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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9

테미스의 검 - 나카야마 시치리 / 이연승 : 별점 3점

 

테미스의 검 - 6점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저지른 죄를 동족 인간이 판단하는 행위 자체가 불손하고 오만하네. 구로사와 재판관 (시즈카 재판관의 스승)
쇼와 59년 (1984), 부동산업자 구루마 부부가 살해된다. 우라와 경찰서 검거율 1위인 나루미 경부보는 유력한 용의자 구스노키 아키히로를 불법으로 연행하여 심문한 뒤 자백을 이끌어낸다. 나루미의 파트너인 신참 형사 와타세는 나루미의 방식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말없이 따른다.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아키히로는 결국 몇 년 뒤 구치소에서 자살한다.

헤이세이 1년 (1989) , 나루미의 은퇴 후 도지마와 파트너가 된 와타세는 가미키자키에서 발생한 강도 사건 수사에 나선다. 고급 주택에서 아이와 아이 엄마가 강도에게 살해된 사건이었다. 주변에 목격자가 없는 환경이라 수사는 난항을 겪지만, 도지마와 와타세 컴비는 이 사건이 단순 빈집털이 사건인 오하라 현장과 유사하다는걸 알아낸 뒤, 흉기와 도구에서 열쇠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확인하고 관련자들을 수사해 나간 끝에 범인 사코미즈를 체포한다. 그리고 와타세는 이 사건기 쇼와 59년 부동산업자 살인 사건과 유사하다는걸 깨닫고 심문을 통해 사코미즈가 진범임을 밝혀낸다.
와타세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다가 조직으로부터 강한 압박을 받지만, 시즈카 재판관 등의 조언을 받고 사코미즈의 조서를 공개한다. 이후 언론의 대대적인 공세와 함께 사건 관계자들은 모두 좌천되거나, 해임된다. 그러나 핵심 수사관이었던 나루미는 이미 퇴임한지 3년이 지났기 때문에, 그리고 와타세는 내부 고발자로서 온다 검사로부터 보호받아 처분에서 빠져나간다. 와타세 본인은 이에 대해 크게 자책하며 두 번 다시 수사에 오점을 범하지 않는 형사가 될 것을 결심한다.

23년 뒤인 헤이세이 24년 (2012).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사코미즈는 출소 직후 공중 화장실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수사 1과 1반을 맡는 경부가 된 와타세는 사건을 알게 된 후, 독자적인 수사에 나선다.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시리즈 등으로 접해보았던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 잘못된 수사와 판결에 의한 '원죄'를 주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 왜 가해자보다 피해자 가족이 더 비참해져야 하는지, 흉악한 살인범도 인권이라는게 있는지 등 여러가지 질문을 많이 던져주는 작품입니다. 일종의 사회파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또 사회파스러운 소재에 더해진 본격 추리라는 작풍이 작가의 특징인 듯 한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에요. 특히 '재판, 특히 사형 판결을 내린다는게 얼마나 무거운 행위인지' 알려주는 작품은 여러 편 보아 왔지만 묵직한 내용을 추리적으로 잘 포장한 작품은 <<데이비드 게일>> 외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그런 점에서는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이야기는 시대순으로, 사건별로 구분되어 전개되지만 크게는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초, 중반부까지는 부동산 업자 부부 살인사건 용의자 아키히로의 자백을 받아내어 그는 사형 선고를 받지만, 5년 뒤 일어난 고급 주택가 모자 강도 살인 사건 수사를 통해 진범이 드러난다는 이야기지요.
이 과정에서 수사에 대한 묘사는 빼어납니다. 우선 부동산 업자 부부 살인 사건에서는 나루세 경부보가 용의자 아키히로를 옭아매는 조작 수사와 그 결과에 의한 재판이 아주 상세합니다. 5년 뒤 일어난 고급 주택가 모자 살인 사건에서는 와타세 형사의 추리에 이은 수사에 대한 설득력이 높고요. 모자 살인 사건 범인은 '열쇠업자' 일거라는 착안이 특히 빼어납니다. 범인은 도주하면서 직접 만든 자물쇠 따는 도구인 '피크'를 버렸는데, 와타세는 다시 만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리한 뒤 관련자 수사에 나서 범인을 체포하게 되거든요. 이후 범인 사코미즈가 전편에 등장했던 부동산업자 살인도 저질렀다는걸 알아차리는 과정 역시 이치에 합당합니다.

중, 후반부는 진범 사코미즈가 모범수로 감형되어 23년 후 출소하자마자 살해된 사건을 다룹니다. 앞서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수사 중심이지만, 의외로 본격 추리물 느낌도 강하게 전해 줍니다. 알리바이 조작, 흉기 은닉과 같은 정통 트릭이 등장하는 덕분이지요. 마지막에 와타세 경부가 범인인 아키히로의 부친을 찾아가 사건 시각에 경운기에 탔던건 치매에 걸린 아내이고, 흉기는 농기구인 경운기 부품이었다고 밝히는 장면은 추리쇼와 다를게 없어요.
여기에 사코미즈 사건의 배후에 숨겨진 반전 -그를 죽이려는 온다 검사의 음모였다는 - 까지 더해져 추리적으로는 아주 풍성한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인 와타세 경부도 매력적이에요. <<연쇄 살인범 개구리 남자>>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수사 기계처럼 등장했었는데, 이 작품에서 그 이유가 잘 드러납니다. 과거 원죄를 저지른 과오를 깊게 인식하고 두 번 다시 수사에 오점을 범하지 않는 형사가 될 것을 결심하는 모습이 그려지거든요. 단순한 수사 기계보다는 인간적인 모습, 고뇌하고 고민하는 입체적인 모습이 많이 보여져서 좋았습니다. 내부 고발자라 주위의 눈총을 받는 탓에 출세를 포기하고 범인 체포에 열중하는 모습도 설득력 높고요. 작품 속 진짜 수사 기계인 나루미 경부보는 알고보니 사건 해결에만 집착하는, 자기 중심적인 악당이라서 대비가 강렬했던 탓에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 것 같습니다. 본 작품이 와타세 경부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이라는데, 후속권도 계속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개구리 남자>>의 주인공이었던 고테가와의 카메오 출연도 반가왔고요.

그러나 '진짜 흑막은 온다 검사!'라고 내세운 반전은 지나쳤습니다. 초반에 정의로운 모습을 보였던 온다 검사가 부동산 부부 살인 사건의 목격자로, 사건 당시 현장 근처 러브호텔에서 불륜을 저지르다가 범인을 목격했지만 나서서 증언하지 않은 바람에 애꿎은 아키히로가 사형 선고를 받고 죽게 되었다는 설정까지는 그럴싸 합니다. 범인 사코미즈도 '커플에게 들켰지만 경찰은 찾아내지 못한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비오는 밤에 커플이 사코미즈의 얼굴을 기억했을지 여부도 불투명하거니와, 사코미즈가 당시 목격자인 온다 검사의 얼굴을 기억하여 협박하려 했다는건 정말이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무려 28년 전 비오는 밤에 잠깐 본 사람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게 가능한 사람은 거의 없을겁니다.
또 와타세 경부의 수사처럼, 28년 전 사건의 첫 목격자가 당시 '유명 연예인을 닮은 사람'을 보았던걸 떠올린 덕분에 그 선을 수사하여 진상을 알아냈다는건 그나마 말은 됩니다. 허나 이 역시 그 연예인 닮은 사람이 진짜 그 연예인이었다는건 지나친 우연으로 느껴집니다. 이런 불확실한 목격 증언에 기대는 것 보다는, 사코미즈가 출옥한다는 편지를 피해자 가족에게 보낸 누군가를 상세히 캐 보는게 더 현실적이지 않았을까 싶군요.

그리고 사코미즈가 아키히로 부친에게 살해당한다는건 더욱 억지스러웠습니다. 직접적인 피해자 가족인 부동산 업자 부부의 딸이나, 모자 살인 사건의 남편이 살해했다면 말은 됩니다. 하지만 아키히로의 부친이 진범 사코미즈를 살해한다? 부친이 원죄 사건에 대해 복수를 하고자 하면 최우선 목표는 나루미 경부보가 되어야 합니다. 사코미즈는 원죄의 원인이기는 하지만, 아키히로가 사형 판결을 받고 자살한건 경찰의 무리한 수사, 검찰의 무리한 기소, 그리고 이를 제대로 확인못한 재판관의 잘못이니까요. 그리고 와타세 경부도 이야기 하듯, 무려 28년을 (아키히로가 자살한 것부터로는 25년 쯤?)참고 살다가 급작스럽게 복수를 결심한다는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아울러 이 세 명이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온다 검사는 어쩔 셈이었는지 설명되지 않는 것도 문제에요. 사코미즈를 없애기 위해서는 세 명의 피해자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는 정도로는 불충분했을텐데 말이죠. 애초에 편지를 보내는 것 보다는 그냥 사코미즈의 주장을 무시하는게 정답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그리고 중반부에서 경찰 조직이 과거의 실수를 알아채고 증거 (조서)까지 확보한 와타세가 이를 밝히려하자 철저히 격리시키고, 심지어 폭행까지 저지르는 과정이 지나치게 뻔하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조직의 잘못을 알게 된 언론도 대중과 영합하여 총 공격에 나서며, 관계자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보호되고 처벌받으며 이 와중에 지나친 관료 주의가 대두되는 등등 모두가 이런 류의 작품에서 너무 많이 보아왔던 묘사들이에요.
게다가 와타세가 관계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쳤다며 사죄하는 모습은 솔직히 어이가 없더군요. 당연한 결과인데 말이지요. 본인이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은 것은 의아해할 수 있어도, 이는 조직에서는 응당 해야 할 일입니다. 내부 고발자는 보호하는데 마땅하니까요. 와타세는 나루미 경부보만 처벌받으면 된다는 순진한 생각을 한 것일까요? 말리는 선배까지 힘으로 눌러버리던 모습은 다 어디갔는지 모르겠네요. 이런 묘사는 와타세 경부라는 캐릭터를 위해서는 불필요했다 생각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묵직한 주제를 추리적으로 재미있게 포장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합니다. 원죄에 대한 뻔한 묘사는 조금 줄이고, 온다 검사 수사에 조금만 더 설득력을 부여했더라면 별점 4점도 충분했을거에요. 물론 이 정도로도 충분히 좋은 작품이니만큼,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께 권해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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