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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5

하얀 마물의 탑 - 미쓰다 신조 / 민경욱 : 별점 2.5점

하얀 마물의 탑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민경욱 옮김/비채

<<아래 리뷰에는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주에서 대학을 졸업한 모토로이 하야타는 2차대전에 해군으로 참전 후 등대지기가 되었다. 해군 시절 등대의 중요함을 느꼈던 탓이었다. 양성학교를 거쳐 첫 부임한 곳은 간토의 다이코자키 등대였다. 그곳에서 자살하려는 소녀를 구해주는 등의 경험을 겪고 2년 후, 도호쿠 지방에 있는 고가사키 등대로 전근이 결정되었다.
어선으로 고가사키 등대에 접근하던 하야타는 등대에서 이상한 햐얀 형체를 목격했다. 어부가 직접 상륙을 거부한 탓에 등대 아래 아지키 마을에서 육로로 이동해야 했다. 고용한 안내인 모스케가 사라져서 홀로 출발한 하야타는 숲길에서 무언가가 자신을 쫓는걸 알아채고 서두르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해까지 진 상태에서 발견한 민가는 기묘하게 생겼고 무척 낡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마을 사람들이 '하얀집'이라고 부르며 피해가라고 했던, 시라가미를 모시는 무녀의 집이었다. 가면을 쓴 무녀와 손녀가 살고 있었는데 하야타는 친절한 손녀 하쿠호의 도움으로 하룻밤을 보낸 뒤, 그녀에게서 받은 부적 덕분에 무사히 등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등대에는 아무도 없었고, 밤이 되어서야 등대장 이사카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하야타를 찾으러 숲에 갔다왔다고 한 이사카는 하야타가 겪었던 일을 듣고,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주었다. 다이코자키에서 자살하려는 소녀를 구해주었었고, 고가사키 상륙 전에 하얀 형체를 목격했었고, 숲 길로 이동하다가 무녀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었다는 등 하야타와 거의 똑같은 이야기였다.
등대장의 회고는 마을 신주의 딸 미치코와 사랑에 빠져 야반도주하듯 홋카이도로 전근을 갔는데, 딸은 신주가 부리는 시라몬코에게 납치되어 사라졌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하야타는 자신의 경험담을 합리적으로 해석한 뒤, 이사카의 아내 미치코는 마을 신사 신주의 딸이 아니라 하얀집의 딸 시라쓰유였다는 것까지 밝혀내는데....


"불가해한 일을 겪을 때는 합리적인 해석이 중요하다."

미쓰다 신조의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 두 번째 작품. 신간 코너에 있길래 시리즈인줄 모르고 별 생각없이 집어들었는데, 읽다보니 시리즈더라고요. 다행히 첫 번째 작품은 읽지 않았어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전혀 지장은 없었습니다.

작품은 작가의 다른 작품인 <<사관장>>과 비교적 흡사합니다. 시골 마을에서 대대로 전승되는 무속 신앙과 그들이 부리는 신(?)에 관련된 기묘한 능력, 그것에 얽히게 된 민간인이라는 핵심 소재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등장인물이 무녀와 연을 맺는 전개와 사람들이 겪는 기현성이 '하얀색'이라는 것도 유사하고요.
하지만 주인공 모토로이 하야타의 존재가 결정적 차이를 만듭니다. 그는 모든 현상을 '합리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거든요. 그래서 온갖 기현상에 대한 나름의 추리를 펼칩니다. 이게 꽤 그럴싸해서 재미있었어요.
 
우선 '세기의 미스터리' 중 하나로 유명한 아일린모어섬 등대 사건부터 자신만의 해석을 내 놓습니다. 등대장인 마셜이 미쳤다는 것이지요. 실제로는 폭풍우가 오지 않았지만 일지에 폭풍우가 덮쳤다고 적혀있던건 마셜의 심리 상태를 나타내고, 부하 중 듀커가 '화를 냈다'는건 마셜이 미쳤기 때문에, 그리고 듀커가 '여전히 조용했고' 맥아더가 '기도했다'는건 마셜이 듀커를 죽여서 맥아더가 기도했다고 추리합니다. 실종의 진상은 마셜이 비옷과 장화를 신고 듀커의 시체를 버렸는데, 그걸 안 맥아더가 비옷과 장화를 신고 뛰어나와 말리다가 둘 다 물에 빠져 죽은 것이고요.
홀로 숲 길을 해메던 하야타를 추격했던 하얀 괴물체에 대한 추리도 합리적이었습니다. 길 안내를 부탁했던 모스케라이며, 슬쩍 수풀 사이로 본 거대한 하얀 형체는 모스케가 짐을 나르며 짐 위에 덮어놓았던 흰 천일거라는 추리죠. 하야타가 마을 여관의 딸 기리에와 사이가 좋은걸 봤기 때문에 질투심으로 저지른 일종의 장난(?)이라는 동기까지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밤에 돌을 던지고, 다음날 등대로 향할 때 숲 속에서 하야타를 포위했던건 원숭이들이었을거라는 추리도 괜찮았고요.
자료 조사도 충실해서 등대의 역사 등 온갖 정보들도 가득한데, 그 중에서도 오사카 케이키치 등대 소설을 읽는 묘사는 반가왔습니다. <<등대귀신>>은 <<등대귀>>라는 제목으로 읽었었던 적이 있지요. 다른 작품들도 언급되는데 어떤 작품일지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전개는 다소 지루한 편입니다. 모토로이 하야타가 고가사키 등대로 향해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게 거의 1/3 지점일 정도거든요. 하야타의 과거라던가, 신념에 대한 묘사, 그리고 등대의 역사 등 관련 자료가 너무 많이 등장하는 탓입니다. 작품과는 별 상관이 없는데 말이지요.
또 합리적으로 모든걸 설명하려고 했으면 그렇게 모든걸 설명해 주었어야 했는데,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너무 많습니다. 이사카 부부는 유령(?)이었다는 결말은 어처구니를 상실케하며, 이사카 부부와 다른 등대지기 하마치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애초에 이사카가 고가사키로의 전근을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인지 등은 아예 설명이 되지 않아요.
그 외에도, 하얀 집과 마을과의 관계처럼 설명되지 않는게 너무 많았어요. 한 때는 그 집에서 출산을 했다고 하는데, 불길하게 여기는 집에서 왜 출산은 했을까요? 출산을 앞 둔 임산부가 가기에는 너무 험한 산길로 보이는데 말이지요. 좋은 일은 마을 신사에, 나쁜 일은 하얀집에 기원한다는 설정도 잘 와 닿지 않았습니다. 좋고 나쁨의 구분 자체가 애매하잖아요. 예를 들어, 먼 곳에 있는 가족에게 선물을 보내기 위해 시라몬코를 이용하면 안되는 걸까요?
등대에서 보이던 하얀 형체가 하얀 집의 딸 하쿠호 (이전에는 시라쓰유)의 하야타 (이전에는 이사카)를 향한 연심이라는 해석도 별로였습니다. 그리고 그 해석이 맞다면 하얀 형체는 이사카와 하야타에게만 보였어야 했습니다. 시라쓰유, 하쿠호의 연심은 그들이 자살하려 할 때 구해주었던 젊은 등대지기에게 향해 있었으니까요. 즉, 마을 어선 선장이 '하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한 들, 그걸 목격했다고 등대 상륙을 거부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얀 사람'이 귀신을 볼 수 있는 모두에게 보인다면, 그걸 '연심'이라고 하기도 힘들테고요. 무언가에 대한 집착이 구체화된다는 해석이었다면 말은 되었겠지만 그런 설명은 없습니다.
이런 경험에 진절머리가 난 하야타가 등대지기를 그만둔다는 결말도 영 아니었어요. 물론 하야타가 하쿠호의 사랑을 받아줄 리는 없지요.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도 없이 유령이 되어버린 이사카 부부를 봤으니까요. 하지만 작중 묘사를 보면 하얀 집의 무녀는 시라몬코를 부려 일본 각지를 조사하고, 심지어 아이를 납치할 수 있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등대지기를 그만 둔 걸로 하쿠호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하쿠호에게 누군가 다른 남자가 희생양이 되기 전에는 말이지요. 하쿠호에게 희생양으로 모스케라도 던져주는게 바람직했습니다.

이렇게 설명이 부족하고 결말이 대충이라는 점에서는 완성된 소설보다는 괴담에 가까왔던 작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시리즈 1편인 <<검은 얼굴의 여우>>는 추리물이라고 하는데, 1편이나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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