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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1

용서받지 못한 밤 - 미치오 슈스케 / 김은모 : 별점 2.5점

용서받지 못한 밤 - 6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놀
<<아래 리뷰에는 핵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키히토의 아내 에츠코는 어린 딸 유미가 베란다에 올려두었던 엉겅퀴 화분을 떨어트린 탓에 일어난 사고로 죽고 말았다. 그리고 15년 뒤, 아버지의 가게를 이어받은 유키히토에게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협박범은 '사고를 친 딸, 엉겅퀴에 대해 알고 있다'며 돈을 요구했다. 하지만 협박범을 만나자마자 유키히토는 기절했고, 장성한 딸 유미는 휴양 겸 해서 아빠 고향으로의 여행을 권했다.
유키히토 가족이 고향 하타가미를 등진 이유는 30년 전, 유키히토의 아버지 미나토가 마을 유지들을 살해했다는 의심을 샀기 때문이었고, 유키히토는 말이 나온 김에 누나 아사미와 함께 당시 사건의 진상도 밝힐겸 하타가미로 향했다.


미치오 슈스케의 장편. 30년 전 하타가미에서의 사건과 15년 전 에츠코의 사고사, 그리고 현재 하타가미에서의 살인 사건이 연결고리를 가지고 펼쳐집니다. 
핵심은 30년 전 사건 - 신울림제에서 마을 유지 4명에게 독버섯을 먹여 2명을 죽게 만든 - 의 진범은 누나 아사미였으며, 현재의 협박범 시노바야시 유이치로가 유키히토를 협박한건 이 사건이었다는 겁니다. 딸아이 유미가 실수로 엄마를 죽였다는게 아니라요. 시노바야시는 유키히토가 아버지의 가게를 이어받은걸 모르고, 전화를 받은게 아버지 미나토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30년 전 사건에서 아버지가 혐의를 뒤집어쓰게 되었던 원인인 마을 신사 신관 다라베 요코의 편지는 아버지가 일부러 조작 - 눈을 벼락으로 바꾸어서 - 했었습니다. 딸이 진범인걸 알고 딸을 지켜주기 위해서요. 마침 벼락을 맞아 당시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던 아사미는 자신이 범인인걸 모른 채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살아왔고요.

이런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복선도 탄탄합니다. 유키히토가 애초에 집에서 엉겅퀴를 키웠던 계기는 어린 시절 하타가미에서의 추억에서 비롯되었던 겁니다. 어머니가 꽃에 해박해서 집에서 키워 약으로도 썼었거든요. 마침 아사미가 독버섯 해독제로 엉겅퀴를 쓴게 두 사건을 연결하여 유키히토의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되었고요. 아버지가 한자에 해박해서 한자를 가지고 여러가지 장난을 치는 설정은 다라베 요코의 편지 내용 조작을 알려주며, 누나 아사미가 사건 당시 기억 - 특히 자신이 범인이라는 것까지 - 을 극히 최근까지 잃었다는 증거도 여러가지 일화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런게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전개에 녹여낸 솜씨는 일품이라 할 수 있어요.
그 외에도, 유미가 아기일때 저지른 실수로 에츠코가 죽은걸 협박범이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30년 전 사건은 정말로 미나토가 저지른 것인지? 협박범 시노바야시를 죽인건 누구인지? 등의 수수께끼가 계속 펼쳐져서 끝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신은 없다'는 마지막 문장도 대박입니다. 아무리 선의에 의한 행동이라도 그 결과는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씁쓸함을 이렇게 잘 그려낸 작품은 쉽게 찾기 어려울 듯 합니다.

하지만 '딸아이의 사고'와 '엉겅퀴'라는 키워드는 어떻게든 연결시켰지만, 전개와 설정에 억지가 많다는건 단점입니다. 아사미가 무려 30년간 기억상실이었는데, 마침 30년만에 방문했던 고향에서 벼락이 치는걸 보고 기억을 되찾는다는 설정이 대표적이에요. 마침 그 순간에 옆에 있었던 협박범 시노바야시를 본의아니게 살해하게 되었고, 이 순간이 마침 그 순간에 벼락 사진을 찍던 아야네의 카메라에 잡힌다는 일련의 연쇄는 우연이 너무 지나칩니다.
아사미가 기억을 되찾은 뒤, 남은 마을 유지 2명을 마저 살해하다가 결국 죽고 만다는 결말도 뜬금없었습니다. 복수를 생각했다면 꼭 이 시점에 했어야 했나? 싶고, 누가 보아도 수상한 외지인 유키히토를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이유도 알 수 없어요.
가족의 엄마가 환각 버섯에 중독되어 성폭행당하다가 살해당했다는 등의 설정도 이렇게 길게 끌고갈 필요가 있었을지는 좀 의문이에요. 이런 설정 없이도 4명의 '갑뿌'가 허튼 짓을 하다가 엄마가 죽게된건 누구나 떠올릴 수 있었는데 말이지요.
 
독자가 추리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큽니다. 30년 전 사건 당일 아사미가 독버섯을 넣으러 신사로 향하던 순간에 찍힌 사진이 그 예입니다. 화면에 '고스트 현상'이 보인다고 이야기되는데, 알고보니 이건 '눈'이 찍힌 것이고 이를 통해 독버섯을 넣은건 벼락이 치기 전날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작중 묘사만 가지고 이를 추리해내는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눈'을 '벼락'으로 바꾼 트릭 역시 번역된 글로는 떠올리기 불가능한건 마찬가지고요.

오래된 사건을 조사한다는 아야네는 사건의 핵심 당사자이기도 한 유키히토 가족과는 다르게 반쯤은 장난처럼 사건을 바라보는 행태가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고전 본격물 속 떠돌이 탐정같은 설정도 도무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요. 무언가 시리즈 캐릭터로 보이는데, 억지로 등장시켜서 시리즈로 만드는 것 보다는 빼는게 더 나았습니다. 실제 사건 해결에 별로 기여하지도 못하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졸저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후속으로 '요리 외의 추리 소설 속 여러가지 중요 소재들'을 쓰게 된다면 이 작품 속 '엉겅퀴'는 꼭 언급하고 싶습니다. 사건을 일으키는 핵심 소재이기도 하고, 중요 단서가 되기도 하는 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런 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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