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초 살인 사건 -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까멜레옹(비룡소) |
총 14편의 작품이 실려있는 온다 리쿠의 단편집입니다. 온다 리쿠는 최근 가장 '핫'한 작가 중 한 명인데, 몇권 읽지는 않았지만 저한테는 잘 맞지 않더군요. 그래도 단편집인데다가 추리 소설이 포함되어 있다기에 속는 셈 치고 읽어보게 되었네요.
추리, SF, 환상 소설, 패러디, 호러, 순문학에 어른들을 위한 동화, 호시 신이찌 스타일의 쇼트쇼트까지 포함되어 있는 수록작들의 폭넓고 풍부한 구성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도서실의 바다"처럼 작품의 편차가 크다는 단점 또한 두드러집니다. 이래서야 잘 하는 한 장르에 집중한 것 보다 못한 결과라 할 수 있겠지요.
특유의 스타일을 어울리지 않는 장르에 무리하게 도입한 티도 많이 납니다. 예를 들자면 "심야의 식욕"은 어두운 복도 구석방에서의 식육? 이미지를 구체화한 전형적이고 뻔한 호러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특유의 뭔가 있어 보이는 애매모호한 묘사로 분위기를 한껏 잡다가, 제대로 이야기를 매듭짓지도 못하고 끝내버립니다. 허무해서 힘이 다 빠질 정도였어요.
이야기의 맥락은 둘째치고서라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조차 감이 잘 오지 않는, 그냥 화자가 품고 있는 짧은 이미지만 전달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털어놓는다는 식의 작품들도 실려있다는 것 역시 감점 요소였습니다. 심지어 표제작인 "1001초 살인사건"은 제목부터가 무의미한, 별다른 기발함이나 작가 특유의 정교한 이미지도 없는 되는대로 써 내려간 어이없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나마 "수정의 밤, 비취의 아침"과 "그대와 밤과 음악과"의 두 작품은 정통 추리의 맛이 잘 살아있는 편입니다. 추리 소설은 아니지만 작가와 작품에 대해, 그리고 친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낙원에서 쫓겨나"도 괜찮은 작품이어서 점수를 줄 만 하고요.
아울러 "수정의 밤, 비취의 아침"은 작가의 다른 장편의 외전격인데, 구태여 본편과 연결되지 않더라도 자체적으로 즐길 수 있는 완성된 이야기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원래는 당연한건데 이 작가 외전에서는 고마와해야 될 일이더라고요)
하지만 이 두 작품으로 전체 별점을 끌어올리기는 역부족이죠. 그동안 제가 온다 리쿠라는 작가에 대해 안 좋게 가지고 있는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물론 이런 분위기 좋아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정통 추리에 가까왔던 두 편만 아래에 짧게 소개해 드립니다.
"수정의 밤, 비취의 아침"
장편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외전격인 작품입니다. 감옥같은 학교의 사연많은 학생들이라는 무대에서 '웃음물총새에게는 말하지마'라는 동요에 맞춘 사고가 이어지다가 주인공 요한이 마지막 사고로 죽을 뻔 한 뒤 결국 진상을 밝혀낸다는 이야기입니다.
강력 사건이 등장하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탓에 일상계로 보기는 어렵지만, 추리의 과정 자체는 일상계스러운 맛이 있는 독특한 작품이었어요. 특히나 '웃음물총새'라는 장난이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는 복선이 괜찮더군요. 평작 수준은 되는 작품이라 생각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대와 밤과 음악과"
음악 방송을 진행하는 두명의 남녀 DJ의 방송 속 대화로 진행되는 것이 독특한 재미를 가져다주는 작품입니다. 방송국 현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이 놓여있는 기현상을 청취자들에게 해석해 달라고 요청한 뒤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죠.
방송에서 틀어줬던 노래가 놓여있던 물건과 관계가 있고, 그 노래는 살인 사건의 피해자와 연관이 있다라는 식으로 연결되는 전개는 재미있었습니다. 앞뒤 여러가지 복선과 단서가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설득력도 높고요.
그러나 왜 이렇게 복잡한 작전을 펼쳐 범인을 옭아매려 했는지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건 아쉬웠습니다. 자백을 이끌어내려는 의도였다 하더라도 너무 불확실한 시도니까요. 어차피 '트위드 재킷'이라는 증거를 알고 있다면 이렇게까지 자백을 끌어낼 필요도 없어 보이고요. 게다가 마지막 유령소동은 유치하고 진부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재미 하나만큼은 확실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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