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어 다크, 다크 우드 - 루스 웨어 지음, 유혜인 옮김/예담 |
범죄소설가 노라는 오래전 친구 클레어의 결혼 전 싱글 파티 초대 메일을 받는다. 그녀와는 여러가지 이유로 고향을 떠난 후 10년간 연락조차 없었던 상황.
딱히 갈 생각은 없었지만 어쩌다보니 같이 초대받은 당시부터의 친구인 의사 니나와 함께 파티 장소로 향한다.
싱글 파티 장소는 클레어의 대학 시절부터의 친구라는 플로의 할머니 별장으로 으슥하고 멀리 떨어진 장소였다...
"이 동네 사람들은 체호프의 총 (1막에서 총을 복선으로 등장시켰다면 3막에서는 반드시 쏴야 한다) 이야기 들어본 적 없대요?" - 톰. 별장에 장식된 총을 보고
작가는 근본적으로 썩은 고기를 노리는 새가 아닌가. 죽어버린 연애사와 땅에 묻힌 말싸움을 쪼아 먹고 작품에 재활용한다. 그들의 과거는 우리가 고안한 방법으로 새롭게 변신해 좀비처럼 부활한다. - 톰이 연인과 싸운 이야기를 들으며 노라가 하는 생각.
사람은 변하지 않아. 전보다 치밀하게 자기의 본모습을 숨길 뿐이지. - 니나. 10년만에 만난 클레어가 착해졌다는 노라의 말을 반박하며.
"충격이긴 한데 놀랍지는 않다. 그 여자는 생활이 연기였잖아." - 톰의 연인 브루스가 클레어를 평한 말.
주인공 노라 시점에서 2박 3일간의 외딴 곳 파티와, 파티에서 벌어진 사고 이후 병원에 입원한 노라에게 닥친 상황에 대한 묘사가 교차되어 전개되는 작품. <<미스테리아 8호>>에 수록되었던 멋드러진 리뷰에 혹해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리뷰만큼 흥미롭거나 재미있는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일에 있어 여왕처럼 행동하던, 세상의 중심이 자기라 생각하는 클레어를 축으로 그녀와 관련된 여러 사람이 모인다는 설정부터 뻔합니다. 그녀가 현재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다는 동기도 진부하고요. 사건의 핵심 인물 노라가 사고로 일종의 단기기억 상실에 빠진다는 설정은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또 390여 페이지 분량의 장편에서 330페이지까지가 사건에 대한 설명 부분인데 흥미롭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깁니다. 구태여 길이를 늘이려는 불필요한 시도들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아요. 대표적인 것이 일반인을 대표하는 멜라니 캐릭터입니다. 사건 내 전개를 보면 등장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분량 낭비에 불과합니다.
진부하고 뻔한 설정, 길고 장황하며 지루한 서술을 극복하려면 최소한 범행이라도 정교했어야 합니다. 허나 이 역시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우선 사고가 아니라 살인 사건으로 밝혀진 후의 과정이 엉망이에요. 그 중에서도 범인이 될 만한 사람이 극단적으로 적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싱글 파티에 초대된 사람은 달랑 5명 뿐입니다. 이 중 그녀를 숭배하는 플로, 파트너를 통해 알게된 연극계 지인인 톰, 아기 때문에 이틀째 아침에 귀가해버린 멜라니는 아무리 보아도 범인이라고 하기 어렵죠. 그렇다면 어린 시절 동성애자라는 것이 클레어에 의해 폭로된 니나, 그리고 옛 연인이 이번 클레어의 결혼 상대라는 것을 알게 된 노라가 남습니다. 이 중 현재 동성 파트너와 알콩달콩 지내고 있으며 의사라는 안정적 지위를 얻은 니나가 10년도 전에 일어난 일로 범행을 저지른다? 그럴리가 없죠. 설령 니나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해도 제임스가 아닌 클레어를 타겟으로 했어야 합니다. 구태여 노라의 폰을 이용하면서까지 제임스를 끌어드릴 이유는 없어요.
그렇다면 결국 작품에서 몰아가는 것 처럼 노라가 범인일까? 이 역시 전개에 의해 부정됩니다. 정말로 클레어의 입을 통해 그녀의 남편될 사람이 제임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묘사가 좋은 예입니다. 그녀가 메시지를 보냈다는 상황에서 아무런 묘사를 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전개에 따르면 동기도 모호합니다. 10여년 전 헤어진 연인이 친구와 결혼한다고 살의를 품는다는건 말도 안되니까요.
아울러 범행 자체만으로도 허술하기 그지없습니다. 애초에 누군가 침입했다라는 것을 미리 파티 참가자들에게 노출할 필요는 없습니다. 총을 쏘기 위한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면 너무 과한 설정이에요. 게다가 참가자 중 '남자'가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와 닿지 않아요.
또 작품 내에서는 총을 쏜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지 밝혀주지는 않는데 (노라 시점에서는 플로일 것으로 묘사되지만요), 그게 누가 되었건 실패했다면? 즉 제임스에게 명중하지 못해 그가 살아 남았다면?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것도 이해불가고요. 아무리 명사수라고 해도 한 방에 사람이 죽기는 쉽지 않을텐데 말이죠.
총격 이후 제임스를 차에 태운 후의 묘사 역시 석연치 않습니다. 노라가 운전대를 잡은 것은 우연에 불과하기에 다음에 벌어진 사건들은 모두 사고에 의한 것입니다. 치밀한 계획과는 거리가 멀어요.
게다가 결정적 증인인 플로가 건재하다는 점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빠져나가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플로가 클레어를 숭배하기 때문에 그녀가 입을 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사건을 담당한 라마 경장이 플로가 증언했다고 밝히죠. 그것도 결정적 순간에요. 이래서야 범행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해요. 노라가 병원을 탈출한 후 클레어와 벌인 생명을 건 추격전 역시 쓸모없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노라가 진상을 눈치채게 되는 제임스가 보낸 메시지를 10년 만에 깨닫는다는 클라이막스 역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늦게 깨달은 것도 문제지만 이름을 이용한 조잡한 트릭이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솔직히 이렇게 허술하게 조작하느니 마지막 톰의 병문안 때의 이야기처럼 노라가 오지 않는 것이 클레어에게 더 유리했을거에요. 플로에게 범행을 뒤집어 씌우는게 더 말이 되죠. 플로가 총을 쏜 것도 사실이고, 탄알을 바꿔치는 것도 손쉬울 뿐 아니라 여신처럼 숭배하는 친구의 결혼을 참기 어려웠으리라는 동기도 그럴듯 하니까요.
그래도 계속 뭔가 사건이 터지게 만들어 흥미를 잡아끄는 전개, 뭔가 불편한 여자들만의 심리를 제대로 그려낸 묘사는 괜찮았습니다. 문제는 저와 같은 평범한 남자에게는 좀 지루하고 짜증스러운 묘사라는 점... 영국 출신 여성 작가 - 예를 들자면 미네트 월터스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 삐딱한 여성 심리 묘사는 아직까지도 영 와 닿지 않네요. 노라를 비롯한 등장 캐릭터들 대부분 정상이 아니라는 것도 읽는 내내 불편함을 가중시켰습니다.
한마디로 단점에 비하면 장점은 미미한 작품. 여성 시점의 범죄 스릴러 유행에 편승한 그냥저냥한 결과물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별점은 1.5점.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덧붙이자면, 솔직히 친구가 곧 결혼한다고 해서 독신 생활 마지막 파티를 벌이는데 뭐 이리 복잡하고 귀찮은 일들이 많은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한국에서처럼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술을 먹는 문화라는 것은 조금 신기하긴 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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