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요리 - 스탠리 엘린 지음, 김민수 옮김/엘릭시르 |
2003년에 동서 추리문고 출간본으로 읽고 폭풍 감동했던 스텐리 엘린의 걸작 단편선집. 당시 별점은 5점이었었죠. 이번에 1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엘릭시르에서 정식 번역본으로 재출간되었기에 다시 구입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작품들은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번역에서도 차이가 나고요. 제목부터 틀리더라고요. 원제를 보니 엘릭시르 번역본이 확실히 제대로 된 번역이긴 하더군요. "the best of everything"은 <최상의 것>이지 <너와 똑같다>일 수는 없잖아요? <배반자들 (The Betrayers)>의 경우, 동서판의 <벽 너머의 목격자>라는 제목이 더 와 닿기는 했습니다. 최초 일어판의 초월번역 제목을 그대로 따 온 것이겠지만.... 그래도 번역은 일단 원제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라 생각되기에, 엘릭시르 버젼에 점수를 더 줄 수 밖에 없네요. 덧붙이자면 유명한 스빌로스의 아밀스턴 양 요리도 스비로스의 아미르스탄 양 요리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역시나 엘릭시르 쪽이 더 그럴듯하게 느껴집니다.
허나 작품들 자체는 10년도 더 전에, 그것도 한번 읽었었기에 신선함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기는 합니다. 아무래도 별점 5점을 줄 때 만큼의 감동을 느끼기에는 힘들었어요.
그래도 오 헨리를 연상케하는 반전의 맛은 여전히 살아있고, 일상적이지 않은 독특한 세계와 인물을 그려내는 설정 역시도 빼어납니다. 개인적으로는 각 단편들에 등장하는 악당들 대부분이 지옥으로 간다는 결말들도 마음에 들었고요. 한마디로 언제 읽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를 항상 전해주는 걸작 단편집이에요. 별점은 4점입니다. 이런 말은 좀 식상하지만, 아직 이 작품을 읽지 않으신 분들이 부럽습니다.
각 작품별 짤막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특별 요리
스비로스의 아미르스탄 양 요리! 뭐 더할나위없는 걸작이죠.
손발의 몫
"미생"이 "완생"이 되기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랄까. 비정한 고용인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르지만 본인은 그에 대한 자각없이 하나의 기계로 동작한다는 작품. 지금의 한국 사회와 딱 어울리는게 어떻게 보면 시대를 굉장히 앞서간듯한 느낌이에요. 취업을 위해 경쟁자를 살해한다는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걸작 <도끼>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성탄 전야의 죽음
이십여년에 걸친 무간지옥 이야기. 누가 제시를 죽였는지에 대해 수수께끼를 불러일으키다가 마지막 대사 하나로 놀라운 반전을 터트리는 작품. 이런 류의 서늘한 느낌을 전해주는 반전 단편으로는 교과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수작입니다.
애플비 씨의 질서정연한 세계
아내를 여섯명이나 죽어가며 자신의 골동품가게를 지키려던 애플비씨는 일곱번째 여자와 결혼하는데, 정작 그녀는 그에 대한 모든 범죄사실을 알고있다는 내용의 작품. 조금 작위적이기는 하나 블랙 코미디 느낌의 반전 결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체스의 고수
체스에 몰두하다가 자신의 상대가 될 또다른 인격을 분열시킨다는 내용.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아서 조금 아쉬웠어요. 허나 평범한 사람의 정신이 붕괴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는 대단했기에 읽을만한 가치는 충분합니다.
최상의 것
<리플리>의 또다른 버젼이랄까. 자신과 닮은 부잣집 아들을 죽이고 그에게 오는 돈을 가로챈 젊은이에게 파국이 찾아온다는 내용. 전혀 다른 세계 두개가 이어지는 설정, 그리고 반전 역시 좋았던 작품.
배반자들
과거 읽었을 때에도 아주 좋았던 작품. 벽 너머에서 누군가 살해당하는 소리를 들은 이웃집 남자의 활약(?)이 비극적으로 끝나는 이야기인데 역시나 반전 매력이 돋보입니다.
하우스 파티
무간지옥 2탄. <사랑의 블랙홀>의 막장물 버젼이죠. 반전 매력은 없고 좀 뻔한 내용이지만 시끌벅적한 분위기, 그리고 연극과 무한 반복되는 세계라는 감옥을 연결시키는 설정은 나쁘지 않았어요.
브로커 특급
아내의 불륜을 눈치채고 불륜남 살인을 실행에 옮기는 이야기. 다 좋은데 결말이 석연치는 않더군요. 여자가 잘못한게 뻔한데 진정한 사랑 운운하면서 같이 죽는건 말도 안돼죠. 내가 너무 보수적인건가?
결단의 순간
태어나서 고민이라는걸 한번도 안해본 남자가 일생일대의 고민을 앞둔다는 내용. 열린 결말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입장이 전혀 다르기는 하지만 목숨을 건 딜레마라는 점에서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피아니스트를 불타는 집에 수갑을 채워놓고 도낀지 칼인지를 꽂아놓고 쿨하게 떠나는 남자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어디서 읽었더라?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