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23/08/04

미궁 - 나카무라 후미노리 / 양윤옥 : 별점 2.5점

미궁 - 6점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놀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토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신견은 바에서 만난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 뒤, 여자와 같이 살던 남자를 쫓는 탐정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여자가 22년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일가족이 살해당한 히오키 사건 (일명 '종이학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딸 사나에라는걸 알게 되었다. 신견은 히오키 사건을 개인적으로 수사해나가면서, 극복해낸줄 알았던 자신의 어두움에 또다시 함몰되어 가기 시작하는데....

<<쓰리>>로 유명한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작품.
종이학 사건이라는 불가능 범죄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추리 소설로 볼 수도 있습니다. 
사건에서 밝혀지지 않은 점은 아래의 두 가지입니다.
  1. 피해자인 아버지와 아들을 구타하고 피부조각을 남긴 왼손잡이 남자는 완벽한 밀실 상태의 집에 어떻게 침입해서 어떻게 사라졌는지.
  2. 다소 강박적이었던 아버지 다케시는 모든 출입구와 창문에 설치했던 방범 카메라를 설치했는데, 사건 당일 다케시가 집에 돌아온 장면은 찍혀있지 않았고 신발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다케시는 어떻게 집 안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는지.
이 두 가지 수수께끼의 답은 하나입니다. 뒷문 방범 카메라가 실제로 촬영하는게 아니라, 원래 녹화된 파일의 날짜만 변경되도록 조작되었던 것이죠. 의처증이 심해진 남편 다케시가 모든걸 감시하는 탓에 가족들 심리가 서서히 붕괴하자, 이를 참지 못했던 아내 유리의 행동이었습니다.
이와 맞물려 가정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던 딸 사나에가 뒷문을 몰래 열어두었습니다. 빈집털이가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를 보고요. 예상대로 빈집털이는 집에 침입해 부모를 결박했는데, 빈집털이가 돌아간 뒤 부모를 증오하던 아들 다이치가 부모를 살해했고말았습니다. 하지만 빈집털이가 되돌아왔고 - 아마도 유리의 미모에 혹해서 -, 다이치가 덤벼들자 그를 구타하고 도주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이치가 죽기 위해 독극물을 마신 뒤, 사나에가 부모가 묶였던 줄 등의 증거를 태운 뒤 집 밖으로 가져나가 (물론 뒷문으로) 인멸했던겁니다.
사나에의 고백이 전부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꽤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앞서 관계자가 말했던 공범자 설이라던가, 어른이 관절을 빼고 좁은 창문으로 들어와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추리보다는 훨씬 낫더군요.
이후 신견이 사나에와 동거하며 스스로 추리해내는 또다른 진상 - 아마도 더 사실에 가까울 - 도 괜찮았습니다. 신견은 어린 아이가 오빠가 달라는 독약을 가져다 주고, 증거를 인멸한건 이상하다며 일종의 리허설이 있었을거라 추리합니다. 다이치가 가져다 달라고 했던건 그 전에도 스트레스가 심할 때 먹었던 수면제였을거라면서요. 즉, 사나에가 오빠를 살해했다는 거지요.

묘사도 빼어납니다. 특히 사라진 줄 알았던 R이 다시 등장하여 신견이 서서히 폭주해나가는 과정, 그리고 사나에 가정이 붕괴되는 과정 등 극한 상황으로 빠져드는 과정이 아주 실감납니다. 신견의 심리 묘사도 탁월하고요. 아쿠타카와 상을 수상한 작가다운 필력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런 전개 과정에서 신견이 자기 머리 속에 R이라는 범죄자같은 인격을 품고 있었다는 중2병스러운 설정을 비교적 적절한 복선으로 사용하고 있는게 좀 놀라왔습니다. 마음이 병들어 있던 사나에가 그런 신견을 중학생 때 보고 관심을 가진게 지금 시점에서 둘이 만나게 된 계기였다고 하거든요. 이런 사소한 디테일이 잘 짜여져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는 것 같아요.

그러나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경찰이 뒷문 방범 카메라가 조작되었다는걸 눈치채지 못했다는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무려 3명이나 되는 가족이 살해당한 강력 사건인데 , 이렇게 허술하게 수사가 이루어졌다는건 납득하기 힘들죠. 정신과 의사가 다이치가 치료 중 그렸던 그림과 공작이 사건 현장과 동일하다는, 즉 다이치가 범인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숨기고 있었던 이유도 석연치 않고요.
또 추리, 범죄물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다소 지루합니다. 추리, 범죄물보다는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둔 범죄 드라마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