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
수십년 전, 80년대 초반 고민 상담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빈집이 된지 오래인 나미야 잡화점에 3인조 빈집털이들이 숨어든다.
그런데 잡화점에 고민 상담을 위한 편지가 들어오고 3인조는 상담에 응하면서 알 수 없는 이유로 현재의 나미야 잡화점이 1980년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일상계 판타지 작품. 모두 5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베스트셀러로 알고 있는데 읽어보니 역시나 정말 재미있더군요. 3인조 어설픈 빈집털이범들이 잠시 몸을 피하기 위해 숨어든 잡화점에서 고민 상담글을 받은 뒤, 그 공간이 30여년전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첫번째 이야기부터 눈길을 사로잡아 마지막 이야기까지 정말 숨돌릴 틈 없이 읽을 정도였어요.
사실 특정 공간이 시공을 초월해 연결된다는 아이디어는 그동안 많이 있어 왔습니다. 편지가 시간을 넘어 전달된다는 이야기는 <시월애>와 똑같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5편의 이야기 속 등장 인물과 시대 배경이 거의 모두 다르지만 나미야 잡화점 고민 상담과 아동 복지시설 "환광원"을 중심으로 하나의 연결고리를 가진다는 독특한 구성으로 차별화하고 있죠.
상담이 중심인 작품답게 상담 과정의 디테일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특히 상담이 일종의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에 기초한다는 것은 나쁘지 않았어요. 의뢰인이 상담 결과에 따르던, 따르지 않던 모두 나름의 행복을 찾는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상담은 참고일 뿐 답은 결국 자신이 찾아가야 한다는 것인데 상당히 와 닿더군요.
아울러 개인적으로는 80년대 배경의 이야기가 많은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사잔올스타즈의 음악 등의 세부 묘사는 아련하면서도 추억을 불러 일으켰으니까요.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건 3인조 얼치기 범죄자들이 1장, 2장, 5장에 걸쳐 주요 상담자로 등장하는 거에요.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얄팍한 상담글들이라 감동이나 깊이를 느끼기 힘들었거든요. 상담이 성공하는 것(?)도 애초에 미래를 알고 있기에 - 일본은 모스크바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다, 가쓰로는 사고로 죽지만 명곡을 남긴다, 일본의 버블경제가 80년대 시작되어 90년대 시작될 때 끝난다 - 가능한 것들 뿐이기도 하고요. 이래서야 제대로 된 상담은 아니죠.
이에 반해 4장에서의 나미야 할아버지의 직접 상담은 따뜻한 애정과 진지한 고민이 묻어나 확실히 비교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4장의 이야기만큼은 별점 5점을 줘도 될 만큼 마음에 들었어요. 상담에 따르지 않고 부모를 떠난 고스케가 나미야 잡화점 부활의 날에 동네를 방문한 뒤 우연찮게 부모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게 되고, 그 뒤 감사편지를 쓰는 장면에서는 울컥할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이야기를 비틀즈와 영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새롭지만은 않은 설정을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변주하고 새롭게 풀어나간 솜씨는 탁월하며 읽는 재미만큼은 충분한 수작입니다. 잘 팔리는 작품은 역시나 이유가 있네요. 가슴 따뜻해질 읽을거리를 찾으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이야기별 간략한 요약 및 이야기별 연결고리는 아래에 설명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하니 읽으시기 전 참고하세요~
제1장 답장은 우유 상자에
얼치기 빈집털이 3인조가 잠시 숨어지내기 위해 찾아든 빈집 "나미야 잡화점". 그곳에서 우연찮게 "달토끼"라는 닉네임의 의뢰인의 상담글을 받은 뒤, 나미야 잡화점이 뒤틀린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상담에 응하게 된다.
의뢰인의 고민은 암에 걸린 연인을 간호할 것인가, 아니면 둘의 꿈이었던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노력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어차피 일본이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것 (보이코트)을 알기에 연인 옆에 있기를 강조하는 3인조의 답변에도 불구하고 의뢰인 달토끼는 꿈을 위해 노력하고 결과를 받아 들인 뒤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는 결말로 이야기의 시작으로는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3인조와 달토끼 사이의 오가는 편지도 상당한 긴장감을 전해주고요. 무엇보다도 3인조의 답과는 다르게 자신만의 결심을 굳히고, 결국 모든 것을 잃었지만 (올림픽 선수 선발 탈락과 연인의 죽음) 오히려 스스로 더욱 값진 것을 얻었기에 감사한다는 달토끼의 말이 짙은 여운을 남깁니다.
제2장 한밤중에 하모니카를
3인조가 아니라 가수지망생 가쓰로 (생선 가게 예술가) 시점의 이야기. 그의 고민은 가수가 되고 싶지만 이런저런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있다는 것이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명제에 어울리는 이야기랄까요? 뭔가 세상에 남겼다면 그 자체가 의미있는 삶이었다는, 약간은 고전적인 사상이 담긴 이야기였습니다. 본인이 뭔가를 남긴다는 자각이 있었을 것 같지 않고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이 더 클 것 같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긴 했습니다만, 뭐 이런 삶도 있는 것이겠죠.
참고로 작품 전체의 관계도로 보자면, 1장의 3인조가 환광원 출신인데 2장의 가쓰로가 작곡한 노래가 환광원 출신 유명 가수 세리가 부른 노래의 오리지널이고, 가쓰로는 환광원 화재 당시 숨을 거두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3인조는 환광원 출신이라 잘 알고 있었기에 음악을 듣기 전에는 현실적이고 신랄하게 답변하지만 (배부른 소리 하지 마라!) 듣고난 후에는 전력으로 상담에 응하죠.
제3장 시빅 자동차에서 아침까지
나미야 할아버지와 아들 다카유키의 이야기.
나미야 할아버지는 자신이 상담한 미혼모의 사고사를 접하고 낙담하나 죽기 직전 나미야 잡화점이 시공을 초월해서 연결된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상담한 사람들에게 감사 편지를 받는데 그 중 미혼모가 낳은 아이의 편지를 통해 안식을 얻게 된다는 내용.
나미야 할아버지의 인격이 묻어나는 좋은 이야기. 잔잔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야기 중 가장 시공 이동을 잘 활용한 작품이기도 하고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작품 관계도로는 여기서 나미야 할아버지가 백지 편지에 대한 상담글을 쓰는데 이 백지 편지는 5장에서 3인조가 시험삼아 넣은 편지입니다. 미혼모가 낳은 아이는 환광원 출신으로 2장에 등장하는 유명가수 세리의 친구이자 현재는 그녀의 매니저고요.
제4장 묵도는 비틀스로
비틀즈 매니아 폴 레논 고스케가 야반도주하는 가족으로부터 도망치는 이야기.
앞서 말씀드렸듯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 오사카 만박이 열리고 비틀즈가 해체한 1970년대를 무대로 하여 비틀즈 매니아인 주인공 고스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배경 묘사도 좋지만 고스케 (폴 레논)의 고민에 대한 나미야 할아버지의 답글이 정말로 심금을 울립니다. 저 역시 아이 하나를 키우는 가장이기에 더욱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온 가족이 같은 배에 타고 있기만 하면 언젠가 함께 올바른 길로 돌아올 수 있다. 아무리 현실이 답답하더라도 내일은 오늘보다 멋진 날이 되리라.' 맞아요.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는 법. 가족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한 배에 타고 계속 항해해 나가야죠.
관계도로 보자면, 고스케가 위탁된 보육시설은 당연히 환광원, 환광원 화재 사건때 5장의 주인공 하루미를 만나게 됩니다.
제5장 하늘 위에서 기도를
환광원 출신의 하루미가 성공하는 내용. 그녀는 3인조의 예언으로 큰 돈을 벌게 됩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작품인데 하루미를 주인공으로 한 성공담과 3인조의 성장, 백지에 대한 나미야 할아버지의 답변 - 백지이기에 모든 것은 너 마음먹기에 달렸다 - 은 너무 뻔해서 좀 지루합니다.
그래도 하루미와 3인조가 결국 엮이고, 3인조가 나미야 할아버지의 편지를 받는 대단원까지 깔끔하게 이어지는건 괜찮더군요.
관계도로는 하루미는 1장의 상담자 시즈코의 이웃사촌이자 3인조 강도행각의 피해자입니다. 또 환광원의 설립자와 나미야 할아버지가 과거의 연인이었다는 연결고리가 밝혀지며, 3장에서 쓴 나미야 할아버지의 백지 편지 답변을 3인조가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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