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6/10/10

기억나지 않음, 형사 - 찬호께이 / 강초아 : 별점 2.5점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찰에게 가장 중요한 건 말야, 당연히 자기 목숨을 부지하는 일이지!
어떻게 하면 나를 드러내 보일까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 분수를 알고 나 자신을 지킬까 하는 거라고.
- 쉬유이의 선배 화 선배가 하는 조언.


수사의 목적은 대답을 듣는 게 아니라 대부분 문제를 찾아내는 겁니다. - 쉬유이가 수사에 대해 아친에게 하는 말.

급작스러운 두통으로 차에서 잠이 깬 웨스턴 경찰서의 쉬유이 경장. 그는 고질적인 단기 기억상실증 탓에 지난 6년간의 기억을 잃어버린 것을 알게된다.
하지만 6년전 당시 맡았던 둥청아파트 살인사건의 후속 이야기를 취재하는 미모의 신문기자 아친의 취재에 동참한 후, 6년전 사건을 풀어내기 위한 새로운 실마리를 접하고 옌즈청이라는 스턴트맨이 사건에 깊숙이 개입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13.67>>로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준 찬호께이의 장편 소설. 제 2회 시마다 소지 추리소설상 수상작입니다.

'기억을 상실한 인물이 자신에게 닥친 수수께끼를 해결해 나간다.'는 설정은 <<공포의 검은 커튼>>이후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의 전가의 보도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가, 어떤 작품을 써도 기본 이상은 해 주니까요. <<사라진 시간>>, <<살인자의 기억법>> 등이 그러하죠.

이 작품 역시 재미면에서는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재미를 위한 만능 조미료 같은 설정 - 6년간의 기억을 잃어버린채 우연히 6년전 사건의 재수사에 돌입한다 - 에 더해 초중반부까지의 흡입력이 정말 장난이 아니거든요.
생생했던 6년전 기억과 6년 후 새롭게 밝혀진 단서를 조합해나가는 과정의 설득력도 넘치며, 단기 기억상실증으로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본인이 얽혀있을지도 모른다라는 긴장감 역시 독자의 흥미를 크게 높여주기 때문입니다.

또 작가에게 기대했던 추리적 요소 역시 기대에 값합니다. 6년전 벌어진 잔혹한 둥청아파트 살인사건의 재조사가 시작된 후, 쉬유이가 새롭게 접한 몇가지 단서들 - 사건 당일 피해자 이웃 후 어르신이 공격받지 않은 이유, 린젠셍의 아내 리징루가 건네준 린젠셍의 수첩 등 - 을 가지고 새로운 진상에 이르는 추리가 놀랄만큼 잘 짜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경찰 수사물임에도 불구하고 고전 본격물의 향취가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보였던 단서들 - 영춘권 도장의 위치,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 영국 TV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 쉬유이와 옌즈청이 같이 찍은 사진, 영화 촬영소에서의 대화 등등 - 이 큰 의미를 갖는다는 것 역시나 고전 본격물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죠. 또 이러한 단서들 모두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된다는 점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중반부 이후부터는 힘이 서서히 빠집니다. 특히 쉬유이 경장이 병원에서 정신이 든 후 자신이 사실은 옌즈청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후 이야기는 모두 억지스럽습니다. 작가가 반전을 너무 의식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비현실적인 설정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일단 옌즈청이 경막하출혈을 일으킨 등의 이유로 스스로를 쉬유이로 착각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 와중에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도 말이 안되죠. 최초 경찰서에서도 그렇고, 뤼후이메이가 사건 당시 담당 경찰이었던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 착각의 이유가 된 옌즈청의 개인적 수사의 이유 역시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린젠성의 무고를 확신한 이유가 고작 린젠성이 걸어온 전화 한통에 불과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워요. 이 약점을 보완하고자 인간 쓰레기로 묘사되었던 린젠성이 급작스러운 사고로 고아가 된 옌즈청을 가끔 돌봐주었다는 식의 과거사를 추가한 것도 공정치 못하고요.린젠성의 자동차 사고는 고장에 의한 것이었다는 후일담은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작위적 설정의 극치였습니다.

게다가 진범이 피해자 뤼슈란의 언니 뤼후이메이였다는 반전은 더 억지스럽습니다. 작가가 CCTV와 같은 제약 조건을 너무 많이 달아 놓은 탓에 린젠셍, 옌즈청이 범인이 아니라면 범인은 최초 발견자이자 열쇠를 가지고 있던 뤼후이메이일 수 밖에는 없긴 합니다.
그런데 이를 설명하기 위한 내용은 너무나 부족합니다. 옌즈청이 단기 기억상실을 일으킨 것은 촬영 시 입었던 뇌손상이라는 결정적 이유라도 있지만 뤼후이메이가 본인 스스로를 뤼슈란으로 착각할 이유는 전혀 설명되지 않거든요. 이런 말도 안되는 착각, 그에 따른 동기보다는 차라리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인간을 응징한다는 린젠셍의 동기가 더 설득력이 넘칩니다.

마지막으로 뤼후이메이가 아친을 살해하려 한다는 결말 역시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옌즈청이 진범이라는 옌즈청 본인 스스로의 수사는 당시의 알리바이로 이미 부정된 상황이라 린젠성이 범인이 아님을 증명할 길은 없는데 구태여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아친은 그냥 조력자에 운전수 역할 정도일 뿐 탐정 역할은 옌즈청 혼자라 아친을 죽일 이유도 크지 않으며, 살인으로 아친의 입을 막아 봤자 새로운 수사가 시작될 뿐입니다. 어차피 둥청아파트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된다면 세간의 관심을 피할 길도 없고요.

아울러 단점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핵심 추리 중 하나인 린젠셍이 엄지손가락을 다쳤을 것이다라는 추리는 주어진 단서 - 서툰 글씨에 이은 당구 약속 취소 등 - 에 비하면 비약이 심합니다. 린젠셍이 범인이 아니라는 이유 중 하나로 조리있게 설명되고 있기는 하지만 많이 부족해요. 엄지손가락으로 힘을 주지 않으면 10센티미터가 넘는 상처를 낼 수 없다는 것이 이유인데 두손을 쓰면 되잖아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영화를 보는 듯한 감각적인 전개도 돋보이고 중반부까지의 몰입도는 역대급이지만 이후 억지스러운 반전의 반복으로 힘을 잃은 작품입니다. 재미면에서는 나쁘지 않은만큼 킬링 타임용으로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