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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4

악몽을 파는 가게 2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5점

악몽을 파는 가게 2 - 6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스티븐 킹의 최신 단편집 2편. 원초적인 공포보다는 순문학 쪽으로 이동하는 느낌을 물씬 풍겼던 최근 작풍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편보다 수록작들의 수준이 높아요. 전권에서는 <<우르>>라는 기대 이하의 졸작이 수록되어 있던 반면 이번에는 수록작 대부분 완성도가 평균 이상입니다. 과거와 같은 화끈함은 없지만 일정 경지에 오른 거장이 맘먹고 쓴 쉼표같은 작품들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고요.

한마디로 스티븐 킹의 현재를 보여주는 좋은 단편집입니다. 전체 평균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만 작품 한편, 한편은 더욱 뛰어난 작품이 많아요. 작품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으니 참고하시길. 아울러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하다는 것도 역시 잊지 마세요.

<<허먼 워크는 여전히 건재하다>>
도망친 여러 남자들 사이에서 얻은 각각 4명, 3명의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 재스민과 브렌다의 이야기.

암담한 아줌마 버젼의 <<델마와 루이스>>로 둘의 암담함과 자기 파괴로 이어지는 심리 묘사 외에 별다른 내용은 없고 오히려 연로한 두 시인의 등장도 뜬금없기는 합니다. 허먼 위크가 아직 건재한 것도 딱히 별 상관이 없고 말이죠.

하지만 두 아줌마들의 암담함에 대한 묘사가 그야말로 압권이라 그 둘이 순식간에 사로잡히는 자기 파괴적 생각에 동의하게 만드는 수작입니다. 이제는 스티븐 킹을 호러의 제왕이 아니라 암담함의 제왕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아요. 같은 암담함이라도 <<1922>>는 픽션 느낌이 그래도 좀 있었는데 이 작품은 너무 현실적이라 더 와 닿고 무섭네요. 작품을 쓰게 된 발단이 되었다는 기묘한 교통 사고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고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컨디션 난조>>
아내 엘렌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시체를 집 안에 방치해 놓은 광고쟁이 프랭클린의 이야기. 
이전의 킹이었다면 프랭클린이 아내를 죽였다거나, 아내의 시체가 모종의 이유로 되살아났다거나, 시체 냄새를 맡은 아파트 주민들이 좀비같이 변해 거대한 학살을 불러 일으키는 식으로 전개되었겠죠. 그러나 이 작품에서의 프랭클린은 아내를 사랑하는 평범한 인물이며, 그의 행동은 "사랑" 때문으로 묘사됩니다. 결말도 그냥 아내 시체 옆에 머물 뿐이고요.

이렇게 대단한 드라마는 없지만 그래도 킹이 쓴 순애보라는 점 만큼은 독특합니다. 오지 오스본의 발라드같은 느낌이랄까요? 과거의 킹 스타일도 좋지만 이런 이야기도 나쁘지는 않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철벽 빌리>>
조지 그래섬이라는 전 메이저리그 관계자가 스티븐 킹에게 1957년 뛰었던 '철벽 빌리' 라는 선수에 대해 해 주는 긴 이야기 형식의 작품. 제목이기도 한 "철벽 빌리" 캐릭터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인터넷 용어로 따지면 "야모순바 (야구밖에 모르는 순진한 바보)" 그 자체인데, 그래서 무서운 인물이거든요. 야구를 하고 싶은 소년에게서 야구를 빼앗으려 하자 모든걸 없애버리고, 친구의 승리가 빼앗겼다고 느끼자 심판을 살해해 버리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캐릭터가 존재함에도 빌리와 그의 잔혹한 행각의 비중보다는 1957년 당시 야생적이었던 메이저리그와 선수들, 시합 장면에 대한 묘사 비중이 높다는 점이 특이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인지 이야기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하고요. 또 이는 직접 살해 현장을 목격하지는 않은 조지 그래섬 1인칭 시점인 탓도 큰데, 조지 그래섬의 입을 빌어 실제 존재했던 팀과 선수들에 대해 조금씩 풀어가며 설득력을 높이는 솜씨도 일품이에요.

딱 한가지 아쉬움이라면 빌리의 사연을 너무 대충 넘긴 것입니다. 빌리 블레이클리와 그 가족을 살해한 원래의 유진 캣서니스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서 평범한 싸이코 살인마와 비슷하게 느껴지게 만들거든요. 유진 캣서니스 시기의 암담함을 특유의 묘사로 풀어내었더라면 또다른 <<1922>> 수준의 수작 중편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미스터 여미>>
노인 요양원에서 '미스터 여미'라고 불리우는 존재를 목격하면 죽을 날이 머지 않았다는 뜻이라는 내용의 단편.

노인들이 아직 젊었을 때 빛나던 존재를 목격하고 얼마나 설레었는지, 그리고 노인들이 죽기 전 젊었을 때의 설레임을 잠시나마 느끼게 된다는 묘사는 킹도 정말 늙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네요. 한마디로 죽을 날이 머지 않은 킹의 바람(?)을 그린 소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토미>>
조금 독특한 운문(?) 형태의 짤막한 작품. 그런데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 1960년대를 추억하기 위해 쓴 개인적인 습작이 아닐까 싶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초록색 악귀>>
미국에서 여섯 번째로 돈이 많은 뉴섬은 비행기 사고 이후 지속적인 통증을 해결하기 위해 그 바닥에서 잘 알려진 목사 라이드아웃을 초빙한다. 전속 물리치료사인 캣 (캐서린)은 그가 사기꾼이라고 확신하는데...
사기꾼으로 알았던 라이드아웃의 캐릭터가 돋보였던 작품. 실제로 몸 속에 존재하는 통증을 불러일으키는 악귀를 끄집어 내 잡을 수 있는 능력자라는게 밝혀지는 전개도 좋았고요.

하지만 악귀를 끄집어내는 과정까지의 전개가 너무 길고, 악귀와의 사투도 심심하며 결말도 그냥저냥이라 아쉬움이 더 큽니다. 정전 상태에서 캣의 손으로 무언가 스물스물 올라온다는 정도로는 약합니다. 결국 라이드아웃의 용기에 담지 못한 초록색 통증 악귀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한마디로 이 작품만큼은 과거의 크리쳐물 형태로 썼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저 버스는 다른 세상이었다>>
뉴욕의 러쉬 아워에 갇힌 광고쟁이 월슨이 우연하게 나란히 선 옆 버스에서 한 여성이 살해당하는걸 목격하지만, 중요한 프리젠테이션 생각에 그 사건을 무시해 버린다는 내용의 작품.

윌슨에게 연이어 닥치는 불행에 대한 묘사는 재미있는데 그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네요. 윌슨이 프리젠테이션에 늦지 않을까? 라는 드라마가 살인 사건보다도 비중이 클 정도로 사건이 건조하게 묘사되는 탓입니다. 한마디로 대단한 드라마가 없는거죠. 주위 사람들에게 무심한 현대인들, 돈이 더 중요한 현 세태를 풍자한다고 보기에는 풍자 요소도 많지 않고요.

한마디로 평범 이하의 태작입니다. 창작 의도는 알겠지만 제대로 구현되었다고 보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부고>>
인터넷 뉴스 매체에서 부고 기사를 쓰는 찐따 마이크에게 가짜 부고를 실제로 만드는 힘이 있다는게 밝혀지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2016년 에드가상 단편 부문 수상작.
작가가 의도치않게 쓴 글이 현실로 벌어진다는 설정 자체는 평범합니다. 오래전 킹 스스로도 <<신들의 워드프로세서>>라는 비슷한 작품을 쓰기도 했죠. 하지만 부고를 쓴 인물 뿐 아니라 근처에 사는 같은, 혹은 비슷한 이름의 인물들이 함께 죽어나간다는 설정으로 차별화를 주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마이크가 오지 와이오밍의 라라미에서 숨어 산다는 결말도 나쁘지 않고요. 마이크는 (꿈자리는 사납지만) 꽤 괜찮은 슬로우 라이프를 즐기는 듯 하고, 그의 능력으로 도움을 준 몇몇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이 생겼다는 해피엔딩인데 그런대로 괜찮았거든요. 최소한 모두 파멸해 버리는 뻔한 결말은 아니었으니까요.
인터넷 매체 '네온 서커스'와 거기 실리는 기사들, 소속 기자들에 대한 정신나간 묘사들도 최신 트렌드 느낌으로 잘 그리고 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그러나 이런 류의 작품들 중에서 돋보이냐 하면 그 정도는 아닙니다. 에드가상을 수상할만한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아요. 비슷한 이름의 사람들이 죽는다는 설정을 잘 살리지 못한 탓이 큽니다. 그 사실을 알고 그냥 도망친다? 이야기를 너무 쉽게 마무리한 느낌이에요. 솔직히 부고를 쓴 후 그것을 기자가 실제로 만든다는 다른 단편들쪽이 더 오싹하죠.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예전에 <<라라미에서 온 사나이>>라는 고전 서부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라라미가 정말 미국에서도 유명한 깡촌인가 보네요. 라라미로 도망치면 아무도 그를 찾지 못하고 사건이 해결될 정도라니...

<<취중 폭죽놀이>>
호수 산장에 사는 올던과 어머니가 호수 건너편 대저택에 사는 마시모 가족과 매년 7월 4일, 폭죽 놀이 배틀을 벌인다는 흥겨운 이야기. 결국 올던이 마지막에 구입한 2000달러 짜리 폭죽 "제 4종과의 조우"가 마시모 가족 저택을 홀랑 태우는 결말까지 한 치의 방심도 할 수 없이 유쾌하게 전개되는 작품입니다. 
킹이 여러 작가의 작풍을 모방하는 취미가 생긴 듯 한데, 이 작품은 어디로 보나 마크 트웨인이 떠오르더군요. 전편에 걸쳐 흐르는 유머도 그렇고, 마지막에 두 가족 모두 집을 태워먹고 화해한다는 결말까지 말이죠.

올슨과 어머니가 알콜중독이었다는 등의 불필요한 설정은 조금 거슬리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 수록작 중에서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킹 작품 중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흔쾌히 권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작품이에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여름 천둥>>
핵전쟁 이후 후유증으로 죽어가는 로빈슨이 유일한 친구 팀린과 애견 간달프마저 죽자 할레이 데이비슨을 타고 여행을 떠난다는 소품. 죽어가는 생존자들이 보이는 인간미가 돋보입니다. 킹의 예전 작품이라면 이들이 사는 마을에 지옥도가 펼쳐졌을텐데 말이죠.

하지만 지옥도 대비해서 화끈한 재미가 부족하다는건 단점입니다. <<카페 알파>>도 나쁘지야 않지만 <<세기말 구세주 전설>>이 아무래도 더 화끈한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제 별점은 2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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