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모프의 과학소설 창작백과 -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선형 옮김/오멜라스(웅진) |
SF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여러 에세이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중-단편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죠.
먼저 1-2부는 에세이들로 과학소설 및 창작에 대한 작가의 글이 다양하게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고 적절한 유머를 갖추면서도 아시모프 자신의 방대한 지식과 경험이 잘 녹아있어서 정말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어요. 솔직히 작가의 소설보다도 재미있던 것 같습니다.
특히 '(과학/SF) 소설의 창작 비법'에 대한 에세이들이 인상적이었는데,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예로 들면서 설득력있게 풀어가는 플롯에 대한 이야기
플롯은 곧 소설이 아니다. 플롯을 둘러싼 이야기를 만드려면?
1. 아주 자세하고 복잡한 플롯을 만들어서 이야기 구축 작어에 많은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도록 한다. 사건에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도록 하는 것.
2. 극단적으로 플롯 자체를 폐기하고 작은 에피소드만 줄줄 늘어놓는 것.
3. 명쾌한 플롯의 제작
a. 플롯을 사용하여 유머나 풍자를 도입한다.
b.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통찰하는 방법으로 플롯을 사용한다. '등장인물의 성격창조'가 중요함
c. 어떤 사상을 개진하는 수단으로 플롯을 이용한다. 인생관이나 세계관 등.
- <아시모프의 SF매거진> 1989.6
라던가 훌륭한 SF 작가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친절한 설명
1. 경력을 쌓기 위한 준비 작업을 철저히 해야 한다. - 작문법 등의 학습 / 거장의 작품에 대한 꼼꼼한 독서 등
2. 과학지식을 쌓아야 한다.
3. 글을 쓰면서 배워야 한다.
4.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 <아시모프의 SF매거진> 1979.3
등 거장의 비법을 알려주는 보석과도 같은 에세이가 듬뿍 실려있습니다.
또한 과학 / SF 소설 그 자체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들도 재미있는데 인상적인 것을 하나 소개하자면
나는 퇴고하지 않고 초고를 최대한 빨리 쓴다. 그 뒤 다시 읽어보며 오자, 잘못된 문법 등을 고친다. 다음에는 두번째 원고를 다시 써나가면서 떠오르는대로 부분적으로 글을 수정한다.
로버트 하인라인이 어떤 식으로 글을 쓰냐고 묻기에 대답해 주었다. 그러자 그가 말하기를
"두 번씩이나 타이핑을 한단 말이야? 처음부터 안 틀리고 타이핑하면 되잖아"
거장들의 대화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만 일반인하고는 참으로 다른 사고방식이죠?
이러한 에세이 이후 마지막 3부는 중-단편 15편이 실려있는데 독특하고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아서 아시모프라는 작가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평점은 좀 들쭉날쭉하기는 하지만요.
이외의 국내 작가들의 서평과 이글루스 회원이시기도 한 잠본이님의 무지막지할 정도로 자세한 연표 역시 마음에 꼭 드는 부분이었어요. 아이작 아시모프가 '베이커 스트리트 일레귤러즈' 멤버였다는 것이라던가 AIDS로 사망했다는 것은 정말 처음 알았습니다. (잠본이님의 방대한 지식에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은 '추리작가'로의 아시모프도 좋아하기에 추리소설 이야기가 없다는 것 뿐으로 별점은 3.5점입니다. 에세이 부분만으로는 4점 주어도 충분하지만 전체 평점 2.7점의 3부 중-단편 소설 부분 때문에 약간 감점했습니다. 그래도 워낙에 에세이 쪽이 탁월하기에 과학 / SF 소설 뿐 아니라 모든 장르문학 작가와 독자들이 한번쯤 읽을만한 가치있는 책이라 생각되네요.
그나저나, 흑거미 클럽의 다른 에피소드는 물론 다른 추리소설들이 좀 보고싶은데 과연 출간될 수 있을련지도 궁금해지는군요. 추리쪽은, 특히 장편은 별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것 같지는 않지만요...
<칼>
작가가 되고 싶은 로봇 칼을 위해 주인 노스롭이 기술자를 불러 여러 기능을 업그레이드하여 진정한 작가로 만들어 준다. 그러나 칼이 쓴 작품을 읽고 위기의식을 느낀 노스롭은 다시 기술자에게 칼을 초기화시켜 줄 것을 요청한다.
액자소설같은 구성을 취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칼이 작가가 되어가는 과정과 함께 단계별로 칼이 쓴 작품이 소개되고 있거든요. 마지막에 작가가 된 칼이 쓴 작품 <완벽한 정장차림>은 <조지와 아자즐>이라는 아시모프의 시리즈 작품이기도 하다는군요.
아시모프의 유명한 '로봇3원칙'보다 '작가가 되고싶다'라는 소망이 더 우위에 있다는 주제를 담고 있는데 아시모프 스스로의 로봇 3원칙과 자기 자신에 대한 풍자와 비평을 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별점은 4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쇼트쇼트 단편. 좌우 역전에 대한 과학적인 이론을 담고 있지만 반전은 말장난 유머입니다. 깔끔해서 볼만하네요. 책 뒤 잠본이님 해설을 통해 포워드 박사가 실존인물이라는 것을 알고나니 더 웃기네요. 포워드 박사는 이 작품을 보고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합니다. 별점은 2.5점.
<낙심>
워게임 시뮬레이션을 다룬 단편. 컴퓨터가 '자신이 정의롭다는 독선'이 없기때문에 완벽한 시뮬레이션을 도출할 수 없다는 이야기인데 풍자가 세련되고 유머러스해서 마음에 드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환각>
15살 샘 체이스는 중성자별에서 에너지를 추출하려는 에너지 플래닛에 배속된다. 그리고 기이한 환각현상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는데...
작은 곤충(?)들이 연결되어 거대한 집단 지성을 이룬다는 설정과 텔레파시를 통한 의사소통이라는 아이디어가 좋았습니다. 마지막에 기계에 대한 맹복적인 신뢰가 좀 거슬리기는 하는데 저연령을 타겟으로 한 것 같기에 납득할 만 했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불안정성>
빅뱅의 시작에 대한 독특한 아이디어가 담긴 쇼트쇼트입니다. 그냥저냥 평범한 소품으로 보이네요. 별점은 2.5점.
<신이 되려 한 알렉산더>
컴퓨터 천재 알렉산더가 뛰어난 컴퓨터 부세팔러스를 만들어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는 단편. 컴퓨터 등을 이용하여 주식 및 각종 사회 현상을 예측한다는 아이디어는 별다른 것이 없지만 부세팔러스의 능력이 너무 막강하여 과거에 없었던 '변수'가 된 바람에 마지막에 다운된다는 결말은 신선했어요. 부세팔러스가 알렉산더를 대치하려는 야망을 품는다는 결말은 어땠을까 싶은데, 그럼 너무 뻔했을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협곡에서>
화성 협곡에 사는 화자가 보낸 편지로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일상계 SF라고 할 수 있겠죠. 화성 협곡이 장래 화성개발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과학적 이론과 향후 개발과정에 대한 설득력은 강하긴 한데 재미를 느끼기는 힘들었어요. 드라마가 없으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지구여 안녕>
정착지라 불리우는 우주식민지 주민이 지구에 던지는 경고, 즉 정착지 자체가 머나먼 우주로 떠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주장은 상당히 합리적이기는 하지만 시스템의 개선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를 너무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더군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전송가>
화성에서의 하이퍼스페이스 실험을 원하는 지구정부가 반대파 화성 거주민을 설득시키기 위해 프랑스 국가를 이용한다는 황당한 내용이 설득력있게 전개되는 유머러스한 작품.
화성 거주민이 프랑스 출신이 많다던가, 프랑스 국가가 승리의 이념을 담고있다던가 하는 식인데 결말은 '라 마르세예즈'를 이용한 말장난 '마르스 세이 예스!'로 끝나긴 하지만 위트가 넘쳐서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3.5점.
<페그후트와 법정>
미국 속담을 이용한 말장난 유머. 작품이라기 보다는 짧은 농담에 가까운 이야기로 아니나다를까 만담선집에 수록된 작품이네요. 영어에 능통하다면 즐길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왠지 마크 트웨인이 연상되는 소품이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오류 불허>
컴퓨터 - 워드프로세서가 작가의 글쓰는 법을 터득하여 창작기계로 거듭난다는 이야기. <칼>과 동일한 소재인데 전개가 무덤덤해서 기계가 학습을 통해 인간 이상의 능력을 지닌다는 케케묵은 설정의 변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말도 무덤덤해서 그냥저냥한 평작으로 보이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키드>
산아제한이 있는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많죠. 하지만 이 작품은 아시모프 작품 답게 산아제한의 해결책으로 로봇형제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결말에는 서늘한 반전까지 등장하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SF작가로서의 아시모프와 추리작가로의 아시모프가 공존하는 작품이랄까요? 별점은 4점입니다.
<우주공간의 나라들 : 현대의 우화>
적대국가의 사람들로 짜여진 지구의 에너지원 핵심 조작 설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교훈적인 우화입니다. 그런데 너무 교훈적이라 재미도 없고 작품으로 보기도 민망했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칩퍼의 미소>
칩퍼라는 타인의 생각을 조작할 수 있는 특수계층에 대한 짤막한 스릴러입니다. 두 칩퍼 중 더욱 뛰어난 능력자를 골라야 하는 테스트가 이야기의 핵심인데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는 않더군요. 회사의 지위보다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미모의 여성과 사귀게 된다면 별로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말이죠. <스캐너즈> 정도의 피튀기는 이야기가 전개되어야 설득력을 좀 지닐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골드>
컴퓨드라마라는, 지금 방식으로 이야기하자면 풀CG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자칭 작가라는 러보리언이 컴퓨드라마 제작자 윌라드를 찾아가 자신의 작품 <하나에 셋>을 제작해 줄 것을 요청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에 셋>이라는 작품의 짤막한 소개와 함께 컴퓨드라마 제작이 펼쳐지죠.
일단 이 컴퓨드라마는 현재 시점에서 보자면 완벽한 풀3D 애니메이션 제작을 의미하는듯 한데 시간을 앞서간 아시모프의 빛나는 발상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휴고상 중편 부문 수상작이라는데 솔직히 상을 탈만한 작품인지는 좀 의문이긴 했습니다. 번역자 해설에 따르면 세속적 하류 문화로 취급받는 장르문학을 불멸로 만들기 위한 갈망을 드러낸 작품이라고 하긴 하는데 아시모프 정도 되는 지위의 작가가 이러한 갈망을 표현한다는 것이 좀 억지스러워 보이기도 했고요. 제가 SF팬이 아니라서 그러한 기분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별점은 2.5점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