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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7

마당이 있는 집 - 김진영 : 별점 1.5점

마당이 있는 집 - 4점
김진영 지음/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진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약 회사 영업 사원이던 김윤범이 저수지 속 차 안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윤범은 아내 상은 몰래 회사를 그만둔 뒤 거래하던 의사들을 협박하고 다녔으며, 모르는 아이들에게 폭행을 당했었다. 상은이 발견한 윤범이 죽기전 숨겼던 휴대폰에는 수민이라는 아이가 성매매했다는 증거가 저장되어 있었다. 상은은 수민에 대한 정보로 윤범이 의사 박재호를 협박했다고 생각했다.
박재호의 아내 김주란은 판교의 개인 주택에서 이상한 냄새를 맡은 뒤, 정원에서 시체를 발견했다. 하지만 박재호는 이를 모두 주란의 망상이라 치부했다. 주란의 증상은 그녀가 상은과 만난 뒤, 남편의 범죄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져가는데....


김태희 주연의 드라마로 제작되었던 한국의 여성향 서스펜스 스릴러. 이용하는 구독형 이북 서비스인 '밀리의 서재'에 올라와 있길래 읽어보게 되었네요.

주인공 두 명 - 김주란, 이상은 - 시점을 오가며 진행된다는게 특징입니다. 이상은은 잔혹한 살인범이자 협박범, 김주란은 일방적인 피해자 포지션에 가까운데, 나중에 둘이 일종의 파트너 (?) 관계로 한 팀을 이루게 되는 결말로 향하는 전개가 재미있었어요. 이상은이 임산부라는 설정도 독특했고요. 임산부라서 사람들이 경계심을 잘 푼다는 상황을 잘 써먹은 장면이 두어장면 있기도 합니다.
정통 추리물은 아니지만 괜찮은 트릭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수면제를 먹여 재운 윤범을 운전석에 앉힌 뒤, 상은이 운전석 의자를 뒤로 바싹 밀고 그 위에 앉아 운전했다는 트릭입니다. 이 트릭 덕분에 윤범의 죽음은 자살로 결론내려집니다. 작고 연약한 임산부인 상은이 거구의 윤범을 조수석에서 다시 운전석으로 옮기는건 불가능하게 보였기 때문이지요.
수민이를 죽인건 박재호가 아니라 아들 승재였다는 반전도 신선했습니다. 이를 수민이 찍었던 휴대폰 속 사진으로 드러내는 묘사도 나쁘지 않았고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지루했습니다. 이상은과 김주란 모두 심리 묘사 중심의 여성향 스릴러에서 흔히 보아왔던 스테레오 타입이라서 식상했던 탓이 가장 큽니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 냉소, 혐오와 일종의 과대망상과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여성으로 묘사되거든요. 그동안 제가 읽어왔었던 <<우먼 인 윈도>>, <<걸 온 더 트레인>>, <<인 어 다크, 다크 우드>> 등의 여성향 스릴러와 비교해 볼 때 다른 점을 찾아보기 힘들어요.

게다가 묘사만 보면 김주란은 정신병자에 불과합니다. 작품 속에서 보이는 행동에는 설득력을 느낄 수 없으며, 그동안 자신의 망상으로 많은 사고를 쳐 온걸로 - 강남 아파트에 살 때 윗 층 부부를 살인범으로 오해했던 등 -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전업주부이면서 아들이 방에 여자아이를 숨겨놓았다는걸 며칠동안 눈치채지도 못했다는건 변명의 여지도 없고요. 이웃과 상은, 기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시선도 일방적이고 편견 및 망상으로 가득해서 불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광적인 심리 묘사와 행적이 이어지니 남편의 표정, 낚시 가방을 빨아 말렸다는 정도로 남편과 시부모님을 살인범 일당으로 모는 과정이 도무지 와 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주장이 모두 거짓말이라는게 밝혀져서 남편에게 이혼당하는 결말을 기대하게 만들더군요.
물론 주란의 남편 박재호가 수민의 시체를 정원에 몰래 묻었고, 시체를 처리하러 간 날 집을 비웠던걸 숨긴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작 중 묘사와 행적을 보면, 박재호가 이를 숨긴건 살인을 저지른 아들과 망상증에 걸린 아내를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상은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이려고 했던 이유도 마찬가지고요. 때문에 오히려 주란이 재호를 죽인다는 결말은 황당했어요. 주란이 왜 급발진해서 남편을 죽였을까요? 남편이 아내를 지배하고, 조종한다는 수십년전부터 차고 넘치던 설정을 가져오려면 남편은 모두 사악하다는 작품 저변에 깔려있는 일방적인 이분법적인 논리 말고 더 그럴듯한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비하인드 도어>>처럼 못 봐줄 수준이라도 말이죠.
이런 이분법적 논리로 상은의 살인을 정당화 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합니다. 상은의 범행에는 남편의 폭력 - 심지어 임신도 남편의 성폭행 탓 - 때문이라는 동기가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상은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고,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살인을 저지르는건 차원이 다른 중범죄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다른 유사한 여성향 스릴러와 차별화되기는 커녕, 더 나은 점도 찾기 힘든 억지스러운 이야기였습니다. 리뷰를 남기는게 힘들 정도였어요. 이런 류의 소설은 이제 그만 읽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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