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아 8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엮음/엘릭시르 |
창간호를 읽고 실망이 커서 더 구입하지 않을리라 결심했었는데 우연찮게 최신호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호는 아주 좋더군요! 이전 실망감을 모두 날려버리고 앞으로 계속 구입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았어요.
우선 1호에서 지적했던 편집, 디자인이 일취월장 했습니다. 구성 면에서 나무랄데 없더군요.
매 호 이어지는 장편 연재물이 없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연재물들도 한회 분량으로 마무리되고요. 잡지를 계속 사 보지 않고 한권만 구입해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으니까요.
수록 기사들 역시 모두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기본은 해 줍니다.
도입부를 장식하는 요네자와 호노부에 대한 심층 분석부터가 괜찮습니다. 작가의 작품을 시기별로 분류하여 설명하는 집중 탐구에서 시작하여 서면 인터뷰, <<빙과>>로 유명한 고전부 시리즈에 대한 심층 분석과 작가의 작품에 영향을 끼친 걸작들 9편에 대한 짤막한 소개로 마무리되는데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거든요. 자세하고 깊이있는 내용도 많은 편이고요. 작가에게 영향을 끼친 '아홉가지 레퍼런스' 중 7편을 이미 읽었는데 남은 2편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기타무라 가오루의 '시간과 사람 3부작 <<스킵>>, <<턴>>, <<리셋>> 과 히구치 유스케의 <<나와 우리의 여름>> 입니다. 정확하게는 4편이군요.)
올림픽 시즌을 겨냥한 특집 기사도 볼거리입니다. 올림픽을 물들였던 도핑 스캔들에 대한 짤막한 논픽션, 그리고 스포츠 관련 추리 작품들 소개가 이어지는 구성인데 이 중 도핑 스캔들 기사가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이번 올림픽에서의 러시아 도핑 스캔들에 얽힌 뒷 이야기라던가, 동독에서 약물을 복용했던 전 여성 투포환 챔피언이 성전환 수술을 받아 남성이 되었다는 등 그간 몰랐던 내용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스포츠 관련 추리 소설을 다룬 글은 영 재미가 없었습니다. 선정된 작품들 대부분이 프로야구 관련 소설(<<마구>>, <<최후의 일구>> 등)이라 관련성, 의외성 모두 떨어지고요.
그리고 이어지는 신간 소개도 좋습니다. 1호와는 다르게 잘 쓰여진 글들로 한편의 잘 된 리뷰로 보아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기 때문으로 도진기의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루스 웨어의 <<인 어 다크, 다크 우드>>, 미나토 가나에의 <<리버스>>는 소갯글을 읽고나니 꼭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뒤이은 논픽션 기사들 3편 역시 기대 이상입니다. 법의학자 유성호가 쓴, 국내에서 있었던 파트너 범죄를 <<적과의 동침>>,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의 원형인 '엘리자베스 캐닝' 사건을 다룬 <<나를 찾아줘>>, 소설가 곽재식의 우리나라 옛 괴사건을 다룬 <<왜 머리카락을 잘랐을까?>>의 3편인데 특히 <<왜 머리카락을 잘랐을까?>>는 압권입니다. 1966년 발생한 6세 여아 살인 사건을 다룬 글이죠. 범행 동기도 짐작이 안되는 상황, 경찰의 다각적인 수사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미궁에 빠질 뻔 한다... 는 내용에서 극적으로 진상이 밝혀지는데 무척 충격적입니다. 시체의 머리카락이 잘려있던 것이 머리카락을 잘라 판 가출 소녀와 이어지게 되고, 그녀가 머리카락을 팔기 위해 살인 사건을 저지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 아픈 시대의 아픈 이야기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더군요.
마지막으로 3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고전부 시리즈' 단편이 포함되어 서두의 요네자와 호노부 특집과 이어지는 수미쌍관식 구성에 눈길이 가네요. 3편에 대한 상세 리뷰는 아래에 다시 첨부토록 하겠습니다.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전체 분량에서 2/3 이상은 평균 이상의 가치와 재미를 선사하는 좋은 기사들과 글들이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야기가 없지는 않지만 비교적 읽을 만한 잡지였다 생각되네요. 다음 권도 구해봐야겠습니다.
수록 단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거울에는 비치지 않는다>>
앞서 말씀드렸던 '고전부 시리즈' 단편.
특이하게도 이바라 마야카가 주역입니다. 중학교 졸업 작품 제작 당시 벌어진 사건 - 단체로 거울용 테두리를 만들기로 했는데 오레키 호타로가 자신의 팀 파트를 엉망으로 제출하여 작품을 망쳤던 사건 - 의 진상을 파헤치는 내용입니다.
이바라 미야카가 호타로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이 깨진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 팬이라면 이 점 하나만으로도 읽을 가치는 충분하겠죠.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아쉬움이 큽니다. 독자에게 공정한 정보제공을 하지 않은 탓이죠. 무엇보다도 거울 테두리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독자가 추리에 동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또 덩굴이 S자라는 것을 수상히 여긴 오레키의 행동도 석연치 않습니다. A라면 모를까, 덩굴이 자연스럽게 떨어지면 S자가 될 수도 있잖아요? S를 뺌으로서 나름 정의구현을 한다는 (아사미를 아미로 만드는 것) 결말로 가져가기 위함이었겠지만 억측이 지나쳐 보였습니다.
그리고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가 모토인 호타로가 왜 직접 뛰어들어 욕까지 사서 먹었는지 역시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팬이라면 읽어봐야 하겠지만 추리적으로는 약한 편이라 감점합니다.
<<사라진 앨리스>>
갓 결혼한 남편이 호텔방을 구하지 못해 아내를 홀로 호텔에 남겨두는데 다음날 아침 아내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아내가 존재했다는 증거는 전혀 남아있지 않죠. 숙박계는 물론 호텔 매니저, 주유소 직원에 결혼식을 주관한 판사마저 모두 사실을 부정하고요.
그러나 손수건에 새겨진 이니셜 하나만을 믿고 형사 에인슬리가 캐넌을 도와 사건을 파헤치게 됩니다. 에인슬리의 논리는 확고합니다. "이 혼란의 핵심은 호텔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어. 실종의 과정보다는 이유를 밝혀내는 게 더 쉬울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이 모든 일을 거슬러 점점 앞선 시기로 돌아가는 거야."
그리고 앨리스를 처음 만난 저택으로 돌아가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는 내용의 작품입니다.
두말할 나위 없는 걸작이에요. 아내가 사라진 말도 안되는 상황 묘사가 발군인 서스펜스 스릴러이자, 위기에 처한 여성을 구하는 모험극이기도 한데 특히나 서스펜스 측면에서 '서스펜스의 제왕 코넬 울리치'의 작품다운 남다른 몰입감을 자랑합니다. 상황 설정부터가 기가 막히잖아요?
아쉬운 점이라면 서스펜스 스릴러 (아내가 사라졌는데 모든 사람들이 아내의 존재를 부정하는) 부분에 비해 어느정도 진상이 드러난 이후의 모험극 쪽 재미가 조금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단점은 아니지만 아내의 존재를 돈으로 막는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했을지 조금 의문이 들기는 하더군요. 존재를 지우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니까요.
그래도 작가 명성에 어울리는 대단한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
<<1908년산 포트와인 독살 사건>>
몬터규 에그는 고객인 보로데일 경을 방문한 자리에서 경이 독살되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독은 경이 마시던 포트와인에 들어 있어서 경찰은 몬터규 에그에게 몇가지 확인을 부탁하고, 몬터규 에그는 간단한 조사와 추리를 통해 범인을 밝혀낸다...
도러시 세이어스 여사의 초단편. 이름만 들어보았던 와인 판매원 탐정 몬터규 에그 시리즈입니다.
일단 몬터규 에그 캐릭터만큼은 참 좋았습니다. 약간 허세끼있는 떠벌이로 그가 이야기하는 수다들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 그런 캐릭터인데 밉지 않게 잘 묘사해 놓았습니다. 영국적인 느낌도 한가득 전해주고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완성도가 무척 낮습니다. 추리 자체가 비약이 심할 뿐 아니라 범인과 경찰이 누가 멍청한지 경쟁하는 듯한 느낌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범인들은 왜 희생양을 내세우지 않았을까요? 보로데일 경이 자살하지 않은 것이 밝혀진다면 범행이 드러나는건 시간 문제였을텐데 말이죠?
경찰 역시 멍청함과 무능함으로는 이에 견줄만 합니다. 범행 현장에 있던 주요 인물들에 대해 신원조사를 하지도 않고 무슨 수사를 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몬터규 에그 캐릭터 외에는 건질게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시리즈의 다른 작품은 조금 더 낫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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