단 한 명이 우승하여 모든걸 거머쥐는 대회였다. 개러티는 피터 맥브라이스, 올슨, 베이커, 하크니스 등 여러 친구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걷기를 계속하는데...

"통령"이라는 존재가 지배하는 군사국가 하에서 벌어지는 생존 경쟁 게임을 그린 작품으로 호러계의 마에스트로 스티븐 킹이 고등학교 때 쓴 장편입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다고 합니다.

어머무시한 몰입감만큼은 정말 최고입니다. 430여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인데, 한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놓기 어려울 정도거든요. 대회에 참가한 워커들이 차례대로 죽는다는게 전부인데도 상세한 상황과 심리 묘사, 그리고 명확한 캐릭터 설정 등을 통해 재미를 극대화시키는 덕분입니다. 병에 걸리거나, 사고가 일어나거나, 정신이 나가거나, 아니면 심지어 '성욕' 때문에 죽어나가는 과정은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이 지옥을 '마치 셜리 잭슨의 단편 속을 걸어가고 있는 것 처럼 느꼈다.'와 같이 묘사하는건 역시나 스티븐 킹다왔고요. 이런 묘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롱 워크"에 대한 탄탄한 설정 역시 볼거리입니다. 어떻게 먹고 배설하는지, 게임에 설정되어 있는 제약 사항이 무엇인지 등 디테일이 빼어나서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하지만 익히 알려진 만큼의 걸작이냐?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드라마라는게 거의 없는 탓입니다. "롱 워크" 중 경쟁을 통한 긴장감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게임의 규칙 - 워커들끼리의 다툼, 방해는 금지되어 있고 그냥 걷기만 가능 - 때문에 등장 인물들 사이의 다툼은 말싸움으로만 일어납니다. 등장 인물들도 전부 너무나 착하고, 어떻게든 동료들을 도와주지 못해 안달난 모습만 보여주고요. 덕분에 스크램이 죽음을 맞을 때,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려는 가슴 뭉클한 장면도 등장하지만 이래서야 너무 심심해요. 그나마 끝판왕격인 스테빈스가 마지막까지 생존하여 주인공 개러티와 경쟁하기는 하는데, 그 역시 마지막 한 순간에 무너져 버려서 결말은 시시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롱 워크" 만으로 드라마가 어려웠더라면 "롱 워크"에 얽힌 비밀이 밝혀지던가 - 스테빈스가 통령의 사생아라는 설정이니 이런 이야기를 집어 넣기 용이했을텐데 말이죠 -, 아니면 개러티가 우승한 후 또다른 사건이 벌어지던가 - 우승자가 다음 통령이 된다던가, 소문처럼 우승해도 바로 죽인다던가... - 하는 또 다른 이야기가 필요했습니다.

한마디로,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가 아니라 '기-승-승-승.... 아주 약간의 결' 구조로 이루어진 셈으로, 이래서야 극적인 맛을 느끼기는 어렵지요. 이렇게 등장 인물들의 죽음에 대한 자극적인 묘사가 전부라면 포르노와도 다를게 없어 보이기도 하고요. 자극적 묘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문학적인 성취를 보여준다는 점을 차이점이라고 주장한다면, 거장이 포르노를 찍으면 걸작이 될 수 있다는 의미가 될까요?

아울러 무한 경쟁 사회에 내몰린 현재의 학생들, 직장인들을 연상케 하는 설정도 몰입을 도와주기는 하지만, 현재의 학생들과 직장인들은 모두 상대방을 밟고 일어서야 내가 살아남아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금수저', '흙수저'처럼 태어날 때부터 출발선이 다르다는 인식은 이미 상식이 되어 버린지 오래고요. "롱 워크"처럼 가혹하지만 참가자 모두에게 공정한 출발선과 경쟁 기회를 준다면, 패배했을 때의 벌칙이 가혹하더라도 오히려 작금의 현실보다는 낫다 생각되기에 더욱 씁쓸해 집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몰입감은 작가 명성에 값하나 목숨을 걸고 상대방을 이겨야 하는 상황에서 피어나는 우정과 인간미, 최선을 다해 공정하게 노력을 경주하는 순진한 사고방식은 이미 90년대에 유통 기한이 만료된 듯 합니다. 작가가 고등학생 때 썼다는 것이 이해가 될 정도에요.

덧붙이자면, 킹이 숱하게 좌절한 상황에서 이 아이디어로 글을 썼다면 아마 지금보다 더한 지옥도를 그려 냈을것 같은데, 그런 점에서 고등학생 리처드 바크만이 아니라 성공한 호러 소설가 스티븐 킹이 쓴 "롱 워크"를 읽고 싶네요. 이왕 포르노라면, 더 화끈하게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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