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 -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오유리 옮김/작가정신 |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술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들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술 먹고 상사에게 실수를 한다던가, 중간에 잠들어서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던가 등의 이야기들이거든요. 그러나 다행히 그냥 술 먹고 사고치는 이야기만 수록된 것은 아닙니다. 사건들의 디테일이 좋고 기승전결, 게다가 반전까지 맞아 떨어지는 재미난 이야기들이 가득해요.
예를 들면 엔도 편집장 이야기들 들 수 있습니다. 미야코가 술을 먹고 엔도에게 와인을 쏟게 되는 사건을 저지르는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이는 이야기로 따지면 '기승'에 불과합니다. '전', 즉 극적 긴장을 불러 일으키는 부분은 아내에게 잡혀사는 엔도에게 술취한 다음날 아내가 화를 내면서 물어보는 장면부터입니다. 와인을 누가 쏟았냐고. 엔도는 이실직고합니다. 회사 여직원이 취해서 쏟았다. 그런데 아내가 보여준 것은 런닝이었습니다! 그때 엔도는 기겁을 합니다. 셔츠는 전날 술집에서 빨아주어서 얼룩이 없어진걸 떠올렸기 때문이죠. 여자가 술취해서 술을 쏟았는데 셔츠가 아니라 런닝에만 묻었다.... 여기가 '전' 부분입니다. 다행히 셔츠에 묻은 와인도 지워진게 아니라 어두운 조명 탓에 지워진걸로 보였다는 결로 이어지죠. 재미있지 않나요?
추리 소설가다운 에피소드들도 제법 있습니다. 첫번째는 세토구치 마리에, 통칭 문언니가 오랜 동료 이케이의 결혼 축하 회식에서 이케이의 결혼 반지를 잃어버리는 에피소드입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결국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반지를 찾지 못해 우는 문언니를 이케이가 위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미야코의 추리가 긴 여운을 남깁니다. '어쨌거나 문언니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벌이고 싶었던게 아닐까? 그러면 그 핑계로라도 울 수 있을 테니까...' 일상계다운 멋진 이야기였어요.
다음 에피소드는 미야코가 친구 사나에와 함께 가루이자와로 출장갔을 때의 에피소드입니다. 함께 술을 먹고 미야코가 깜빡 잠든 사이 사나에가 사라집니다. 미야코는 한참 찾다가 호텔 방 밖에서 자고 있는 사나에를 발견하죠. 그런데 그녀를 데리고 들어 오려다 호텔 방 문이 닫혀 못 들어 오게 됩니다! 만화 등에서 흔히 보아 온 이야기의 재탕이긴 한데 진상에 대한 추리가 그럴 듯 합니다. 사나에가 사는 집 구조가 호텔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술 때문에 집에 온 것으로 착각한 사나에가 욕실에서 나온 다음 좌측으로 돌아 문을 열고난 뒤 바로 뻗었는데 방의 배치는 정 반대여서 호텔 밖에 쓰러지게 된 것이죠.
이러한 이야기를 탄탄한 묘사로 뒷받침하는데 이 역시 볼만합니다. 누군가가 이야기 해 주는 듯한 문체도 독특하고요. 특히 코사카이 미야코의 심리묘사와 대사들이 정말로 찰집니다. 정말로 어딘가에 있는, 현실 속 누군가를 그대로 그려낸 듯 생생한 덕입니다. "뭐가 구시렁이고 뭐가 불평인가. 그 기준점은 명확히 정의할 수 없다. 하지만 전자에 약간의 유머와 여유가 있다면, 후자는 오로지 암흑의 구렁텅이 같은 이미지다." 같은 식으로 말이죠. 이외에 온갖 맛있는 술과 안주에 대한 소개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애주가, 그 중에서도 만화 <<음주가무연구소>>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완전히 취향 저격이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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