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과 연암, 노름에 빠지다 - 유승훈 지음/살림 |
한국의 도박사를 다룬 미시사 서적.
도박은 제의와 점술에서부터 출발하였다는 이론에서 시작하여 신라, 백제, 고려, 조선, 근현대에 걸친 각종 도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도박에 관심이 있다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주제임에는 분명하죠. 또 제가 좋아하는 미시사 서적이기도 해서 주저없이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목차는 크게 9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 개인적으로는 "윷놀이", 조선을 주름잡았던 "쌍륙"과 "투전"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다른 도박들에 비하면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될 뿐더러, 그동안 관심이 있었던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백제인의 저포, 윷놀이의 조상인가>>에서 소개되는 윷놀이는 중국의 저포에 가깝지만 한국에 특화되어 토착화된 것이라는 기원에서부터, 윷놀이 판이 하늘의 천체를 상징하며 말이 가는 길은 해가 가는 길로 비유된다는 것, 도개걸윷모의 확률 - 윗면이 곡면이라 확률은 평면 대 곡면이 6:4, 이것을 기준으로 하면 걸-개-웇-도-모 순으로 나오게 됨 - , 윷사위 이름의 유래 - 도 : 돼지, 개 : 개, 윷 : 소, 모 : 말, 걸은 다양한 이론 존재 - 등 내용 모두가 흥미로왔습니다.
<<양반과 기생, 쌍륙판에서 내기를 벌이다>>와 <<조선후기의 투전, 도박의 전성시대를 열다>>에서 소개되는 쌍륙과 투전은 고전 소설이나 근대 개화기를 다룬 미시사 서적에서 간혹 접했을 뿐 그 정체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어떤 것인지를 도판과 함께 설명해주어서 나름 만족스럽네요. 하는 방법까지 알려주는 투전 - 짓고땡과 거의 동일! - 에 비하면 쌍륙은 소개된 내용 정도로는 시도하기 어려운 수준이라 조금 아쉽긴 합니다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가려운데는 긁어준 듯 합니다. 이성계의 증조부 익조가 여진족과 쌍륙 승부를 할 때 원하는 숫자가 나오도록 조작한 주사위로 야바위를 쳐서 이겼다는 고사와 같이 사료로 확인되는 관련 일화들도 자주 등장하여 이해를 돕고 재미를 더해주고요.
이어지는 식민지 시기 화투 이야기도 상세합니다. 매국노 이지용의 도박 중독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접했었지만 당시 '골패 세령'이라는 것이 제정되었다는 등 새로운 내용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수록 내용 모두가 기대에 값하지는 않습니다. <<신라의 귀족. 주사위 놀이로 밤을 지새다>>는 안압지 출토 주사위를 가지고 풀어나가는 이야기인데 근거부터가 도박과는 거리가 있어서 주제에 걸맞지 않거든요. 고려시대의 격구를 스포츠 도박이라고 장황하게 소개하는 <<고려시대의 격구는 스포츠 도박이었다>>도 마찬가지입니다. 격구가 도박일 수는 있지만 "스포츠"에 더 가까운 것인데 비약이 너무 심했어요. 그리고 현대 이후 고스톱을 다룬 부분은 관심사와 다를 뿐더러 내용도 특별하지 않아 실망스러웠습니다.
아울러 저자가 연구자일 뿐 도박과는 거리가 멀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그래서일까요? 앞서 말씀드렸듯 소개되는 도박의 "방법"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어 아쉽습니다. 뭐 비결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의 묘수 정도는 소개해 주는 것이 좋았을텐데 말이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한국 최초의 도박사(史)라는 점에서 의의를 둘 만 하지만 내용의 깊이가 아주 깊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도판 및 책의 장정, 디자인은 그냥 무난한 수준이고요.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출판사가 "살림 지식 총서"로 유명한 살림 출판사인데 흥미로왔던 주제 (윷놀이, 투전과 쌍륙)를 살림 지식 총서처럼 분권으로 출간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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