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6/10/03

러시아 유령 군함 사건 - 시마다 소지 / 김동주 : 별점 2점

러시아 유령 군함 사건 - 4점 시마다 소지 지음, 김동주 옮김, toi8.스즈키 쿠미 그림/영상출판미디어(주)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타라이와 이시오카의 지인인 영화배우 레오나가 그녀가 받은 기묘한 펜레터를 두명에게 보내준다. 미타라이는 내용에 깊은 흥미를 보이고, 둘은 펜레터에 쓰여진 하코네의 호텔을 방문한다. 목적은 본관 1층 매직룸의 사진을 보기 위함. 그리고 1919년, 하코네에 나타났던 "러시아 유령 군함"에 대한 사진과 함께 괴담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 사건이 미국의 안나 앤더슨, 그리고 러시아의 마지막 황녀 아나스타샤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미타라이는 이후 몇가지 조사와 추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게 된다.


시마다 소지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 기나긴 연휴를 버티기 위해 별 생각없이 집어든 책. 제목만 봤을 때에는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국명 시리즈"류의 작품이라 여겼는데 읽어보니 "아나스타샤 황녀"를 소재로 한 작품이더군요.

자신을 아나스타샤라고 주장했던 미국인 안나 앤더슨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안나 앤더슨과 그녀의 미국 정착을 도운 남편 마나한의 비참하고 불행한 말년 - 집은 개와 고양이 배설물로 엉망인데다가 죽을 때까지 이런저런 심각한 정신병에 시달렸다 - 에 대해서는 처음 알긴 했지만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안나 앤더슨의 주장과 수수께끼는 이미 많은 매체와 컨텐츠를 통해 상세하게 검증된 바 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지금은 안나 앤더슨의 주장의 진위는 이미 판명난지 오래라 이미 쉬어버린 떡밥입니다. 거의 10년 전 DNA 검사를 통해 그녀가 로마노프 황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안나 앤더슨이 진짜 아나스타샤라는 내용입니다. 아직 안나 앤더슨 주장의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던 2001년 작품인 탓으로 문제라고 볼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잘 알려진 역사 속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재미의 핵심이고요.

이 부분에서 경쟁, 유사작과 차별화되는 이 작품만의 특징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바로 안나 앤더슨의 주장의 큰 맹점 중 하나인 "왜 러시아어를 하지 못했는가?"에 대해 나름의 해답을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작중 미타라이의 입을 통해 설명되는 이론으로 '두개골 부상 당시 뇌손상을 입어 특정 언어에 대한 회화 능력을 잃고 극심한 정신병이 생겼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뇌에 대해서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부분이 많은 만큼 아이디어만큼은 정말 칭찬해주고 싶어요. 최소한 안나 앤더슨의 정신병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이 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물론 미타라이가 소설 속에서 강하게 주장한 "뇌의 모국어 담당 영역이 손상되고 외국어 담당 영역이 무사하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라는 것 자체가 검증되지 않았단 문제는 큽니다. 이렇게까지 전례가 없는 뇌손상이 가능했을까에 대해서도 회의적이고요. 뭐 소설 속 재미있는 가설 중 하나로 받아들이면 좋을 듯 싶네요.

이것 뿐만이 아니라 아나스타샤가 어떻게 러시아에서 탈출했는지에 대한 해석 역시 볼만합니다. 탈출 시 제공된 로마노프 황제의 금괴를 이용한 꽤 그럴듯한 설명이 등장하거든요. 그것이 바로 제목인 "러시아 유령 군함" 입니다. 소설 속에서 1919년 하코네 호수에 나타난 러시아 군함을 의미하죠. 정체는 당시 존재했던 도르니에의 거대 비행정이라 설명되고 있습니다.
물에서 뜨고 내릴 수 있고,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등 나름 조건에 부합합니다. 게다가 날개, 프로펠러만 뺀다면 물 위에 떠 있는 배라는 것도 맞고요. 여러모로 상당히 기발한 아이디어라고도 할 수 있겠어요.

그러나 좋은 점은 이 정도고... 아쉽게도 시마다 소지 작품답게 전개상의 헛점과 억지가 상당하다는 것은 큰 단점입니다. 아나스타샤가 감금된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어떻게 탈출하였는지는 정작 설명되지 않는게 대표적이죠. 구라모치와 독일로 향한 후 베를린에서 갑자기 착란을 일으켜 자살을 시도했다는 것 역시도 엉터리고요. 히틀러가 환영했다는데 자살 소동을 벌일 이유는 없죠. 이러한 설정 구멍 모두의 이유로 정신 이상을 내세우는 것은 비겁해 보였습니다.
또 아나스타샤와 황제 가족에게 닥친 잔인했던 능욕의 현장 묘사는 불필요했으며, 이후 아나스타샤가 성폭행으로 잉태한 아들이 일본에서 아나스타샤와 사랑에 빠졌던 일본군인 구라모치에게 입양되어 '네무리'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살아간다는 이야기도 영 와닿지 않더군요. 작중 설정대로라면 네무리가 로마노프 가문의 정통 후예임은 분명한 만큼 당연히 일본 정부에서 관리했어야 하잖아요?
홀로남은 러시아 황녀가 일본군인 구라모치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솔직히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고요.

그리고 왜 미타라이 시리즈인지도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스탠드얼론 작품으로 그려냈더라면 훨씬 완성도가 높았을 것 같아요. 미타라이가 다국어에 능통한데다가 뇌과학 전문가, 그리고 직접 로마노프 왕가 유골 발굴까지 참여했다는 등 설정 비약이 너무 심하고 이시오카 역시 정말 하는게 없으니까요. 이럴 바에야 일본인은 일본 현지 후지야 호텔의 러시아 유령 군함 괴담과 사진을 미국 저널리스트 제레미에게 연결시키는 정도의 역할 정도만 수행하고 제레미가 모든 것을 밝혀내는 전개로 가져가는게 더욱 깔끔하고 보기도 좋았을 것입니다. 지나치게 시리즈에 욕심을 낸 탓에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결과물이라 생각되네요.

요약하자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역사 속 미스테리를 기발한 아이디어를 덧붙여 소설로 만들었다는 점은 인상적이기는 합니다. 설득력이 아주 높다거나 대단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배울게 많거든요.
허나 앞서 말씀드렸듯 단점이 명확하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역사 속 미스테리를 다룬 <<진리는 시간의 딸>>이나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 실제 사건을 변주한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등 쟁쟁한 미스테리 실화소설 경쟁작에 비하면 완성도도 턱없이 부족하며, 이미 거짓으로 판명된 이야기라 지금 읽기에 시효가 다 되었다는 문제도 있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긴 하였으나 이러한 이유들로 추천드리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