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의 괴로움 -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정은문고 |
유명한 장서가로 수만권 (2~3만권 정도?)의 책을 보유한 저자가 장서 보유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 개인 경험담과 이런 저런 생각을 펼쳐보이는 에세이이기도 하고, 장서 구입과 관리 등 다양한 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실용 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의 성격만 보면 얼마전 읽은 <<책장의 정석>>과 비교됩니다. 하지만 <<책장의 정석>>은 그야말로 가지고 있는 책을 '관리'하는 팁을 제공한다면 (심지어 관리할 수 있는 분량만 보유하도록 적절한 처분법마저 알려주고 있으니까요), 이 책은 '관리'가 불가능한 수준의 장서가를 위한 내용이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대상은 다르더라도 큰 주제는 동일합니다. '관리'를 위해 책을 어떻게 처분(?) 해야 하는지가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거든요. 저자 스스로 '책이 너무 많이 쌓이면 지적 생산의 유통이 정체된다. 사람 몸으로 치면 혈액순환이 나빠진다. 피가 막힘없이 흐로도록 하려면 현재 자신에게 있어 신선도가 떨어지는 책은 일단 손에서 놓는 편이 낫다'고 할 정도인데 이는 <<책장의 정석>> 내용과 거의 같죠.
이러한 주제를 강조하기 위한 다양한 일화가 많은 것도 특징으로, 그 중에서도 개인 경험에 기반한 이야기들은 당연히 아주 실감납니다. 헌책방, 고서를 찾거나 구입하는 것에 얽힌 본인의 경험담, 그리고 책을 정리하는 방법과 팁 등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이지 한번 읽을만 할 것 같아요.
다른 장서가들과의 인터뷰라던가 그들만의 책 보관 방법, 장서가가 등장하는 여러가지 영화와 컨텐츠들 등 장서에 얽힌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들도 가득합니다. 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책이 사는 집"을 지은 장서가 네기시씨의 인터뷰였습니다. 이유는 너무 부러웠기 때문이죠.
책을 줄이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소개하면서도, 결국 주체하지 못하고 책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도서관을 잘 활용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에 관련된 원고를 쓰다가 어쩌다보니 도서관에 대한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는데, 정말이지 저자는 어쩔 수 없는 장서가인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자가 소개하는 이 분야의 베스트는 오다 미쓰오의 <<도서관 산책>>입니다.
그리고 책을 줄이는데 제일 효과적일 수 있는 전자 서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눈에 뜨입니다. 책은 단순히 내용물로만 구성되는게 아니라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거든요. 동의하는 바가 없지는 않지만 앞으로 전자 서적의 발전 방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
아울러 장서가답게 이런저런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이야기들도 많은데 이 역시 눈여겨 볼 만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책 정리법 (책이 너무 많으면 안된다)을 송나라 학자 구양수의 <<시필>>에 나온 '명창정궤'라는 말로 설명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햇빛 잘 드는 창 아래 깨끗한 책상, 그 위에 책 한권이면 충분하지 않냐는 것으로 이를 12세기 일본의 가인 가모노 조메이의 움막과 연결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그 학식이 참으로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저도 이렇게 자연스러운 인용과 연결이 가능할지 궁금해지네요.
그 외에도 주목할만한 인용이 많습니다. 몇가지 소개해드리자면 우선 문필가 요시다 겐이치의 말인 "책장에 책이 5백 권쯤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라는 말입니다. 하루에 세 권씩 책을 읽는게 아니라 세 번, 네 번 반복해 읽을 수 있는 책을 한권이라도 더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참으로 와 닿는 이야기입니다.
유명한 장서가 다니자와의 명서 감정술도 비슷합니다. "명저라는 홍보에 넘어가 샀던 책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류 이하 책을 이것저것 찾아 읽지 않았다면 초일류를 초일류라고 인정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는 것인데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당연하지만 이런저런 책들도 제법 소개되는데 이 중에서는 <<영화 속 서점과 도서관>>이라는, 영화 속에 책이나 책장이 나오는 영화를 엮어놓은 책이 가장 끌립니다. 영화 <<언젠가 책 읽는 날>>의 후일담을 엮은 동명의 책에서 영화 속 주인공인 독서가 미나코가 좋아한 10권의 책 목록도 마찬가지에요. 아는 책은 에리히 케스트너의 <<하늘을 나는 교실>>과 앤 모로우 린드버그의 <<바다로부터의 선물>> 밖에는 없는데 저자 역시 극찬하고 있는 <<티보 가의 사람들>>은 굉장히 방대한 분량이자만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가장 흥미로와 보이는 책은 <<실물 크기 일러스트에 의한 낙엽도감>>이지만요.
수집가로서의 장서가를 다룬 '남자는 수집하는 동물' 챕터에서 소개된 <<소년소녀 쇼와 미스터리미술관>>이라는 책도 꼭 갖고 싶습니다.
이렇게 많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일본' 기준이라는 점입니다. 앞서 이런저런 유용한 팁이 많다고 말씀은 드렸지만 한국의 거주 문화와 책에 대한 일반적인 경우를 놓고 보면 그렇게 유용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정말로 책을 좋아한다면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보장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본인이 장서가시라면 한번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저 역시 500권도 안되는, 장서라고 하기는 초라한 수준의 책만 갖추고 있지만 책을 좋아하기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더 늘리면 안될 것 같긴 합니다만...
마지막으로 덧붙입니다. 미나코가 좋아한 10권의 책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티보 가의 사람들>> 마르탱 뒤 가르 (국내 출간)<<안녕, 콜럼버스>> 필립 로스 (국내 출간 <<굿바이, 콜럼버스>>)<<아름다운 여름>> 체사레 파베세. (국내 출간)<<바다로부터의 선물>> 앤 모로우 린드버그 (국내 출간)<<실물 크기 일러스트에 의한 낙엽도감>> 요시야마 히로시 / 이시카와 미에코<<여자>> 카터 브라운<<미국의 송어낚시>> 리처드 브라우티건 (국내 출간)<<열두 달 반찬>> 고지마 신페이<<하늘을 나는 교실>> 에리히 케스트너 (국내 출간)<<사이좋은 부부>>오다 사쿠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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