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스의 라이벌들 - 아서 코난 도일 외 지음, 정태원 옮김/비채 |
제목 그대로 빅토리아 시대 셜록 홈즈의 인기로 촉발된 20세기 초반까지의 단편 추리소설과 시리즈 탐정물 전성기에 발표되었던 작품들을 엄선하여 싣고있는 단편 앤솔러지입니다. 고 정태원 선생님의 유작이기도 해서 고전 단편 본격 추리물의 애호가로서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던 책으로 출간과 동시에 구입하였으나 여러모로 사정이 있어 완독에 시간이 좀 많이 걸렸네요.
일단 690여페이지, 모두 10명의 작가 - 30편의 작품이 실려있는 방대함은 독자를 압도할만 합니다. 번역도 훌륭하고 각종 주석도 공들여 삽입되었으며 당시 삽화도 충실하게 수록되는 등 책의 만듬새도 무척 뛰어나고요. 심지어는 서표용 끈이 검은색, 빨간색 두개가 달려있는 부분에서는 역시 추리 애호가가 만든 책이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더군요. (이러한 앤솔로지 형태 단편집에서는 처음부터 차분히 읽기 보다는 여러 작품을 동시에 읽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실려있는 작품들이 지금 읽기에는 지나치게 낡았다는 어쩔 수 없는 단점이 존재하며 기대보다는 국내 초역된 작품이 적다는 것은 감점요소겠죠. 기존에 소개되었던 작품들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번역 덕에 신선함을 느낄 수 있기는 했지만 감점은 감점이에요... 아울러 개인적으로 기대가 컸던 오스틴 프리먼의 또다른 필명 클리포드 애시다운의 작품이나 어네스트 윌리엄 호넝의 '괴도 래플스' 시리즈가 생각보다 별로였다는 것은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방대하다는 수식어가 적합할 정도로 많은 작품이 실려있기에 눈에 띄는 작품도 아래와 같이 제법 됩니다.
캐서린 루이자 퍼키스의 여탐정 러브데이 브룩 시리즈 중 한편인 <문간의 검은 가방>.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가방과 그 속의 메모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시대적 배경과 절묘하게 결합되어 합리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마음에 드는 작품입니다. 여류작가다운 꼼꼼함이 이러한 전개과정에서 빛나기도 하고요. 조금 작위적인 부분이 있기는 하나 이 정도면 충분히 홈즈의 라이벌로 평가받을만 하죠.
아서 모리슨의 마틴 휴이트 시리즈인 <포갯 살인사건>, <딕슨 어뢰 사건>.
<포갯 살인사건>은 작품 서두에 언급되는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특징이라는 주제를 시대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증명하는 과정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굉장히 낡은 설정과 캐릭터이고 추리도 별게 없는데도 덕분에 꽤 재미있었어요.
<딕슨 어뢰 사건>. 사무실에서 없어진 어뢰설계도에 대한 이야기. 이 당시 작품들에 왜 이렇게 비밀무기 설계도 이야기가 많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그러한 설계도 도난 사건 장르물(?)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작품입니다. 설계도를 살짝 빼돌리는 아이디어도 좋지만 범인을 옭아매기 위한 마틴 휴이트의 활약이 대단해서 이야기의 끝까지 긴장감을 갖게 만드는 전개 역시 일품이거든요.
재크 푸트렐의 생각하는 기계 밴 듀슨 시리즈인 <녹색눈의 괴물>은 국내 출간된 단편집 <13호 독방의 문제>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이라 반가왔는데 내용도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럴듯한 일상계로 지금 읽어도 낡지 않은, 영원히 한결같을 여성심리를 이야기 속에 녹여낸 독특한 작품이거든요.
딱 한가지, 밴 듀슨 교수 캐릭터도 잘 살아있지만 그닥 뛰어난 풍모를 보이지 않는 것 하나는 좀 아쉽네요. 여자에 대해 잘 모를 교수 캐릭터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요.
브레트 하트의 <사라진 시가상자>는 패러디물인 햄록 존스가 등장하는 작품린데 한마디로 최고입니다. 셜록 홈즈 패러디로는 그야말로 일급으로 이른바 셜록 홈즈식 귀납법 추리의 오류와 문제를 너무나 진지하게 풀어나가면서도 어떤 점이 개그의 포인트인지를 잘 짚고 있기 때문이에요. 추리물로도 패러디로도 개그로도 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수작으로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추리애호가들은 닥치고 읽어야하는 작품!
시대를 초월하기 힘든 부분은 있기에 감점해서 별점은 3점입니다만 저와 같은 고전 정통 추리소설 애호가분들에게는 정말로 좋은 선물과 같은 단편집임에는 분명합니다. 이 작품들 이외의 작품들도 일독할 가치는 분명 있고 말이죠. 고전 정통 추리소설 애호가가 아니시더라도 최소한 <사라진 시가상자>는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고 정태원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리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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