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의 기사 -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시공사 |
'이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 신본격 추리소설의 기수 중 한 명인 시마다 소지의 장편. 명탐정 미타라이 기요시의 시작을 그립니다. 책 뒤 해설을 보니 첫 작품인데 여러가지 이유로 발표가 늦어졌다고 합니다. 실질적인 데뷰작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작품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200페이지가 넘는 가장 긴 첫 번째 부분은 화자인 "나" 가 기억상실 상태로 발견된 뒤, 료코라는 여성과 우연찮게 동거하게 되면서 살아가는 내용이며 두 번째 부분은 "나"가 운전면허증을 토대로 과거를 알아가는 내용,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부분은 친구가 된 점성술사 미타라이 기요시가 "나"에 관련된 사건을 추리하여 진상을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기억을 잃기 전, 아내와 아이가 죽은 사건의 복수를 위해 살아왔던 것으로 보였는데 알고보니 이 과거조차 조작된 것이라는게 핵심 트릭이고요. 일종의 원격 살인을 위한 거창한 장치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 트릭의 설득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전혀 기대에 값하지 못했어요. 우선, 조건이 딱 들어맞는 기억상실 환자를 찾는다는 것 부터 문제입니다. 찾는 가족도 없고 기억도 완벽하게 없으며 당분간 기억이 돌아올 일도 없는 기억 상실환자... 설령 이런 환자를 운 좋게 찾았다 치더라도, 그를 마음먹은대로 조종한다는건 더 말이 안되고요. 정말로, 정말로 운이 좋아서 사건이 원하는대로 흘러갔다고 칩시다. 그래도 경찰에 체포되면 바로 게임 오버입니다. 사건을 은폐하는건 불가능하니까요. 이외에도 곳곳에 헛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범인 슈지가 과연 작중 묘사되는 것 만큼의 천재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에요.
세부적인 디테일도 억지가 많습니다. 자기 얼굴을 보기를 아무리 싫어해도 그렇지 자신의 얼굴을 착각한다는게 말이나 될까요? 필적을 그렇게 쉽게 위조할 수 있다는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설정도 부족합니다. 산탄총은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아예 나오지도 않더라고요.
물론 신본격 작가의 데뷰작다운 장점도 있기는 합니다. 추리의 과정 자체는 상당히 괜찮은 편입니다. 정말로 사소한 대화를 통해 실마리를 잡는다는 전개도 좋았고요.
물론 신본격 작가의 데뷰작다운 장점도 있기는 합니다. 추리의 과정 자체는 상당히 괜찮은 편입니다. 정말로 사소한 대화를 통해 실마리를 잡는다는 전개도 좋았고요.
미타라이의 캐릭터도 가장 좋았던 시절, 즉 "점성술 살인사건" 시절의 가난뱅이 점성술사 캐릭터이면서도 음악에 몰두하며 대단한 기타 솜씨와 오토바이 운전 솜씨를 뽐내는 등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작위적이기는 하나 중반의 일기부터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재미는 확실하고요.
때문에 별점은 2.5점.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미타라이 시리즈의 첫 작품이자 "점성술 살인사건"의 컴비 이시오카의 첫 등장 작품이라는 점에서 팬으로서는 놓치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또한 시마다 소지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기에, 일본 본격 - 신본격 추리소설 팬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덧붙이자면, 미타라이의 추리는 마지막 순간이 닥치기 훨씬 전에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웠습니다. 절박한 친구 사정을 모른척하다가 누가 죽어나갈 정도가 되니까 억지로 몸을 움직인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거든요. 이시오카도 이런 비정한 친구보다는 보다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네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