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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0

깃털 도둑 - 커크 월리스 존슨 / 박선영 : 별점 3점

깃털 도둑 - 6점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흐름출판

이라크 난민 재정착을 돕던 조정돤 커크 월리스 존슨은 휴가 차 뉴멕시코 북부에서 플라이 낚시를 즐기다가 놀라운 도난 사건 이야기를 듣게 된다. 2009년 6월, 미국인 에드윈 리스트가 플라이 제작용 희귀 깃털을 마련하기 위해 영국 트링 박물관의 희귀 조류 컬렉션 260점을 훔쳐낸 사건이었다.

트링 박물관의 희귀 조류 컬렉션 도난 사건을 다룬 논픽션.
극락조로 대표되는 희귀 조류 탐사, 그리고 희귀 조류 깃털 시장에 대한 배경 설명으로 시작되는 책은 이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미국인 청년 에드윈 리스트 이야기와 저자 커크 월리스 존슨의 추적기죠.
에드윈 리스트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은 미국 청년의 생애를 디테일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홈 스쿨링을 통해 이런저런 교육을 받은 영재로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 때문에 플라이 제작에 빠져들어 그 세계에서 유명해지는 과정이 첫번째입니다. "플라이 타잉의 미래" 라고 불릴 정도였다니 말 다했죠. 그리고 희귀 깃털의 매력에 사로잡힌 나머지 박물관을 털어 조류 표본을 손에 넣은 후, 그것을 팔다가 체포되어 재판을 받기까지의 과정이 두번째입니다.
이 두 번째 부분이 핵심인데 한 편의 잘 짜여진 범죄 수사물을 읽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트링 박물관의 허술한 방범 체제 덕분이기도 했지만,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다윈이나 오듀본의 표본, 컬렉션이 아니라 평소에는 캐비닛에 보관되어 있는 "깃털이 화려한 조류 표본" 을 훔쳐낸 덕에 도난 사실이 늦게 발견되었으며, 때문에 동기도 파악이 어려워 체포까지 500여일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그려지거든요.
소수의 매니아들에 의해서만 거액이 오가는 틈새 시장이라 일반인들은 쉽게 인지하지 못했다는 (물론 에드윈이 의도한건 아니었습니다만) 기발함에 무릎을 쳤습니다. 도서관에 누군가 침입했지만, 가장 중요한 장서는 무사해서 마음을 놓았는데, 알고보니 도둑은 절판된 만화를 노린 것이었다는 상황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네요. 바로 얼마전 읽은 <<머드맨>>은 1, 2권 합쳐 10만원 정도에 중고 가격이 형성되어 있거든요. 물론 에드윈이 훔쳐낸 새 깃털은 훨씬 비싸긴 합니다만.

그러나 이후 에드윈이 아스퍼거 병 진단을 받아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조류 표본도 60여마리는 결국 회수하지 못했다는 후일담과, 바로 이어지는 커크 월리스 존슨의 추적기는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잃어버린 60여마리의 회수는 약간의 단서도 찾지 못한채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깃털을 추적하면서 만나는 플라이 타이어들의 뻔뻔함은 짜증만 불러 일으킵니다. 대체로 '박물관에서 캐비닛에 귀한 깃털을 처박아 놓느니, 그걸 유용하게 쓰는게 낫다' 라는 논리인데, 컬렉션을 만들고 보존하며, 다양한 연구를 수행한 과학자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몰상식한 발언인데다가, 최소한 이걸 훔쳐내어 영리 목적으로 활용하는 인간들이 할 말은 아닙니다. 이렇게 플라이 타이어들이 워낙 뻔뻔한 탓에 희귀 깃털 시장도 없애지 못한다는 현재는 더욱 씁쓸하고요. 에드윈에게 이용당한걸 알고 개과천선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깃털만 사용하는 롱 응우옌같은 플라이 타이어가 많아지면 좋겠지만, 기대하기 힘들테니 이런 범죄도 아동 성범죄처럼 다루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깃털 뿐 아니라 희귀 동물에 대한 범죄 모두에 대해서 말이죠.

또 이런 명백한 절도 행각이 정신 감정 덕분에 집행유예를 받는건 황당했습니다. 에드윈은 범행을 오래전부터 계획했으며, 훔쳐낸 조류를 해체하여 값나가는 깃털을 이베이 등에서 팔아 거액을 손에 넣습니다. 계획된 범행에다가 충분한 영리 목적이 있었던거죠. 그러나 에드윈을 달랑 몇 시간 인터뷰한 전문가가 - 코미디언 사챠 배런 코언의 사촌이라는 - "돈이 목적이 아니었고, 사회적인 규범을 따르기 힘들어 법적인 면에서 취약한 상태였다"라며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도 판정했다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사회적 규범을 따르기 힘들면 더더욱 격리시켜야지 이게 뭐하자는 이야기랍니까?
게다가 사건을 수사했건 경찰과 박물관 모두 회수하지 못한 조류 컬렉션을 포기한 것도 까닭을 잘 모르겠습니다. "수사는 종결되었고, 그건 내 일이 아니다" 라는 논리인데, 참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문제는 이게 깃털이 예쁜 새가 아니라, 정말 인류사에 중요한 유물이었어도 이 작자들은 이렇게 행동했을게 뻔해 보인다는 겁니다. 코로나 등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른바 선진국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 역시 한 증거가 아닐까 싶네요.

이렇게 후반부는 에드윈의 범죄 행각을 다룬 전반부에 비하면 재미와 가치가 덜합니다. 그나마 후반부에서 흥미로왔던건 에드윈과의 인터뷰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놈도 정신 못 차리고 자기 변명과 비슷한 논리로 일관해서 화를 돋울 뿐이에요. 아스퍼거 증후군이 아님을 증명하는 행동들은 덤이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전반부는 압도적으로 재미있습니다. 잘 모르는 신기한 세계와 전대미문의 기묘한 범죄에 대해 알게 된 기쁨도 굉장히 컸고요. 그래서 전반부 별점은 4점이상도 충분합니다. 후반부가 다 깍아 먹어서 문제지... 그래도 범죄 관련 논픽션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붙여, 책에서도 등장한 플라이타이 커뮤니티 소개해드립니다. http://www.classicflytying.com/ 입니다. 방문하시면 플라이타이가 무엇인지, 이해하실 수 있으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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