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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7

살아있는 육체 - 루스 렌들 / 홍성영 : 별점 2.5점

살아있는 육체 - 6점
루스 렌들 지음, 홍성영 옮김/봄아필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물여덟 살의 빅터 제너는 어느 날 공원 숲에서 한 여자를 겁탈하려다 실패하고 쫓기게 된다. 그를 뒤쫓아 오는 사람들을 피해 숲을 빠져나와 마을로 도망친다. 빈집을 찾아 잠시 몸을 숨기려고 들어간 집이었으나 집안에 홀로 있던 젊은 여인은 소리를 지르며 창문을 깼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집을 포위한다. 빅터는 여자를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한다.

그런데 빅터는 이모부의 것이었던 루거 권총을 가지고 있었다. 빅터는 그 총이 진짜 총이니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하며, 여자를 놓아줄 것이니 도망칠 시간을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경찰이 그 총은 가짜 총이라며 말하면서 그의 말을 믿지 않자, 빅터는 경찰관인 데이비드 플리트우드의 척추 아랫부분을 향해 총탄을 발사한다. 총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진 플리트우드는 반신불수가 되는데… (이상 출판사 책 소갯글에서 인용)

평범함 속의 악의를 다루며 읽는 사람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드는 능력자인 - 개인적으로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여사와 동급으로 봅니다 - 여성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 작가 루스 렌델 여사의 대표작. 1986년 골든 대거상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경찰 데이비드 플리트우드 시점으로 인질극과 총격이 일어나는 27페이지 분량의 1장 이후 392 페이지까지 범인 빅터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400 페이지 가까운 장편인데 한번에 읽게 만드는 흡입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또한 루스 렌델 여사 작품의 최고 강점인 심리 묘사 역시 아주 탁월해요. 한명이 반신불구가 되고, 한명은 살해당하고, 몇 명의 여성들이 성폭행당하는 범죄 소설인데 범죄 보다는 빅터가 처한 상황과 심리묘사를 더욱 디테일하게 그린다는 점에서는 <<활자 잔혹극 (유니스의 비밀>>과 일맥상통하네요.

추리적으로는 그다지 특출난 점은 없지만 빅터의 범죄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넘칩니다. 플리트우드처럼 장애인으로 가장하여 도주하는 과정은 기가 막힙니다.
그리고 사소한 부분이나 빅터가 이모부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져온 코트가 사실은 주프 씨의 것으로 너무나 눈에 띄는 물건이었다는 것을 호주머니 속 박하사탕 껍질로 알게된다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복선과 디테일이 잘 결합된 좋은 장면이었어요.

그러나 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수를주기 힘든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유는 주인공 빅터의 모든 것이 불쾌해서 읽는 내내 불쾌함이 가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빅터는 단지 나이만 들었을 뿐 아이나 다름 없는 존재로 자신에게 닥친 모든 나쁜 일에 대해 남 탓을 하는 자기 합리화의 달인이거든요. 온전히 자기 행동을 책임질 능력이 전무해요. 성폭행에 대한 후회, 반성도 없으며 플리트우드가 자신의 총에 맞아 반신불수가 된 것도 플리트우드가 자신의 총이 진짜라는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합리화하죠. 게다가 이런 합리화가 여사의 디테일한 심리묘사로 전편에 걸쳐 표현돼니... 아 정말 할말을 잃게 만듭니다.
- 플리트우드는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고 빅터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빅터는 극심한 스트레스나 압박감을 받을 때면 그런 일을 저질렀는데, 늘 그래 왔었다. 정신을 잃고 갑작스레 겁에 질려서 일을 저지르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죄를 묻고 살인미수죄를 씌우는 건 부당했다. (40p)-
- 빅터는 플리트우드를 불구로 만든 것에 이모부의 책임이 얼마나 있는지 이따금 생각해보곤 했다. 시드니 이모부와 플리트우드, 그리고 로즈마리 스탠리도 각각 책임이 있었다. 우선 시드니 이모부는 그 권총을 손에 넣은 책임이, 플리트우드는 명백한 사실을 믿지 않은 책임이, 로즈마리는 멍청하게 소리 지르고 창문을 깬 책임이 있었다. (81p)-
- 플리트우드가 아둔해서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것인데, 모든 영광을 누리는 건 그였고 빅터는 오랜 시간 동안 온갖 어려움을 겪었다. 빅터는 플리트우드가 고의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어쩌면 플리트우드는 평생 보살핌을 받을 것이고 사람들이 불구가 된 영웅을 우러러 본다는 걸 알고서 일부러 스스로에게 총을 쐈는지도 모른다.(127p)-

또 무언가를 얻는데 '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없습니다. 그만큼 무언가를 쉽게 얻으려고만 하죠. 한번 얻은 것은 그것이 영원히 자신의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기 합리화의 달인답게 말이죠. 대표적인 예는 아래의 단락입니다.
- 빅터는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왜 그래야 한단 말인가? 그에게 자리를 양보해 준 여자는 지금껏 아무도 없었다. 여자들은 그에게 적대적이었다. 그를 방치한 어머니, 악의에 가득 찬 뮤리엘 이모, 폴린, 온정을 베풀어 주었는데도 소리 지르며 창문을 깼던 로즈마리 스탠리, 고약한 표정의 그리피스 부인. (140p) -
이 단란 속 모든 것은 엉터리입니다. 어머니가 그를 방치한 것은 묘사는 되지 않지만 후술할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선 뮤리엘 이모가 조카에게 악의를 갖는건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성폭행에 경관에게 중상을 입히고 10년 이상 수감되어 있던 전과자를 조카라고 반갑게 맞아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전 여자친구 폴린은 성관계에 문제가 있었을 뿐 적대적이었다는 것은 전혀 설명되지 않고요.
수상한 사람이 집에 침입하고 그가 연쇄 성폭행범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한 로즈마리 스탠리가 소리를 지르고 창문을 깬 것 역시 당연합니다. 여기서 그가 베풀었다는 '온정'은 죽이지 않고, 상처를 입히지 않은 것에 불과해요.
마지막으로 지금 세든 집의 주인 그리피스 부인 역시 집 주인으로서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의 수준을 넘어간 것은 전혀 없습니다. 불쌍한 전과자를 받아주었는데 경찰이 찾아오고, 밤에는 소리를 지르고, 가구까지 때려부수는데 쫓아내지 않는 것만해도 고맙게 여겨야 할 형국이죠.
뮤리엘 이모에게서 현금을 훔친 뒤 '어차피 유산은 자기 것이다,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미리 현금을 건네 주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역시 마찬가지. 심지어 이모가 범죄자에게 유산을 물려줄 생각이 없다고 못을 박았지만 그것을 자신의 범죄가 아니라 이모 탓으로 돌리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이기주의는 클레어와의 하룻밤 후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정점에 이르지요. 데이비드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그가 반신불구로 성능력이 없기에 잘생긴 빅터와의 하룻밤 불장난을 벌인 클레어의 실수도 분명 있지만 이후의 지속적인 설득에도 불구하고 빅터는 클레어를 손에 넣기 위해 결국 폭주하게 됩니다.

주인공이 타고난 악당으로 멋대로 폭주하다가 끝장난다는 <<내안의 살인마>>처럼 막나가기라도 하던가, 아니면 폭주 후 깔끔하게 처리되었더라면 후련하기라도 했을텐데.... 빅터의 삽질에 의한 패혈증으로 사망한다는 결말은 별로 개운치 못했습니다.

아울러 이유를 알 수 없는 빅터의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의 원인을 유년 시절 부모님의 성관계를 목격한 경험 탓이 크다고 설명하는 것은 충격적이기는 했지만 불필요했다 생각됩니다. 어쨌건 부모님은 서로를 극진하게 사랑했고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으로 보이는데 성관계를 들킨 약간의 실수만으로 아이가 괴물이 되었다는건 크게 와 닿지 않더군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인간쓰레기를 주인공으로 몰입감있는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은 <<사채꾼 우시지마>>와 유사합니다. 두번 읽게 될 것 같지 않다는 점까지 말이죠. <<우시지마>>에서는 이런 쓰레기는 보통 피해자 포지션이긴 하지만....

덧 1 :  전과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네요. 이 모든 것은 빅터를 그만큼 생생하게 그려낸 여사님의 필력 때문입니다만 무엇보다도 성범죄자들은 사회에 다시 풀어 놓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게 만들었어요.  최소한 반드시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강제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더. 뭔가 정상이 아닌 범죄자들을 단순 형량만으로 석방하는 것은 분명 모순이겠죠.

덧 2 : 제목의 "살아있는 육체"는 빅터를 상징하는 단어라 생각합니다. 살아있는 육체를 지녔지만 그 속의 정신은 썩어있다, 뭐 그런 의미로 쓴 제목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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