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 죽은 남자 - |
고등학교 1학년생 히사타로는 하루를 아홉 번 반복해서 겪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의도도 아니고 원리도 모르지만. 히사타로는 그것을 "반복 함정"이라고 불렀다.
그런 히사타로는 할아버지 댁에서 열리는 신년회에 모든 가족과 함께 참석했다. 히사타로의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막내 이모와 대립하고 있었는데, 신년회에서 후계자가 정해질 예정이었다. 신년회 중 히사타로는 모처럼 술을 많이 마셔서 집에 가는 차를 탔다고 생각했지만, 다음 날 아침 그는 다시 할아버지 집에서 눈을 떴다. "반복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어제와 다르게 할아버지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히사타로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막기 위해 아홉 번의 반복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작전을 짜지만, 그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 할아버지를 살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히사타로는 과연 할아버지의 살해를 막을 수 있을까?
그간 격조했습니다. 장기간 출장을 다녀오는 바람에... 정말 오랜만에 리뷰를 올립니다. 이 작품은 "닷쿠 & 타카치 시리즈"로 접해보았던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작품으로,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타임 루프를 다룬 콘텐츠는 많습니다. "도라에몽"에서는 숱하게 반복된 소재이기도 하고, 작가 본인도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서 영감을 얻어 썼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이 작품은 명확하게 정해진 규칙 안에서 사건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전개를 갖췄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습니다.
해당 규칙은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 반복 함정은 아홉 번 반복되고 다음 날로 이어진다.
- 상황을 바꾸려는 노력도 "오리지널 주"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결국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규칙을 통해 히사타로가 할아버지의 살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작품 내에서 설정되어 있는 후계자 선정과 맞물려 재미있게 펼쳐집니다. 특히 하루 일상의 조그만 변화가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과율에 대한 정교한 묘사가 발군입니다. 예를 들면 루나 누나의 귀걸이의 존재 같은 것이요.
추리적으로도 즐길 거리가 많습니다. 할아버지가 집을 방문한 가족들에게 이상한 의상을 강요하는 이유, 아침에 빨간색 색종이를 찾은 이유, 범인들이 호접란 화분을 흉기로 쓴 이유, 할아버지의 일기 등의 디테일이 작품에 영향을 미치면서도 합리적으로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반복 함정"의 맹점이자 오류를 해결하는 마지막 부분이 압권입니다. 히사타로가 죽었을 가능성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거든요. 그 외에도 작품이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한 묘사가 많은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러나 아무래도 정통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탓입니다. 히사타로가 범인이 누군지를 알고 범행을 막기 위해 노력해도, 원래의 결과로 회귀하기 위하여 또 다른 인물이 범행을 저지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작중 히사타로가 결국 누군가 다른 인물이 범행을 저지를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너무 늦는게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무의미한 노력을 너무 반복했달까요.
그리고 단점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 "반복 함정" 때문에 히사타로가 30세 정도의 정신연령을 갖췄다고 한들 사람들이 인식하기로는 고등학교 1학년이라서, 한참 연상인 도모리 씨가 사랑에 빠진다는게 잘 와 닿지 않았습니다. 도모리 씨의 감정과 고백이 반복의 와중에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하는 부분이기도 한 만큼, 무난하게 히사타로를 대학생 정도로 설정하는 게 더 좋았을 겁니다.
그래도 이색적인 타임 루프 SF로 읽히는 재미 하나만큼은 충분한 가작입니다. "타임리프"와 비스무레하지만 나름 차별화되는 점도 많고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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