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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7

가을꽃 - 기타무라 가오루 / 정경진 : 별점 2점

가을꽃 - 4점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나'와도 오랜 시간동안 인연이 있는 마을의 고등학교 소녀인 쓰다 마리코는 축제 준비 중인 학교 합숙 중에 옥상에서 떨어져 사망한다. 쓰다와 단짝 소꼽친구읜 이즈미 리에는 그 이후 빈 껍데기같은 모습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나'는 우편함에서 쓰다의 교과서를 복사한 종이라던가, 이즈미가 비에 젖은 채 멍하니 있는 모습 등을 발견한 뒤 사건의 진상에 대해 엔시 씨에게 물어보게 되는데...


일상계의 시조인 '엔시 씨와 나' 시리즈 세 번째 작품. 역자 후기를 보니 국내 출간은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판매량이 별로 좋지 않았나보네요.
하지만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는건 아닙니다.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인 <<하늘을 나는 말>>은 그런대로 기묘한 일상 속 수수께끼와 추리가 조화를 이루고 있지만, 가면 갈 수록 추리적인 요소가 희석되고 순문학에 가까운 분위기로 변해가거든요. 요네자와 호노부의 <<빙과>>로 대표되는 후대의 일상계에 비하면, 지나치게 느릿느릿하고요.

이번 권은 이렇게 순문학으로 향하는 흐름의 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수께끼는 딱 한가지, 옥상에서 떨어진 쓰다 마리코 사고사에 대한 진상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과 관계없는, 주변에 대한 세밀한 묘사의 분량이 훨씬 많아요. 대표적인게 '나'가 인상적으로 읽었던 여러가지 책들에 대한 묘사입니다. 플로베르에 대해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흥미롭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핵심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였습니다.
또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강력 사건은 일상계 분위기와도 사뭇 다르며, 이야기도 굉장히 묵직하고 어둡게 흘러갑니다. 전반적으로 '죽음'의 분위기가 맴돌거든요. 요네자와 호노부 등으로 대표되는 밝고 쾌활한 전형적인 일상계의 팬이라면 이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을거에요. 이 작품은 그런 전형적인 일상계가 아니라, 차라리 기리노 나쓰오 쪽에 가까우니까요. 죽음이 짙게 감도는 순문학적인 글이라는 점에서는요. 물론 그만큼 끔찍하지는 않습니다만.

이렇게 주변 묘사가 많다고 하더라도 추리적으로 괜찮았다면 그렇게 나쁜 점수를 주지는 않았을겁니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쓰다 추락 사건은 한 권 전체를 모두 할애할만큼 대단한 수수께끼도 아닐 뿐더러, 진상도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명 일상 속 사건이기는 한데, 너무 비일상적인 상황이었거든요.

진상은 다른 학생들에게 비밀로, 둘이 만든 축제 기념 현수막을 쓰다가 옥상에서 내리다가, 밑에서 이즈미가 당기는 바람에 그만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언가를 난간 너머로 넘기다가 떨어지는 사고의 대표격은 이불을 털다가 베란다에서 떨어지는 경우입니다. 실제 사고도 있었고, 같은 트릭을 히가시노 게이고가 <<오사카 소년 탐정단>> 시리즈 중 한 편인 <<시노부 선생님의 은혜>>에서 써 먹은 적도 있을 정도로 친숙하지요. <<시노부 선생님의 은혜>>는 1988년 3월 발표되었고, 이 작품은 1991년 발표되었으니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러나 이불을 터는 것에 비해, 현수막을 내리다가 사고가 일어났다는건 잘 와 닿지 않습니다. 이불을 털면 몸의 중심이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하지만 현수막을 내리려면, 몸의 중심은 뒤로 향해야 할 겁니다. 쇠파이프에 매달아 놓은 아래 쪽을 천천히 내리기 위해서라면 말이지요. 실제로 작품 속에서도 쓰다가 떨어진건 굉장한 우연이 겹친 결과로 묘사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래서야 여러모로 개연성이 부족해요.
이를 드러내기 위한 단서 역시 쓰다와 이즈미가 쇠파이프로 칼싸움 흉내를 내었다는 증언, 둘이 축제용 옷을 5벌 만들기 위해 천을 구입했다는 증언 정도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엔시 씨가 진상을 파악한다는건 억지스럽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나'가 중학교 동창 오토바이에 동승한걸 계기로 급작스럽게 사고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는 전개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에요. 사고 당시, 옥상 문은 잠겨 있었고, 쓰다 외에는 사람이 없었던건 사실이라 옥상에서 무언가 범죄가 일어났을 가능성은 없으니까요. 물론 옥상이 아니라 다른 층에서 뛰어내린게 아니냐는 추리도 가능합니다. 단, 이를 위한 그 어떤 단서, 증거와 용의자도 묘사되지 않아서 딱히 그럴 여지가 없네요. 무언가에 쫓기고 있었다면, 선생님들이 많이 있던 학교에서 비명 한 번 안 질렀을 리 없잖아요?
억지는 추리의 계기가 된, 이즈미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를 보내는 과정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다지 친하지않은, 안면이 있는 동네 언니이자 학교 선배에게 이렇게까지 의지할 이유는? 죽을만치 고민이 되고 걱정이 되었다 한들, '나'가 그 고민을 털어놓을 유일한 인물일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애초에 추리 소설일 이유도 없어요. 이즈미가 쓰다 죽음에 관련된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묘사를 계속 던지는 만큼, 이 사건은 탐정이 아니라 정신과 의사나 카운셀러가 필요한 상황이거든요.
한마디로, 그렇지 않은 작품을 추리 소설로 만들기 위한 억지가 너무 많습니다. 차라리 '나'가 카운셀러였다면 좀 더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지금은 여러모로 무리수 투성이에요.

결론적으로, 추리 소설 애호가에게 어필할 부분은 많지 않기에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일상에 대한 여성스러운 섬세한 묘사는 분명 돋보이지만, 기대와는 사뭇 달라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군요. 후속권이 출간되었다 한 들 더 이상은 선뜻 구입해서 읽어보지 않았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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