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오지 초등학교 교사인 25세의 여자 선생 시노부가 주인공인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연작 단편집입니다. 딱히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의외로 즐겁게 읽었습니다. 오사카라는 지역에서 연상되는 시끌벅적하면서도 요란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아주 마음에 들었거든요. 몰랐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출생지가 오사카더군요. 그래서 현장감이 더 뛰어났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선명한 캐릭터 역시 볼거리입니다. 초등학교 선생으로 열혈 왈가닥에 뛰어난 추리력을 갖춘 시노부 선생이 생동감 있으면서도 싱그럽고, 그녀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연적 관계인 말단 형사 신도와 엘리트 회사원 혼마, 그리고 시노부 선생의 악동 제자들 모두 아주 유쾌하면서도 즐겁게 묘사된 덕분입니다.
참고로 시노부 선생과 신도 형사, 혼마의 관계는 "명탐정 코난"에서 사토 형사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시라토리와 다카키의 다툼, 그리고 나중에 시라토리와 커플이 되는 고바야시 선생을 합쳐놓은 느낌입니다. 아아... 저같은 사토–다카키 커플 팬에게는 완전 취향 직격이었어요.
이렇게 캐릭터가 돋보이면 추리적으로는 시원찮은 작품들이 많은데, 이 책은 추리소설 애호가를 만족시킬 만큼 적절한 트릭과 논리가 이야기와 잘 맞물려 있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시노부 선생과 학생들의 활약도 상식 선에서 딱 적당한 수준으로 그려지고요. 다소 작위적인 부분도 없진 않지만 재미 면에서는 충분히 납득할 만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오사카가 무대인데도 그런 지방색을 번역에서 잘 살리지 못한 점입니다. 내용 중에 혼마가 도쿄 말을 써서 재수 없다는 식의 묘사가 등장하는 등 말투가 꽤 중요한 요소였을 것 같은데, 최소한 사투리로 번역하는 노력 정도는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또한 이야기나 분위기를 볼 때 배경이 90년대 초반 같은데(게임을 CD로 실행하는 등) 지금 시점보다는 60년대, 아니면 최소한 80년대 배경으로 설정하는 편이 훨씬 더 잘 어울렸을 것 같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그만큼 아날로그하고 복고풍의 분위기가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워낙 뛰어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평소의 히가시노 게이고 스타일과는 사뭇 다르지만 정말 여러모로 재능이 많은 작가라는 걸 다시금 느꼈어요.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 모두에게 추천드립니다. 마지막 이야기에서 미도리 선생이 파견 유학을 떠난 뒤 2년 후에 돌아오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후속편도 꼭 읽어보고 싶네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가 가득하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시노부 선생님의 추리"
시노부 선생의 제자 도모히로의 아버지 후미오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내용입니다.
시노부 선생이 사건에 얽히는 과정이 아주 자연스러워서 설득력이 높아요. 아버지가 살해당한 제자가 걱정되지 않는 담임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도모히로를 믿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시노부 선생을 그린 결말 역시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잘 어울렸습니다.
추리적으로도 전개가 합리적이라 마음에 드네요. 특히나 제자가 쓴 작문과 우연히 마주친 다코야키 장수의 말 - "그런 되지도 않는 소리 마쇼. 저렇게 좁은 데다 어떻게 차를 넣으라고. 집어 넣을 수야 있겠지만 운전석에서 나올 수가 없을 텐데."- 에서 도모히로가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걸 간파한다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딱 맞는 추리가 돋보였습니다. 후미오가 경트럭을 빌린 뒤 유키에를 죽이려 했다는 진상도 반전 매력이 있었으며 다코야키를 트릭의 주요 요소로 활용하는 것도 오사카스러워서 좋았고요.
허나 죽었다 하더라도 후미오의 빚이 없어지지야 않을 텐데 이 모자의 앞길은 지옥뿐이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그래서 썩 개운치는 않네요. 딱 맞는 순간에 딱 맞는 재료(작문, 노리오가 들고 있던 후미오의 수첩, 다코야키 행상)가 연결되는 구조는 좀 작위적이었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한 수작입니다. 작품의 시작을 알리기에는 충분해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시노부 선생님과 집 없는 아이"
시노부 선생님의 제자 하라다와 뎃페이가 게임 CD를 도난당한 것과 옛 제자 가지노 마치코의 아버지가 용의자가 되었다는 이유로 사건에 자연스럽게 엮이는 과정은 첫 번째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괜찮았습니다.
허나 기절했다고 자기가 죽였는지 안 죽였는지도 모른 채 자백을 할까요? 마치코와 시노부의 대화를 통해 설명하려 하긴 하나 많이 약했어요.
또 아라카와 도시오의 자살 동기가 선명하지 않은 것도 별로이며, 살해로 위장하려 한 치에코의 공작도 딱히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시노부 선생님의 맞선"
시노부가 맞선을 보는 것에서부터 사건이 시작됩니다. 신도의 질투가 폭발하고, 신도를 도와주려는(혹은 놀려먹으려는) 하라다와 뎃페이 등 악동들의 활약이 어우러지는데, 이런 부분은 과거 우리네 유머 소설, 그중에서도 오영민의 "007 선생" 같은 작품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추리물로는 수록작 중 가장 처지네요. 진상에 다다르게 되는 핵심 단서인 모토야마 사장이 했다는 말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꼭 비가 오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말이니까요. 특이하다는 오하라 유리코의 담배 "플레이어"를 가지고 한 연극도 지나치게 작위적일 뿐더러, 경찰이 이렇게 수사해도 되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혼마가 너무나도 착한 사람이라 하청업자 도무라를 지켜준다는 것도 억지스럽습니다. 살인 사건인데 누구를 지켜준단 말입니까.
이중 횡령이라는 동기 하나만큼은 신선하고 그럴듯했으나, 이러한 단점들 때문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시노부 선생님의 크리스마스"
친구들과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앞두고 시체로 발견된 다카노 치카코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이야기.
사건 직후 근처에서 목격된 UFO와 사건을 엮는 발상이 재치 있더군요. 그리고 시노부 선생이 친구들이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을 보고 "치카코가 정말 좋아한 것은 마쓰모토였다!"라는 것을 알아내는 장면도 괜찮았어요.
허나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은 연적이 되어버린 혼마, 신도의 티격태격과 악동들의 활약입니다. 전편에 이어 깨알 같은 재미를 전해 주거든요.
문제라면 첫 번째는 풍선을 이용한 흉기 은닉이 작품에서처럼 과연 그렇게 잘 되었을지 의문이라는 점입니다. 뭐 이건 운과 우연에 의지하여 어떻게 넘어간다 치더라도 두 번째 문제, 즉 손목에 주저흔이 없는 이유가 결국 설명되지 않는 건 조금 아쉽네요. 작중 경찰이 자살보다 타살 쪽으로 생각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한데 너무 대충 넘긴 것 같아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시노부 선생님의 은혜"
여공 기요코 살인 사건과 뎃페이 윗층에 사는 나나의 엄마 아사쿠라 마치코가 이불을 털다가 추락한 사건이 엮이는 내용으로, 현실적인 트릭 — 이불을 아래층에서 당겨서 떨어지게 만들었다는 트릭 — 이 감탄사를 자아냅니다.
그러나 범인 요코다의 행동은 억지스럽습니다. 자신이 용의자도 아닌 상황에서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를 이유는 없죠. 경찰이 기요코의 사진을 가지고 미도리야마 하이츠에서 탐문 수사를 시도했다는 묘사 정도는 등장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마지막 습격은 정말이지 무리수였고요. 나름 요코다가 소심하다는 식으로 설득하려 하지만 와닿지는 않더군요.
그래도 괜찮은 트릭에 더해 악동들과 선생님의 인연이 정리되는 졸업식 이야기는 꽤나 짙은 여운을 남기며, 지극히 경찰스러운 신도의 프로포즈도 인상적이었어요.
해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 추리적으로 부족할 수는 있지만 읽는 재미 하나로 다른 단점들 전부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유쾌한 작품이었습니다. 영상화되어도 아주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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