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산책 -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
<이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7번째로 읽은 요코미조 세이시 작품입니다.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로 요코미조 작품의 전형, 그러니까 "부유한 명문가이지만 실상 내용을 알고보면 콩가루 집안"을 무대로 "연쇄살인"이 벌어진다는 내용은 그대로입니다. 여기에 뭔가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덧칠한 것 역시 여전해서 이 작품에서는 "꼽추"와 "몽유병",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요도 "무라마사"가 주요 소재로 쓰이고 있죠.
그러나 이 작품은 콩가루 집안의 상황을 이전 작품들보다 한층 업그레이드해서 표현하고 있으며, 3류 탐정 소설가 야시로를 화자로 내세워 야시로가 직접 쓴 소설처럼 진행되는 액자소설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 중에서도 <팔묘촌> 역시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지만, <팔묘촌>은 단순한 수기 형태였던 것에 반해 이 작품은 작중작품이라는 형식도 독특하지만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처럼 화자가 범인이라는 일종의 서술트릭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죠.
하지만 이 작품은 아쉽게도 본격 추리소설적인 맛은 많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무려 3명이나 살해당하는 것에 비한다면 트릭이 보잘 것 없고 여러모로 문제가 많아요. 특히 첫번째 하치야 살해사건의 경우, 하녀 후지의 결정적 증언 - 12시에 하치야가 방에서 자고 있었다 – 가 번복된 순간에 이미 사건은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거든여. 이 증언을 번복하면 결국 야치요의 시간 조작이 곧바로 드러나 버리니까요. 때문에 이후의 설명이나 사건은 사족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애당초 하녀 후지가 처음에 거짓 증언을 한 것 자체가 단순한 운이었다는 등 운에 의지한 부분도 너무 많고요.
그 외에도 나오키가 칼을 어디에 두었는지를 야시로는 어떻게 알았는지, 왜 나오키가 시즈카를 감금하여 돌봐주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 모리에가 과연 지시한대로 행동해서 예상대로 얌전히 독을 먹고 죽었을지에 대한 것이라던가 두 꼽추의 동일한 총상 역시 억지스러운 부분이에요. 몽유병을 과장하여 사용한 것도 거슬렸고 말이죠. (심지어는 몽유병 환자가 물속에 들어가 무언가를 찾기까지 합니다!)
무엇보다도 동기 부분이 가장 문제가 많습니다. 화자가 범인이고, 또 소설의 작가이기 때문에 다른 등장인물 – 특히 나오키 – 에게 혐의를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설명은 하고 있지만 “내가 범인이다!” 라는 마지막 장면에서야 겨우 실질적인 동기가 등장하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는 공정하다고 느끼기 어려워요. 앞부분에 야시로와 나오키의 인연을 소개하면서 시즈카에 대한 설명을 조금이나마 복선으로 등장시켰어야 하지 않나 싶더군요.
하지만 작품 자체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작품의 매력이 본격 추리소설적인 부분이 아니라 괴기스럽고 기괴한 분위기와 묘사에 있기 때문이죠. 추리적으로도 이런저런 불만을 털어놓기는 했지만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그럴듯한 트릭과 단서들이 계속 등장해서 몰입하게 만드는 재미 하나는 확실하고요. 더운 여름밤을 시원하게 같이 해 줄 추리괴담물로는 거의 최상급의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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