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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4

뇌물의 역사 - 임용한, 김인호, 노혜경 : 별점 2.5점

뇌물의 역사 - 6점
임용한.김인호.노혜경 지음/이야기가있는집

뇌물의 역사와 뇌물 관련 에피소드 등을 통해 뇌물이 무엇인지 고찰하고, 뇌물의 실체를 파헤치는 책. 뒷부분에는 김영란 법까지 연계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등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뇌물에 대한 고찰 측면으로는 사회과학 서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제 관점으로는 미시사 서적입니다. 뇌물의 실체를 알기 위한 과거 사례 인용이 내용의 대부분이기 때문인데, 미시사 서적다운 현학적 재미 역시나 큽니다. 제가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몇개 소개해드리자면,

우선 흔히 들어본 "첨지"는 원래 중추원의 고관인 정3품 첨지중추부사를 이르는 말로 아주 고관직이라고 합니다. 허나 조선 후기에는 공명첩 판매로 너무 흔해져 그냥 벼슬하지 못한 양반을 부르는 용어처럼 되어버렸다죠. 1660년 (현종 1) 첨지의 공정가격은 양반의 경우 40석, 양인은 10석을 더해 50석이나 1718년 (숙종 44)에는 8석과 10석으로 떨어집니다. 한 가마니는 지금보다 무거워 80킬로그램 정도, 즉 한 가마니 가격을 40만원으로 잡으면 400만원이면 충분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농법, 기술의 차이로 쌀 1석의 가치는 훨씬 더 했겠지만...
또 단지 양반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이 때문에 진짜 양반들이 얼치기 양반들과 구분하고자 점점 이상한 예절과 행동규범이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비가 올 때 뛰어서 안된다던가 등등인데 그중 최악은 '일을 하지 않아야 진정한 양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이러한 매관매직 행위를 뇌물로 간주하거나 비판하지 않았답니다. 공명첩은 정부가 공인한 합법적 증서이기 때문입니다. 뇌물이란 음지에서 자행되는 불법적인 거래여야 하니까요.

이러한 공명첩과 반대되는 것으로 스스로 노비가 되는 사례도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평민이 아니라 도망친 노비, 혹은 그 후손이라고 고소하는 것이죠. 조선은 도망 노비를 신고하면 포상으로 신고자에게 노비를 주었다고 합니다. 4명을 신고하면 25%인 한명을 주니 이 규정을 이용한 가짜 신고가 많았다네요. 양인 농민이 스스로 노비가 되는 경우도 많고요. 세금과 부역을 면제받기 때문이랍니다. 이 모든 과정에 뇌물이 개입함은 물론입니다.

효자나 열녀 역시 마찬가지, 효자, 열녀, 열부로 선정되면 지방 잡세가 면제되고 잘 하면 관직도 얻을 수 있었기에 뇌물이 만연하고 현재 전해지는 효행 이야기도 과장 투성이가 된 것이라고 합니다. 자식이 피를 내고 허벅지 살을 베어먹이는 식으로 말이죠. 정부도 공명첩으로 관직이 흔해지니 유력 가문과의 친분을 유지하려면 효자, 열녀 표창으로 차별화를 둘 수 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공명첩 가격이 떨어지니 새로운 수단을 찾은 것입니다.
이외에도 세종이 뇌물을 없애기 위해 재상들과 기싸움을 펼친 일화 등 재미있는 내용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뇌물 관련 고사 대부분이 국내 사료, 그 중에서도 조선 시대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도 큰 특징입니다. 국내 연구진에 의해 쓰여진 덕분인데, 실록 등 근거가 명확하며 인용된 내용도 굉장히 디테일해서 자료적 가치도 높습니다. 예를 들면 누가 뇌물을 얼마나 받았는지까지 조사해서 기록해 놓았을 정도입니다.

아울러 이러한 사례들로 뇌물이 나쁜 이유를 명확하게 적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뇌물은 개인을 부패시킬 뿐 아니라 열정과 능력까지 빼앗기 때문입니다. 유능한 사람도 배척하게 만들고요. 그래서 뇌물이 공공의 적이며 집단과 국가를 파멸시키는 첫번째 원인인 것이죠.
조선 시대도 공명첩 등에 의해 명예는 남발되고 신분제가 무너지기 시작했지만 모두가 더러운 목적, 수단에 의한 것으로 이에 따른 정치적 문란과 갈등의 확산이 이어졌을 뿐이니 씁쓸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일단 아쉽게도 해외 사례, 일화는 그닥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뇌물의 행태는 어딜가나 마찬가지이기에 조금이라도 더 잘 아는 우리 역사 이야기로만 소개했어도 충분했을텐데 왜 들어갔는지 이유도 잘 모르겠어요.
홍콩이 부패를 일신하기 위해 "염정공서"라는 조직을 만들어 성공했다는 이야기 정도만 <<13.67>>에도 인용된 내용이라 기억에 남는 정도입니다.

같은 이유로 전체적으로 비슷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것도 단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 의미를 담아 이야기하려면 대표 에피소드 몇개로 충분했을텐데 괜히 분량만 늘어나는 느낌이랄까요?
덧붙이자면 첫번째로 언급되는 공명첩은 저자 스스로 뇌물이 아니라고 말한 만큼 내용에 적합한 것인지 살짝 의문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자료적 가치와 재미에 더해 의미까지 있으며, 뇌물의 역사와 행태를 이해하기는 용이하지만 좀 길고 지루한 면도 없지 않아 감점합니다. 미시사 서적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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