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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2

아이거 빙벽 - 트레바니언 / 이수경 : 별점 2.5점

아이거 빙벽 - 6점 트레바니언 지음, 이수경 옮김/황금가지

동명 영화의 원작입니다. 영화는 아주 오래전 TV에서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및 주연을 맡았던 작품이었죠. 영화를 통해 핵심 반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은 손이 쉽게 가지 않았었는데 작가 트레베니안이 이쪽 바닥에서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날짜별로 진행되는데 크게 아래와 같이 구분됩니다.
  1. 헴록에 대한 캐릭터 설명과 첫번째 타겟 살해
  2. 이후 손을 떼고자 한 헴록을 끌어들이기 위한 SS의 리더 드래곤의 음모 - 제마이아의 등장
  3. 결국 마지막이라는 조건으로 의뢰를 수락한 헴록은 등반 훈련을 위해 옛 친구 벤을 찾아감
  4. 벤의 등산학교에서 만난 옛 원수 마일즈에 대한 복수
  5. 암살을 위한 아이거 빙벽 등반 시작
  6. 등반 실패 이후 유일한 생존자로 남아 의뢰를 완수. 하지만 의외의 진상을 알게 됨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암살"을 다룬 암살 스릴러물입니다. <자칼의 날>이나 <피닉스>와 동일 장르죠. 그러나 <자칼의 날>과 <피닉스>와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크게 두가지, 하나는 킬러의 캐릭터에 촛점을 맞추었다는 점과 또 하나는 정치적인 목적의 암살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문제는 이 두가지 차이점 모두가 작품에 나쁜 영향만 끼친다는 것이죠.
특히 캐릭터가 문제입니다. 자칼이나 피닉스와 같이 정체불명의 암살자라면 모를까,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암살자인 비밀조직 CII의 부서 "수색-처형국" 소속의 요원 조나단 헴록은 표면적으로는 37세의 미술사 교수로 미술품 감정의 권위자이자 학교에서도 최고 인기의 교수이며 다국어에 능통하고 유명한 산악인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기도 합니다. 게다가 별로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스쳐지나가는 여자들은 모두 그와 같이 자지 못해서 안달이고 헴록 스스로는 포르노배우하면 떼돈 벌 수 있는, 사정을 조절할 수 있는 절륜한 정력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남성들의 판타지를 집대성한, 상상 이상으로 유치한 캐릭터인 것이죠.
또 암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아이거 빙벽 등반과 암살' 이 현실적이지 못해 당황스럽습니다. 조나단 헴록이 등산의 권위자라 등산대에 속한 타겟을 살해하기 쉽다는 것인데 어처구니를 상실한 이야기죠. 그냥 땅 위에 있을때 죽이면 되지... 다른 타겟들은 총으로 쏴서 잘만 죽이면서 이 타겟만 등산 중 사고사로 위장할 이유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겠어요.

게다가 사건의 발단이 마일즈가 헴록에게 빚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설정은 나중에 마일즈가 헴록 살해를 시도하는 모습으로 볼때 그냥 가서 죽이면 되는 것이여서 역시나 비합리적이고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글자를 가립니다) 등산대원 중 타겟이 없고 타겟은 따로 있었다는 결말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등산대원이 전멸한 뒤 드래곤이 의뢰를 완수했다고 헴록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으로 볼 때 드래곤과 CII도 타겟이 누구인지 몰랐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애시당초 왜 암살을 의뢰하고 진행했는지도 모르겠거든요. 이래서야 원래의 목적인 "확실한 복수"를 상대편에게 인지시키는 것은 불가능한데 말이죠
이 정도면 정치적 목적이 수반된 암살이 아니라 동-서 냉전 시대의 비밀 생화학 무기를 둘러싼 복수극이기에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것은 단점도 아니겠죠.

그래도 초유명작가의 베스트셀러답게 건질만한 부분도 있긴 합니다. 과거 동료이자 원수인 마일즈에 대한 복수극은 괜찮았고, 아이거 빙벽 등반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정말이지 손에 땀을 쥐게 하거든요. 단지 이 묘사를 위하여 앞부분의 말도 안되는 설정을 가져온 것이 아닐까 싶기는 하지만 정말이지 힘이 팍팍 느껴지는 재미를 안겨다 줍니다. 방대한 자료조사도 돋보이는데 예를 들자면 "비박"이라는 용어가 '비부악'이라는 외래어라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전 "대충 덮고 잔다" 라는 의미의 한자인줄 알고 있었어요...
마지막 반전도 뜬금없지만 계속된 복선으로 이어져온 단서를 통하여 밝혀지는 것이기에 과정만큼은 그런대로 괜찮았고요. 단 저는 영화를 먼저 봤기 때문에 반전을 이미 알고 있어서 썩 재미를 느끼기는 힘들었지만 말이죠.

한마디로 말하자면 스릴러보다는 무협지에 가까운, 남성을 위한 전형적인 마초 판타지물입니다. 때문에 암살자가 등장하는 암살 스릴러물을 기대한 저로서는 암살자의 캐릭터와 암살 자체의 설정에 문제가 있어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더군요. 앞서 이야기한 챕터로 따지면 1~3번 항목은 1.5점, 4번 3점, 5번 4점, 6번 3점 정도로 평균내자면 별점은 2.5점되겠습니다.
수준이 아주 높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킬링타임용으로는 최적화된 작품이라 간단한 읽을거리를 찾으시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빙벽 등반이 주 테마이니만큼 더운 여름에 딱 맞는 작품이기도 하네요.
덧붙이자면, 영화가 훨씬 재미있었던 것 같은데 너무 오래전에 본 것이라 확인을 위해서라도 영화를 한번 더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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