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시공사 |
홋카이도에 위치한 하마디젤 회장 하마모토 고자부로의 별장 "유빙관"에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사람들이 모여든다. "유빙관"은 괴짜 하마모토 고자부로가 일부러 기울여 지은 이른바 '기울어진 저택'으로 약간의 미로와 같은 방의 구성과 고자부로가 머무는 기울어진 탑이 딸려 있는 기괴한 저택이었다.
이 저택에서의 첫날밤에 초대손님 기쿠오카의 운전사 우에다가 완벽한 밀실인 자신의 방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며, 이 사건의 조사를 위해 출동한 경찰 4명이 조사와 보호를 위해 저택에서 잠을 자던 두번째 날 밤에는 기쿠오카 역시 완벽한 밀실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경찰은 도쿄에 도움을 요청하며, 도쿄에서 명탐정 미타라이 키요시가 친구 이시오카와 함께 유빙관에 나타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데...
이 작품은 <점성술 살인사건>에 이은 미타리아 시리즈 두번째 작품입니다. 일본 신본격추리 장르의 대표작 중 하나이기도 하죠.
그동안 신본격추리라는 장르의 작품들은 많이 읽어왔습니다. 보통 '독자에게의 도전'으로 대표되는 공정한 단서제공과 확실한 퍼즐 미스터리라는 장점과 함께 과장되고 작위적인 설정에 기인한 부분이 많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죠. 그런데 이 작품은 단점마저도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놀라운 마법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의 작위적인 설정 모두는 놀라운 트릭을 위해 짜여져 있고, 이러한 작위성이 완벽한 작가의 의도로 보이기에 의외의 즐거움을 안겨다 줄 뿐 아니라 놀랍게도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요소들이 "작위적"이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작위적인데도 불구하고 워낙에 스케일도 크고 허풍이 심해서 그다지 거슬리지 않는 묘한 매력이 돋보입니다. 여기서 한발자국만 더 나가면 곧바로 추리라는 장르를 넘어설 것 같은 아슬아슬함을 끝까지 잘 유지하고 있거든요.
게다가 설정면에서 공들인 만큼 트릭 하나만큼은 정말 압권입니다. 이 트릭을 위해 모든 것이 작위적으로 짜여져 있음에도 최소한 작위적인 무대장치를 만든 방법 자체는 합리적일 뿐 아니라 쉽사리 눈치채기 힘들게 교묘하게 숨겨놓은 작가의 노력 역시 돋보입니다. 주어지는 정보도 비교적 공정한 편이라 본격 추리물로서의 가치도 무척 높고요.
아울러 이러한 연극적이고 만화적인 공간에서 활동하는 인물들이 전부 "보통사람" 이라는 것도 독특합니다. 정체불명의 애꾸눈이나 절름발이, 꼽추노인이나 불길한 가문의 피, 몇대를 이어온 가문의 증오 같은 억지는 하나도 등장하지 않고 모여든 사람들 모두 약간의 동기와 속물적인 마인드는 있지만 전부 평범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거든요. 한마디로 고전 일본 본격 추리물의 공통점이기도 한 '작위적 설정 하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인물들의 난장판'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이 작품이 보다 현대적으로 느껴지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그러나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첫번째 우에다 살인사건의 밀실은 실제로 해결 가능했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범인을 추적할 수 있었음에도 두번째 사건과 엮어서 불가능 범죄로 몰아간 측면이 강했고, 두번째 기쿠오카 사건은 트릭 자체는 대단하고 멋진데 여러가지 변수가 너무 많아서 실제로 이 소설에서처럼 성공했을지에 대해서는 의심이 좀 갑니다. 아울러 동기를 너무 숨겨놓았을 뿐 아니라 동기 자체는 설득력이 떨어지는게 좀 아쉽네요. 이렇게까지 거대하게 공들인 트릭을 만들었다면 동기도 그에 어울리게 좀 거창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또 저택의 약도가 독자의 상상의 여지를 제한하거나 부정확한 정보를 주는 부분이 있다는 점도 공정성 면에서는 점수를 좀 깎아먹기는 합니다. 요건 확실히 감점 요소인데 작품 보다는 출판사의 배려를 탓하고 싶네요.
그래도 <점성술 살인사건>의 대성공때문에 후속작을 작업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 같기도 한데 작가 스스로 신본격추리라는 장르에 새로운 지평을 연 대단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후대의 신본격 작품들이 단지 트릭을 위해서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을 만든다던가, 어떻게든 독자를 설득시키려고 외려 더 비현실적인 상황으로 치닫는다던가 하는 작품들이 많은 것에 비해 아예 이렇게 대놓고 허풍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 진짜 신본격 추리물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하여간 읽으면서도 무척이나 즐거웠어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저택의 약도 등을 보강하여 보다 공정하게 독자와 승부할 수 있게 해 준다면 별점은 4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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