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
1947년, 10명을 독살하고 보석을 강탈한 전대미문의 천은당(天銀堂)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츠바키 자작은 알리바이를 대고 간신히 혐의를 벗지만 곧바로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맨다. 이후 긴다이치에게 츠바키 자작의 딸 미네코가 찾아와 석연치 않은 아버지의 죽음과 갑자기 등장한 아버지의 유령()을 조사해 줄 것을 부탁하고, 조사를 수락한 긴다이치 앞에 몰락한 귀족이자 츠바키 자작의 장인인 다마무시 백작가를 노리는 연쇄살인이 펼쳐진다...
아주 예전에 읽었던 "혼진 살인사건" 이후 옥문도 - 팔묘촌 - 악마의 공놀이 노래 - 이누가미 일족 - 에 이어 꾸준히 읽고 있는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입니다. 이로서 6작품째네요.
이 작품이 특이한 점이라면 도쿄의 번화가를 무대로 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 이외의 기본 설정은 다른 작품들과 거의 비슷합니다. 즉 "부유한 명문가이지만 실상 내용을 알고보면 콩가루 집안"을 무대로 "연쇄살인"이 벌어진다는 것이죠. 뭔가 괴기스러운 분위기로 끌고나가는 것도 여전한데 이 작품에서는 제목 그대로 "사건 현장마다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는 묘사가 등장하는 식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시리즈를 제외하고라도 여러 콘텐츠를 통해 하늘의 별만큼 접해본 너무나도 뻔한 설정이며 캐릭터들 역시 진부하다 싶을 정도로 전형적인 이야기죠. 그래도 이야기를 굉장히 빠른 템포로 전개하고 있으며 사건도 상당히 많이 시체가 전부 6구가 등장할 정도로 사건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품의 완성도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일단 "긴다이치" 시리즈이기에 당연히 기대해 봄직한 추리적요소가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첫번째 다마무시 백작 살인사건 트릭은 괜찮은 편이지만 사건자체가 우발적이었으며 핵심 트릭인 밀실 트릭이 여러가지 우연에 기댄 측면이 강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첫번째 사건 이외의 두번째, 세번째 사건은 아쉽게도 정교한 트릭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니고 단지 "분위기"만 한껏 끌어낸 사건이기에 언급할 필요도 없겠죠. 용의자가 너무 뻔하다는 것과 "악마의 문장"으로 대표되는 몇가지 지나친 작위적 설정 역시 전체적인 완성도를 떨어트립니다.
그나마 첫번째 사건에서의 동상을 이용한 트릭 하나만큼은 신선했고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는 설정을 드러내기 위한 여러가지 장치에 대한 합리적인 연출과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한 복선만큼은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때 많이 부족했어요.
또한 이 작품은 추리적 요소보다는 사실 사건의 동기가 되는 관계, 즉 "근친상간"에 대한 놀라운 진상이 핵심인데 이 진상을 끌고나가기 위한 설득력이 너무나도 많이 떨어집니다. 기본적인 인간관계가 너무 비정상적일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과정의 우연이 도가 넘을 정도라 도저히 현실세계에 있음직한 이야기로 보이지 않거든요. 너무 충격과 자극적인 소재에 집중한 것이 원인이 아닐까 싶은데 그나마도 발표 당시인 50년대 초반에 읽었더라면 충격적이기라도 했겠지만, 21세기에 읽자니 비슷한 류의 다른 작품이 이미 너무 많이 나온 탓에 별다른 새로움을 느끼기는 힘들었습니다. 저만해도 처음 "차이나타운"을 보았을때의 충격은 받지 못했으니까요.
그 외에도 전후 일본에 충격을 안겨준 "데이코쿠 은행 사건" 을 이야기의 곁가지로 쓴 것도 무리수가 아니었나 싶고 츠바키 자작이 자살한 동기도 석연치 않은 등 읽고나니 단점만 눈에 들어오네요. 제가 긴다이치 시리즈의 팬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확실히 시대에 뒤쳐진 거장의 평작 이하의 작품이라 생각되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여태까지 읽은 긴다이치 시리즈 중에서는 최악이네요. 다음 작품 "밤산책"이나 기대해 봐야 겠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