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05/07/28

옥문도 (獄門島) - 요코미조 세이시 / 정명원 : 별점 4점

옥문도 - 8점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시공사
쇼와 21년, 즉 1946년 일본이 항복한 직후 옥문도라는 섬에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가 찾아온다. 그가 찾아온 이유는 전우 기토 치마타의 죽음을 알리고 유서를 전하기 위해서라는 표면적인 이유 뒤에 그가 죽으면서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세 여동생이 살해당할 것이라며, 그것을 막아달라는 유언이 있었기 때문.

기토 가문은 섬의 선주로 막강한 권세가 있었지만 다이코라고 까지 불리웠던 막강했던 선대 선주 카에몬이 죽은 이후 본가와 분가와의 세력 다툼과 두 후계자의 징집으로 말미암아 서서히 가세가 기울고 있던 상태였었다. 치마타의 배다른 세 여동생은 대단한 미인들이었지만 모자란 듯 한 묘한 분위기의 자매들이었고 명탐정이라고 불리우는 코스케의 방문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곧 세 자매는 차례로 괴이한 방식으로 살해당하게 되는데....

기대하고 또 기대했던 "옥문도"의 정식 번역판입니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대표작이기도 하고 국내에는 "김전일"에서 할아버지로 잘 알려진 긴다이치 코스케의 활약이 돋보이는 작품이죠. 동서에서 "혼진 살인사건"이 이미 출간되었긴 하지만 "혼진"의 경우는 트릭이 너무 일본적이고 동기면에서 좀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강했으며 지루한 면도 없잖아 있었지만 이 작품의 경우는 재미와 전개면에서 훨씬 나아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먼저 외딴섬 "옥문도"와 그곳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 연쇄살인의 배후에 있는 섬을 지배하는 가문 (국내 영화 "혈의 누"도 거의 동일한 설정이었죠) 같이 음울하면서도 굉장히 폐쇄적인 이질적 공간을 무대로 한 것과 고르고의 세자매라 칭해지는 세자매, 그리고 자매들의 아버지인 광인인 요사마츠같은 비현실적인 존재들이 등장함으로써 동시대의 라이벌이었던 에도가와 란포의 변격물적인 분위기를 어느정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란포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분위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주도해 나가지만 이 작품에서는 일종의 동기와 트릭에 연관된 장치로 쓰이고 있다는 것은 차이점이겠지만요. 또 이야기에서 이러한 인물들이 비교적 합리적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극 구성에서 효과적으로 배치되어 이야기가 진행됨으로써 몰입도를 높이고 재미를 배가시키는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일본의 본격물로 명성있는 작품답게 추리적인 요소도 뛰어난 편입니다. 연쇄살인극이 펼쳐지는 와중에서 각각의 사건의 트릭 수준이 상당하거든요. 보통 엽기적인 범죄의 경우 그러한 엽기적 연출의 타당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많은 작품들이 실패하고는 하는데 이 작품은 상황과 트릭이 잘 맞물리는 괜찮은 트릭으로 보여집니다.
그 중에서도 첫번째, 두번째 사건에서의 알리바이 공작 트릭은 정말 빼어납니다. 세번째 사건 트릭은 예상 가능한, 약간은 뻔한 트릭이지만 범인을 특정하는데 있어서 장소의 특이성을 이용하여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상황 설정이 좋아요.
독자와의 승부도 굉장히 공평한 편이라 가장 중요한 단서를 앞머리에서 부터 설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중요 단서와 상황에 대한 묘사를 디테일하게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탐정인 긴다이치 코스케와 동일 선상에서 두뇌게임을 하게 하는, 본격물로서의 미덕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물론 트릭이 우연에 의지한 부분이 있으며 세밀하지 않다는 약점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아울러 살인범이지만 악하지만은 않은, 나름의 소신과 신념으로 범행을 계획하고 진행해 나가는 카리스마 확실한 범인이 킨다이치 코스케보다도 더 마음에 들었는데 범인이 자신의 모든 범행이 "헛수고"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막판의 작은 반전 후 너무나 급격하게 무너져 버리는 부분도 좀 아쉬웠어요.
그리고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려우나 중요한 단서가 지극히 일본적인 것이고, 동기 역시 소설에서 칭하듯 "너무나 봉건적인" 일본 특유의 상황에 기인하는 탓에 일본 이외의 지역에서 공감을 얻기에 좀 부족하다 싶더군요. 몇몇 부분에서 묘사와 설명이 너무 장황해서 지루하고, 중요 단서마다 꼭 토를 다는 방식 같이 세월을 느끼게 하는 요소도 단점이기는 한데 아무래도 너무 오래전에 발표된 탓이 크겠죠.

하지만 이러한 단점은 굉장히 사소한 부분으로 일본의 본격물의 풍취를 느끼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내용 전개와 기본 설정부터 지극히 일본적인 요소가 강해서 번역에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예상되지만 번역도 깔끔하고 특히 일본 속담이나 여러 인용되는 인물과 고사들을 각주 처리하는 등의 배려도 좋았고요. 책 자체도 최근 출간된 추리소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이즈와 디자인으로 폼나게 출간되어 고맙기만 할 뿐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기획에서 출판까지 책임져 주신 decca님께 원츄를 날리며.....! 부디 많이 팔려서 앞으로 시리즈가 간행되길 바랍니다. 

덧 1 : 마지막 긴다이치 코스케와 범인과의 한판 대결로 압축되는 결말 부분은 죽어야 할 모든 인물들이 죽은 이후에 범인을 밝내는 뒷북 성격이 강해 역시나 김전일의 할아버지구나.... 싶었습니다.

덧 2 :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 만큼 영상화도 많이 되었는데 캐스팅은 여기서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저도 본 적이 있는 "팔묘촌"도 올라와 있어서 재미있기도 하고,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있네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