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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4

안녕, 긴 잠이여 - 하라 료 / 권일영 : 별점 2.5점

안녕, 긴 잠이여 - 6점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비채
아래 리뷰에는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오즈미라는 청년이 사와자키에게 사건을 의뢰했다. 그는 11년 전 고시엔 4강전에서 승부조작 누명을 썼던 인물이었다. 의뢰 내용은 승부조작 수사 도중 자살했던 누나 유키의 죽음에 대한 진상 조사였다.

하라 료의 사와자키 시리즈 세 번째 작품으로 1995년에 발표되었습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이죠. 초·중반부는 야구 승부조작 관련 작품이 아닐까 싶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더군요.

그런데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솔직히 좋은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나쁜 작품은 아니었지만 전작들에 비하면 단점이 더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단점 중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은 운과 우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작위적인 전개입니다. 큰 흐름으로 본다면 사와자키가 진상에 이르게 되는 수사는 아래의 4단계를 거칩니다.

  1. 아키바 도모코의 증언이 허위임을 밝혀냄 : 사와자키의 넘겨짚기
  2. 유키와 친하게 지내던 오토바이 타는 사람 정보 입수 : 아키바 도모코를 통함
  3. 오토바이 타는 사람과 친했던 이나오카에 대한 정보 입수 : 관리인을 통함
  4. 오토바이 타는 사람의 성별 및 오토바이 번호 입수 : 이나오카를 통함

우선 1번의 경우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그냥 사와자키의 넘겨짚기에 불과합니다. 아키바 도모코가 끝까지 자기가 봤다고 우겼더라면 거기서 게임 끝이지요. 게다가 10여 년 전 자신이 바람 피운 것을 들켰는데 불구하고 다른 정보를 굳이 사와자키에게 전해주는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또 3번은 유키가 살던 TK 맨션 관리인이 사진 찍는 취미가 있고 그 사진을 모두 앨범에 정리해놓았다는 설정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이 역시 지나치게 운에 의지한 겁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소설적 장치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나오카가 10년 전에 잠깐 동거했던 여자가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 번호를 기억하고 있다는 건 확실히 억지입니다. 물론 일종의 말장난 같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고, 이 덕분에 사와자키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게 된다는 복선은 좋았지만 설득력은 낮아요. 게다가 초반에 벌어진 가와시마의 죽음, 이어지는 우오즈미 습격이 모두 사건과 관계없었다는 것도 당황스러웠습니다. 뭔가 있음직하게 끌고 가려는 작위성이 지나쳤달까요? 그 외에도 사건의 흑막이 신조 유스케라는 설정은 억지스럽고, 이 비밀을 우오즈미 효도가 짊어지고 함구한 것도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부실합니다. 결국 사와자키의 부지런한 탐문과 발품에 운과 우연이 더해져 진상이 드러날 뿐, 추리로 볼 만한 부분은 거의 없는 탓입니다. 진상은 결국 당사자들의 자백에 의존할 뿐입니다. 사와자키의 근거 없는 직감 추리가 도를 지나친 것도 눈에 거슬렸습니다. 거의 초능력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는데, 대표적으로 아키바 도모코 증언에 대한 직감 추리라든가, 우오즈미에게 승부조작을 제안한 것이 유키가 아니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넘겨짚는 것도 정도가 있지요.

다행히 추리적인 아쉬움은 꽤 그럴듯한 반전과 진상으로 어느 정도 덮이기는 합니다. 어차피 하드보일드 작품들이 대단한 추리를 선보이는 것은 아니니, 추리 요소가 부족한게 큰 단점이라 보기 어렵기도 하고요. 명성에 걸맞은 좋은 부분도 많습니다. 콩가루 명문가의 복잡한 가정사, 폭력조직이 연계된 사기행위라는 미국 하드보일드풍 설정을 일본 현지화에 성공적으로 녹여낸 것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전통 있는 "노" 종가를 콩가루 명문가 설정에 집어넣은 건 아주 좋았습니다. 가문을 이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막장 가족사에 설득력을 불어넣었기 때문입니다.

하드보일드 탐정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사와자키의 고독하면서도 건조한, 늑대 같은 캐릭터도 여전히 잘 살아 있었고 손에 잡힐 듯한 묘사 역시 탄탄합니다. 대사와 분위기 모두 근사해요. 제목부터 그렇지요. 또 작품과 직접 상관은 없지만, 오랜 팬으로서 사와자키와 신주쿠서의 니시고리 형사, 폭력조직 세이와카이의 하시즈메를 엮는 과거 사건 ― 13년 전 경찰 자금과 폭력조직의 각성제를 들고 도망친 옛 파트너 와타나베가 어떻게 되었는지가 밝혀지는 부분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설정 없이는 이후 시리즈가 이어지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네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시리즈 전작들에 비해 단점과 아쉬움도 있었지만 좋은 점도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하드보일드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한 번쯤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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