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기준으로 선정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꽤 괜찮은 작품들이 실려있는 단편 앤솔러지. 다양한 분야의 장르들도 공평하게 배분되어 있고, 수록 작가들도 야마무라 미사나 아카가와 지로, 아토다 다카시, 나쓰키 시즈코, 도가와 마사코, 하라 료, 모리무라 세이이치, 오사와 아리마사 등 유명하고 친숙한 작가들이 많아 풍성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여성 - 남성 작가의 비율 배분 역시 공평하네요.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 최대의 수확은 다른 작품들에서는 항상 실망만 안겨줬었던 아카가와 지로의 정통 추리물 "곳에 따라 비"와 아토다 다카시의 서늘한 서스펜스 "취미를 가진 여인"입니다.
"곳에 따라 비"의 우노경부와 대학생 유키코 컴비는 꽤나 유쾌한 캐릭터라 다른 시리즈도 기대를 갖게 만드네요. 사건과 트릭도 꽤 기발하면서도 잘 짜여져 있고요. "취미를 가진 여인"은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며 사건도 일견 복잡해 보이지만 마지막에 꽤나 서늘한 반전을 가져다 주며 한방에 정리하는 전개가 괜찮았어요. 그 외의 작품들도 대체로 괜찮은 편입니다.
그러나 실망스러운 작품도 실려있긴 합니다. "내가 죽인 소녀"의 사와자키 탐정이 등장하는 하라 료의 단편 "소년을 본 남자"는 마음에 들던 캐릭터가 등장하는 단편이라 기쁜 마음으로 읽었지만 작품 자체는 별로였습니다. 드라마에 너무 신경쓴 느낌이랄까요? 여튼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어요.
도가와 마사코의 "노란 흡혈귀"는 최악이에요. 약간 저능아인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축으로 진행되는 1인칭 시점의 서스펜스물인데 설정과 전개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다른 작품들과는 내용이나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생뚱맞기도 했고요. 미국에서 출간된 일본 추리 단편 앤솔로지에도 선정된 유명 단편이라고는 하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단위의 야망"역시 기대 이하였습니다. 비정한 현대 조직 사회를 드러내기 위한 드라마이긴 한데 트릭도 거의 없다시피 한, 싸구려 치정극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어느 정도 수준을 갖춘 80~90년대 초반까지의 일본 추리계를 잘 드러내는 작품들이 선정되어 있다고 생각되네요. 저같은 일본 추리 소설 팬과 단편소설 팬이라면 만족하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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