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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6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야마모토 요시타카 / 서의동 : 별점 4점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8점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서의동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과학기술이 주요 축의 하나였던 일본의 근대화 150여년에 대한 역사서.
메이지 초기 이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뒤 전쟁을 거쳐 현대,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이르기까지 일본 내에서의 과학 기술의 역할과 '총력전' 이라는 형태의 방식에 대해 7장, 400여 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상세하게 조망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굉장히 유익했던 독서였습니다. 그동안 항상 궁금했었던 여러가지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도 있었고, 잘 몰랐던 여러가지 사항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것은 물론, 일본의 현재 모습이 어떻게 비롯된 것인지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도 가늠할 수 있게 되었고요.

궁금했었던 의문이 해결된 것 중 가장 대표적인건 "왜 일본은 고작 몇 년 정도 앞서 개항한 걸로 20세기 초중반, 세계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는지?" 입니다. 그 해답은 한마디로 '운이 좋았다'는 것이네요. 서구에서도 물리학에서 신학적 내용과 같은 불필요한 내용이 추방되고, 수학도 정리되어 세련되어 갔으며, 과학 연구와 연구자 양성이 사회적으로 제도화되어 학문의 습득이 쉽고 체계적이 된 19세기 후반에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덕분인거죠. 여기서 조금만 빨랐어도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을테고, 50년만 늦었어도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이 태동한 뒤라 습득 장벽이 높아서 서구 물리학과 관련 학문을 쫓아가는건 굉장히 어려웠을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흔히 이야기하는 '과학기술'이라는 용어의 유래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원래 과학은 순수한 학문적 영역이었으니 두 단어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본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19세기에는 여러가지 과학 분야의 연구가 실제 기술 개발에 적용되는 사례가 부각되었기 때문에, 일본은 두 단어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쳐서 받아들인 것입니다. 어떻게보면 '과학' 보다 그 결과물인 '기술' 분야에 집중한 것이고, 과학이라는 학문 영역도 '기술'에 도움이 되는 분야에 보다 촛점을 맞춥니다. 한마디로 과학은 기술을 위한 보조학인 셈입니다. 이는 지금까지 이어져서 일본의 과학 교육은 세계관, 자연관 함양보다는 실용성에 큰 비중을 두고 있고요. 덕분에 일본이 근대화에 빨리 성공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일본 근대화의 바닥이 얕은 원인이기도 하다는군요.

그리고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사농공상' 대신 학력에 의한 질서 형성을 추진하는, 이른바 '사민평등'의 시기에 접어들었지만 이는 진정한 의미의 평등은 아니었다는군요. 서구 과학기술 수입의 핵심기관 공부성이 주도한 방침 자체가, 재래의 직인층을 독려해 종래 기술을 개량하고 발전시키는게 아닙니다. 사족 중 유능한 자를 기술관료로 육성한 뒤 서구 과학기술을 그대로 도입하는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상급학교에 진학한건 거의 사족의 자제였고, 메이지 시대 기술자의 태반이 사족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사족은 직인, 상인의 일을 경멸했던 터라 이런 계급적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 기술을 지배층만의 것으로 권위를 부여하고, 이들을 엘리트로 재래의 직인과 차별화하는 작업이 필요했던겁니다. 그래서 대학생들에게 강렬한 엘리트 의식을 함양시켰다고 합니다. 국가와 나라를 위해 일하는걸 당연히 여겼고요. 그래서 상급 기술자들은 엘리트 의식 과잉에 배타적 성격을 지니나, 반면 관료적이고 조직과 국가에 순종하는 특성을 갖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게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의 학제, 시스템을 식민지 시절 도입당한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되는 이야기라 여러모로 와 닿네요.

책에서 소개하는 근대화와 함께 한 과학기술 진흥의 흐름을 간략히 살펴보면, 메이지 초기 해외 사절단 등을 통해 일본 지배층은 상공업의 발전이 선진국의 필수 조건이며, 특히 과학이 기술에 직결되고 산업 발전과 군사력 강화의 불가결한 요소일 뿐 아니라 국가가 과학과 기술의 진흥과 혁신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는걸 알게 됩니다.
막말 연달아 일어난 대지진으로 지배층의 권위 실추와 새로운 사정, 문물의 유입이 이루어지던 시기라 여러모로 혼란스러웠던 민중에게 합리적이면서 과학적인 사고를 추구하는 '궁리窮理학'이 대 유행하게 되고요. 이를 통해 서양과학기술 계몽서가 유행하는데, '궁리'라는 라쿠고까지 나왔다니 그 유행을 미루어 짐작할 만 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제목의 '총력전' 이 소개됩니다. 메이지 유신 후 국가 주도 개혁에서 군부 독재에 의한 제국 주의가 심화되며 국가가 통제하는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으로 무척이나 상세해요. 전쟁에 대비하여 총력을 다해 이를 준비한다는 '총력전' 체제로 모든 산업, 경제가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일부는 우리나라와도 겹치는 부분이 많아 보이더군요. 군부 독재에 의한 것이지만 미국의 뉴딜 정책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시각도 흥미로왔고요. 또 이러한 '통제'는 좌, 우익 모두 찬성했다는데, 우익이야 그렇다쳐도 좌익은 좀 의외였습니다만 그 이유도 책에서의 설명으로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좌익은 자본의 이윤 추구를 억제한다는 그 자체에 무조건 찬성한거라네요.
제목처럼 총력전 과정에서 '과학기술'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었다는 내용도 잘 알려줍니다. 군부 주도의, 군사 목적의 발전이면 기술 개발이 빠질 수 없으니 당연하겠지요. 덕분에 과학기술 분야에 엄청난 연구비가 투입되고, 여러가지 혜택도 많았다고 하고요. 전후 과학자들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전시가 가장 연구 환경이 좋았다고 할 정도로요.

또 총력전을 통해 결국 빈부 격차가 줄어들게 되었다는 의외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징병제 때문에 농촌의 인구와 생활 수준을 유지시켜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를 위해 의료 보험 등 복지에 대한 여러가지 제도가 만들어지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는 눈여겨 볼 만 합니다.
그러나 총력전 이전, 근대화 과정에서 있었던 일반 민중들의 희생도 잊으면 안 될 역사입니다. 이 책에서는 '기계화'가 생각했던대로 인간의 노동을 경감시킨게 아니라 오히려 환경 오염을 일으키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야간 근무가 도입되고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해져서 민중은 그만큼 희생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급속한 자본주의화의 성공과 기적은 운이 좋았던 덕분인데다가, 효과적인 교육제도가 형성된 등의 이유도 크지만, 농촌 노동력의 가혹한 수탈과 농촌 공동체의 무참한 파괴가 불가결의 요인이었던거죠. 제국주의가 되면서 이러한 수탈, 파괴는 식민지로 옮겨지고, 우리나라는 그러한 수탈과 파괴, 희생의 직격탄을 맞있다는 점에서 더욱 뼈저린 역사입니다.

그리고 2차 대전 이후의 이야기도 새롭습니다. 대표적인게 일본의 패배를 파시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로 보지 않는다는 시각입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군부 독재 시기에 총력전 체제에 의한 사회의 구조적 변경과 재편성이 이루어졌는데, 이 구조가 전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저자의 시각으로는 지금도 일본은 '전시 체제'인 셈입니다! 아직도 소수의 관료, 선택받은 엘리트들이 국가 주도의 정책을 세우고 이를 모든 사회에 강요하는 구조라는 뜻입니다. 제대로 된 민주화는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인거지요. 최근 드러나는 일본 정치의 후진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덕분에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소수의 관료, 엘리트들이 새로운 일본의 재건에 나서는데, 이 역시 총력전 체제와 다름이 없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또 여기에서도 일본은 운이 대단히 좋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전쟁 당시 추진해서 만들어놓은 생산 설비가 비교적 온존되어 있었고, 전시하에서 급성장하고 축적된 기술과 기술자층이 많아서 고도 성장의 주역이 되었으며, 은행과 군수 기업은 망하지 않은게 다시금 총력전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네요. 식민지 시절 수탈과 희생을 발판삼아 만들어 놓은 사회 구조로 다시 고도 성장을 한 것이죠. 또 고도 성장의 핵심은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통한 시장의 급성장 덕분이었다니, 이 정도면 천운을 타고났구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이러한 고도 성장도 전전의 '총력전' 처럼 약자의 생활과 생명 경시를 동반한게 오늘날의 '후쿠시마' 사태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니, 역시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에요.
이러한 고도 성장 과정에서 여러가지 환경 문제나 사고가 일어났지만 정치가들이나 기업가들의 거짓말, 그리고 이들의 지원을 받는 지식인들과 기술자들이 기업편에서 진실을 왜곡하고 날조하며 언론 역시 이에 동조하여 거짓 기사를 써 낸 행태를 보면 우리나라의 과거가 겹쳐지기도 해서 조금 씁쓸했습니다. 사실 우리의 예를 보아도 "무슨무슨 5개년 계획" 등으로 국가 주도로 산업을 일으켰지만, 그 과실의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은건 재벌과 권력자라는걸 부인하기는 어렵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현재 일본의 문제점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 이어지는데, 이는 그냥 좌시하기 힘든 내용이었어요. 바로 원자력이 핵심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일본의 정치 권력은 예나 지금이나 '성장'에 모든걸 걸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전시에서의 발상으로, 지금 시점에 맞는 방향은 절대 아닙니다. 기술 혁신만으로 인구 감소에 따른 시장 축소를 감당할 여지는 많지 않으니까요. 결국 일본은 가격이 유지되는 시장인 군수 산업에 올인해서 전쟁 유발을 획책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으며, 이를 위해 일본이 집중한게 바로 원자력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래서 과거 평화적 이용이라는 환상을 과대 포장하여 원자력 개발을 진행하였으나, 1980년대에 이르르면 이미 전력 수요는 넘어서는 원전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즉, 원전 비즈니스를 위해 원자력 개발을 하고 원전을 지은 것에 불과한거죠. 국가 주도의 총력전이 지금은 원자력에 집중되고 있다는 이야기에요.

그러나 원자력은 수백년 사용하면 수십만년 보관해야 하는 폐기물 문제가 더 큰, 무한한 미래를 희생하여 당장의 현재를 사는 굉장한 낭비에 불과하다는걸 통렬하게 알려줍니다. 원전 자체가 불완전하기도 하고요. 게다가 원전에 큰 투자를 감행했던 도시바의 몰락은 일본식 총력전을 무력하게 만들어, 조만간 '일본 주식 회사'의 실패를 불러올거라고 하니 무서울 정도네요.
우리나라 모 회사가 어려워진게 국가에서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 말을 하는 분들께 이 책을 한 번 권해드리고 싶네요. 원자력은 현재라고 하기 어렵고, 미래는 더더욱 아닙니다. 후쿠시마의 예를 꼭 들지 않더라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친환경,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이 더욱 시급한 시점이 맞습니다. 그리고 일본처럼 국가 주도의 비즈니스 드라이브를 걸다가 나라가 망해가는건 그 누구도 원치 않으실거라 믿고요.

결론과 후기를 통해 저자는 앞으로는 총력전 체제에 따른 경제 성장 자체가 불필요할 것이라 합니다. 경제가 성장해봤자 국민 개인은 성장하지 않는다는게 이미 증명되었으니까요. 때문에 글로벌 교류를 통한 전쟁없으며 연대를 이루는 시민 사회의 성장, 이를 통한 실업없는 제로 성장 사회로 연착륙 하는게 맞는 방향이고, 여기에 과학적 미래는 없다고 봅니다. 저 역시 이 생각에 100% 동의합니다.
문제는 최근의 코로나 사태가 시민 사회의 교류와 국가간 교류를 단절시켰다는 점이지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세상이 바뀔거라는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이제야 조금 와 닿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굉장히 얻은게 많은 독서였습니다. 물론 저자 혼자만의 주장이 담겨있어서 다양한 시각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일본 전시 체제를 뒷받침한 가장 중요한 동력인 식민지 수탈을 너무 짧게 짚고 넘어간 것도 적절치 못하고, 일본 원자력 산업도 정확한 파악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자료가 필요해 보이고요. 과연 공평한 논리와 시각인지도 깊이 고민해 봐야할 부분입니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을 평가하고 검증해야 하는건 오롯이 독자의 몫일 겁니다. 새로운 시각만으로도 무척 반가왔으며, 현재의 일본과 우리를 알기 위해서는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닐까 싶네요. 심지어 가격까지 저렴한 편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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