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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04

Japan 미스터리 걸작선 1 - 한국, 일본 추리작가협회 추천 / 정태원 번역 : 별점 3점

J 미스터리 걸작선 1 - 6점 정태원 옮김/태동출판사

예전에 구했지만 다시 읽게 된 일본 추리 단편선. 일본 추리 작가 협회 창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펴낸 책으로 선정을 한국 추리 작가 협회에서 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낯선 작가의 낯선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 눈에 띄는데, 책 뒤의 설명을 보면 다른 단편선 등에서 이미 소개된 작품이 아닌 새로운 작품을 선정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하네요. 그러나 이러한 의도는 50주년 기념 앤솔로지라는 주제와는 좀 맞지 않았다 생각됩니다. 그동안 소개된 작품들이 일본 추리 문학의 대표작에 더 가까운게 당연하잖아요.
또 이러한 기획 의도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면, 진짜 국내에 초역되는 작품들만 모아 놓았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정작 그렇지 않은 작품들이 수록된 것도 이상하고요.
아울러 정통 추리나 스릴러가 아닌 환상문학과 호러, 그리고 SF에 가까운 작품까지 실려 있어 기준이 약간 모호하다는 것도 솔직히 잘 납득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나마 수록된 작품도 특정 시대나 작가별로 편찬된 것이 아니라 무작위인듯 한데 에드가상 수상작품집 처럼 어느정도 목차에서도 시대순 같은 기준을 가지고 책을 분류하는게 더 좋았을 것 같네요.

그래도 한국 추리문학 협회가 선정한 일본 추리 단편이라는 기획 자체가 그냥 놓치기에는 너무 흥미로울 뿐더러 전체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까지 가져다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로는 "광기의 계보", "정사의 배경" 그리고 "살의" 를 꼽겠습니다.
총 3권이라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1권 뿐... 언젠가는 2, 3권도 발견하여 책장에 추가하고 싶네요.

작품별 상세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아파트의 귀부인 - 아카가와 지로
새로 이사온 옆집의 미모의 귀부인이 하는 요리의 냄새를 알아 맞출 정도로 후각이 민감한 아내를 가지고 있는 구보, 그는 옆집의 부인에게 호감을 느껴 아내가 집에 없는 틈에 옆집에 찾아간다.
다른 앤솔로지에서도 많이 소개된 아카가와 지로의 단편. 추리 문학이라기 보다는 반전의 맛이 있는 스릴러랄까요? 하지만 너무 뻔해소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군요.

2. 나체의 방 - 호시 싱이치
일본 단편의 거장 중 한명인 호시 싱이치의 작품. 우연히 여러 남녀들과 복잡한 관계를 가지게 된 남자의 이야기. 상황 설정이 재미있고 여운을 주는 맛도 잘 살아있어서 역시나 단편의 거장다운 느낌을 전해주기는 합니다만... 추리물은 절대! 아닙니다.

3. 나폴레옹 광 - 아토다 다카시
아토다 다카시의 초 유명 단편. 제가 이전에 "Y의 거리" 소개 때에도 리뷰했기에 패스합니다. 좋은 작품이에요.

4. 고양이의 목 - 고마츠 사쿄
고양이를 키우면 죽는 미래의 어느 도시에서 일어나는 짤막한 이야기. 고양이를 워낙 좋아라 하는 일본이기에 나옴직한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전의 맛도 어느정도 있고 재미도 있지만 추리물도 아니고 호러도 아니고 SF도 아니고... 여러모로 좀 어정쩡한 느낌이 강했어요.

5. 광기의 계보 - 후지이 레이코
초등학교 교사 게이코는 우연히 들춰본 학생 기누코의 일기에서 그녀의 계모가 기누코를 광기로 몰고 가고 있는 상황을 알게 된다...
여성작가의 느낌이 잘 살아있는 작품으로 일기를 주요 매개체, 단서로 하여 전개된다는 특이함에 더해 극적 반전까지 뛰어납니다. 약간의 호러 분위기가 잘 살아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그런데 왠지 영상물에 더욱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6. 3억엔의 악몽 - 니시무라 교타로
평범한 올드미스 여사원 교코는 어느날 찾아온 변호사에게서 자신이 친절을 베푼 한 노인에게 3억엔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 변호사는 자신과 다른 인물을 착각하고 있었던 것. 교코는 유산을 상속받는 진짜 인물인 아리사와 나미코를 찾아가 담판을 지으려 하는데...
여정 미스테리의 달인이라는 니시무라 교타로지만 이 작품은 의외로 "지푸라기 여자" 같은 인물 설정을 가진 완전범죄 스토리더군요. 조금 의외였달까요. 그러나 기발한 발상에 비해 전개가 뻔하고 치밀함이 많이 부족해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7.얼굴 - 마츠모토 세이쵸
살인 사건을 저질렀던 배우 이노 료기치. 그는 자신이 주연인 영화가 전국 개봉되기 전에 자신이 저지른 살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이시오카를 살해하려 하는데...
"거장" 세이쵸 선생의 작품입니다. 세이쵸 선생 단편은 대표작들에 비해 많이 격이 떨어지는 편인데 이 작품은 꽤 괜찮네요. 특히 범인이 배우이고 영화 개봉 때문에 목격자를 죽이려 한다는 설정은 참신합니다. 하지만 결말이 너무나, 너무나 심하게 아닙니다...

8. 정사의 배경 - 츠츠야 다카오
한 주부가 음독 자살하지만 그 주부는 자신이 죽기 직전 Y타임즈의 독자 투고란에 과거의 애인에게서 협박받고 있다는 투고를 보내 상담을 의뢰한 상태. Y타임즈의 기자 소네는 단순 자살 사건은 아니라는 판단에 독자적인 조사를 개시하는데...
잘 모르는 작가인데 작품이 굉장히 좋아서 놀랐습니다. 독자 투고와 음독 자살한 여인을 연결시키는 발상도 뛰어나지만 실제 사건의 트릭도 괜찮고 무엇보다 전개가 굉장히 깔끔합니다. 진범과 동기도 납득할 수 있고 단서도 공정한 편이고요. 이 단편집 최고의 단편 중 하나였습니다.

9. 조건반사 - 오타니 요타로
여배우 미즈사와 미나코는 연기지도 담당 오모리 세이지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아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며 그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결혼 후 알콜 중독으로 바닥으로 추락한 세이지를 거추장 스러워한 미나코는 그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는데...
이른바 "조건반사"에 의한 다이잉 메시지가 등장하는 작품인데 여기서처럼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네요. 때문에 기발하긴 하지만 현실성은 떨어져 보입니다. 그래도 꽤 재미있었어요.

10. 벽 - 고다카 노부미츠
아내와 그녀의 정부에 의해 벽속에 파묻히게 된 남자의 이야기. 이 한줄이 이 작품의 전부입니다....

11. 살의 - 다카키 아키미츠
옆집의 이마노 부부를 돌봐주던 타누마 변호사는 이마노의 부인 준코가 질투로 저지른 살인사건을 변호하여 그녀를 감형시켜 집행유예를 받게 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어느날 이마노가 집으로 찾아와 충격적인 고백을 하게 되는데...
거장 다카키 아키미츠의 단편. 이른바 "살인을 하기위한 살의의 정도를 법적으로 판단하는 잣대가 어디에 있는가?" 가 이 작품의 핵심 요소로 이 살의를 최소한으로 나타내기 위한 범인의 치밀함, 법의 헛점을 잘 꿰뚫고 있는 내용이 아주 충격적이었습니다. 1952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는 보이지 않게 세련되고 꽉 짜여진 구성이 놀랍네요.

12. 소라 - 야마무라 마사오
추리단편이라기 보다는 못살던 시대의 불우한 가족의 이야기를 리얼하게, 적나라하게 그린 순문학에 가까운 단편입니다.

13. 무서운 선물 - 유키 소지
한 여자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키스했다가 저주(?) 받는 한 바람둥이의 이야기. 전해주는 꽃들의 꽃말로 마음을 나타내는 이야기 전개는 괜찮지만 마지막에 저주니 어쩌니 하며 마무리하는 결말은 납득이 안됩니다...

14. 연습게임 - 후지무라 쇼타
가지키는 아내 구니코의 수다를 겨우겨우 참고 살다가 우연찮게 불륜을 저지른 상대 미와와의 달콤한 미래를 위해 그녀를 살해하려 한다. 하지만 그가 아내와 몰래 만나기로 한 장소에 아내는 오지 않고 다른 장소에서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고 가지키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함정에 빠지는 인물이 등장하는 "함정물"인데, 어차피 가지키는 아내 구니코를 죽이려 했으므로 그다지 용서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네요. 전혀 관계없는 인물이 함정에 빠지는 것이라면 모를까... 반전의 여운을 남기기는 하지만 좀 약합니다.

15. 우물이 있는 집 - 미나카와 히로코
과거 자신이 유괴당한 집에 신혼여행을 오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 이야기의 전개가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 흘러가는 구조로 여성작가만의 섬세함과 미묘함이 잘 살아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줄거리에 비해 결말은 시시했어요.

16. 복안 - 소노 다다오
일본의 손다이크 박사라고 불리운다는 복안전문 범의학자 고이케 고로라는 캐릭터가 나와 두개골 복안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인 작품. 캐릭터 이외의 설정과 전개는 평이합니다.

17. 사랑 - 미야자키 준
동물 뇌세포를 집어넣은 육아 로봇이 저지른 아동 살해 사건 이야기. 아시모프 작품과 유사한 분위기지만 반전이 인상적입니다.

18. 산키치의 식욕 - 와타나베 게이스케
어려운 시대, 어렵게 살아가는 고학생 산키치가 우연히 주운 3엔으로 한끼를 해결하는 이야기. 이야기는 꽤 재미있고 진지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만 순문학 단편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작가도 그렇고 작품도 그렇고 왜 이 단편선에 실려있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19. 쇼윈도의 연인 - 요코미조 세이시
소설에 빠져드는 기이한 습성이 있는 청년 다마루 소진은 최근 간행된 소설 "쇼윈도의 연인"을 읽은 직후, 한 양품점 쇼윈도의 마케팅을 사랑하게 되는데...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요코미조 세이시의 단편이라는 것 자체가 가치가 있지만 작품 자체도 인상적입니다. 처음에는 다른 외국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일종의 성도착적인 애정에 대해 다루는 듯 하다가 급변하여 놀라운 반전을 남기는 작품으로 발표 시대를 감안한다면 정말 기발한 상상력과 아이디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거장다운 작품입니다.

20. 범인은 누구인가 - 구사카미 진
쌍동이 중 한명이 범인인 것은 확실한데 누구인지를 몰라 궁지에 몰린 경찰이 사건을 결국 해결한다는 이야기. "음악"을 주요 소재라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다지 인상적이진 않지만 트릭과 설정은 마음에 들었어요.

21. 계단을 오르는 남자 - 마유무라 다쿠
세계가 거대 빌딩화되어 엘리베이터가 기차처럼 다니는 세계. 한 남자가 25.000층의 건물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하고 그는 계단을 올라 새로운 층에 도착할 때마다 점차 여행자에서 모험가, 그리고 성자로까지 추앙받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가 꼭대기 층에 다다르게 되는 날이 오고 군중이 그를 보기 위해 운집한다...
아이디어가 정말 기발합니다! 엘리베이터가 기차처럼 다니는 초고층 빌딩 사회에서 목적없이 그냥 계단을 오르는 남자가 주변 인물들에 의해 성자로까지 추앙받게 되는 과정이 묘하게 현실감 있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말은 너무나 시시해서 아쉽습니다. 좀 더 생각했더라면 정말 마음에 드는 걸작 단편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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