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 백창화.김병록 지음/남해의봄날 |
제 오랜 꿈 중 하나가 카리스마 헌책방 주인입니다. 뜨내기 손님이 들어와 책 가격좀 깎아보겠다고 하면 "당신한테 내 책은 안 팔아!"라고 호방하게 외칠 수 있는... 이러한 저의 꿈과 맞물려 있어 호기심에 읽게된 책입니다. 충북 괴산에 귀촌한 후 이른바 "가정식 서점"을 표방한 서점 "숲속 작은 책방"을 연 부부가 쓴 자신들의 이야기에 더하여 비슷하게 동네 서점을 표방한 서점들에 대한 조사,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통영에 있는 것으로 유명한 작은 출판사 남해의 봄날에서 출간되었더군요.
그런데... 아쉽게도 딱히 도움이 되거나 인상적인 내용은 없었으며 오히려 제 꿈이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것만 느껴져 읽으면서 답답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별다른 아이디어 (후술하겠지만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없이 동네 서점이 중요하다, 이런 서점과 책방 하나쯤 동네에 있어야 한다, 라고 주장하는데 제가 봤을때에는 전혀 아니올시다였거든요. 저만 해도 1년에 약 백여권의 책을 읽는, 취미가 "독서"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만, 동네에 책방이 없어서 아쉽거나 제 삶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물론 있으면 좋겠죠. 허나 여기 나오는 것처럼 특정 주제에 집착하거나 카페처럼 만든 그런 곳이라면 제 취향과는 맞지 않아요. 동네 서점이 무슨 대단한 동네 문화 허브인 것 처럼 이야기하지만 가당치도 않고요. 저는 그냥 "책" 자체가 좋고 "책"만 많으면 상관 없기에 이런 동네 서점보다는 조금 멀어도 교보문고, 혹은 동네 도서관이 훨씬 낫습니다.
그리고 설령 동네 서점이 있다손 치더라도 책 속에 등장하는 꿈같은 동네 서점, 즉 지역 주민들이 사랑하고 도와주는 서점은 한국이라는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전세난으로 2년마다 이사다니고, 학원에 직장에 치이는 인생에 무슨 동네 서점이랍니까. 그리고 이런 논리라면 옛 추억이 어린 동네 떡볶이집이나 오래된 어머니들 사랑방 역할의 미용실도 망하면 안되는거죠.
그나마 등장하는 동네 서점들도 책만 팔아서 먹고 살 수 있는, 서점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어서 안타까왔습니다. 특정 주제에 집중해서 골수 단골을 확보하는 전략이 그나마 가능성 있지만 이 역시 서점 주인들이 온라인 판매를 병행하는게 더 접근성 좋고 많은 매출을 기대할 수 있을 뿐더러 동네 장사가 아니라 멀리 있는 손님이 일부러 발품팔아서 올 정도라면 그 자체가 이미 "동네 서점" 의 정의에서 벗어난, 일종의 맛집과 같은 관광 상품에 더 가까워 진 것이니 저자들의 주장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소개된 서점들 중 다수가 홍대, 연남동 등에 터를 잡은 것도 결국은 동네 서점이 아니라 관광지 핫 플레이스를 꿈꾼다는 증거라 생각됩니다.
게다가 책이나 정보는 인터넷으로 훨씬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세상은 발전하는데 원하고 만들고 싶은 서점은 수십년전 스타일이면 곤란하죠. 인터넷 서점은 기본적으로 정가의 10% 할인될 뿐 아니라 마일리지에 카드사 할인까지 더하면 거의 20% 할인된 가격에 책을 구입할 수 있어요. 이런저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는 덤이고요. 과연 경쟁이 될까요?
이러한 답답함 외에도 뒷부분의 귀촌 후 서점을 만들어 가는 과정 이야기는 책의 주제와 거의 상관없는, 일종의 DIY 및 인테리어 이야기라 실망스러웠으며 전체적인 완성도와 디자인도 감점 요소입니다. 성격에 맞게, 동네 서점같은 편안하고 얌전한 디자인이 좋았을텐데 너무 튀고 산만한 느낌이었어요. 실려있는 사진들도 그닥이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동네 책방들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만들기는 하지만 내용은 전문성이 부족하고 이야기도 왔다갔다해서 건질건 없습니다. 동네 서점에는 미래가 없다는 기존 생각만 더 확고해 졌다는 것 정도가 수확이랄까. 이 정도의 내용치고는 책값도 비싼 편이라 추천하기 정말로 어렵네요.
그나저나, 소개된 서점 중 이 잔인한 자영업 사막화 국가에서 2년 뒤까지 얼마나 많은 서점이 살아남아 있을지 조금 궁금하긴 합니다.
덧 1 : 저자들 책방에 들어오면 꼭 책을 사야 한다는 일종의 강매 행위는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둘러보고 살만한게 없으면 그냥 나오는거지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생각이랍니까.... 정착하여 삶을 꾸리는데 큰 노력을 기울인 것을 날로 먹으려는 외지인들에게도 분명 문제야 있겠지만 여기는 소매업을 하는 엄연한 가게잖아요? 관광지 비스무레한 곳에 뭔가 가게를 열면 당연히 받는 질문들인데 서점만 예외가 될 이유도 없고요. 뭔가 서점, 책을 판다는 것에 선민 의식이 작용하고 있는게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덧 2 : "동네 서점"이 살아남기 위한 몇가지 방안을 생각해보라고 할 때 제가 떠올릴 수 있는 방법들과 이 책에 소개된 동네 서점을 해당 방법별로 분류한 것입니다. 역시나, 크게 별다른 건 없습니다.
1. 특이한 주제에 집중한다.
: 홍대앞 땡스 북스 (디자인), 서울 마포 짐프리와 서대문구의 일단 멈춤 (여행), 연남동 책방 피노키오 (외국 동화), 일산 알모 (동화)
수요층이 확실한 디자인, 여행, 그리고 어른들을 위한 예쁜책과 외국 동화들, 아동용 도서로 구분되는데 뻔하디 뻔한 발상이죠.
2. 카페와 결합한다
: 상암동 북바이북 (술먹는 책방) 외
북카페야 흔하디 흔하고 요새는 그 유행마저 사라졌죠
그나마 (소개된 곳 중 유일하게!) "책맥"이라는, 맥주 마시는 책방은 좀 신선했습니다. 허나 주객, 아니 주책이 전도된게 아닌가 싶은데 매출에서 맥주와 책의 비율이 궁금하네요.
3. 관광지와 결합한다
: 제주에 있는 책방들과 저자들의 "숲속 작은 책방"
역시나... 특별할게 없어요.
4. 책은 물론 다양한 인문학적 교류가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 부산 인디고 서원 외
서점이라는 공간에 대한 상식선 끝자락에 위치한 것이죠. 뻔할 뿐더러 이 정도면 동네 작은 책방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5. 유명인이 참여한다
: 책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홍대 여신이라는 요조가 책방을 냈다죠?
6. 독립 출판물에 집중한다
: 서울 마포 유어마인드, 서촌 더북소사이어티
1번과 유사하지만 성격이 조금 다르므로 별개로 치겠습니다. 이거 하나만큼은 제가 생각치 못한 신선한 것으로 일본으로 따지면 동인지 전문 판매샵쯤 되어 보이네요. 독립 출판물만 판매해서는 매출이 나오지 않을텐데 수익모델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조금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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