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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2

한류 미학 1 : 메이드 인 코리아의 기원 - 최경원 : 별점 3점


우리나라의 문화는 소박하지만은 않다는걸 여러가지 문화재, 유물을 통해 알려주는 책.
설명을 위해 유물들을 '디자인'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유물을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실제 사용자가 사용하는 '제품' 관점에서 분석하여, 해당 유물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갔던 '제품'인지를 알려준다는건데 꽤 그럴싸한 접근법이라 생각되었습니다. 현재의 갤럭시나 아이폰을 먼 미래 박물관 같은데서 본다고 상상한다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어요. 두 제품은 생긴 것만으로는 차이를 느끼기 어려우니까요. 차이를 느끼려면 아이폰이 가져온 혁신을 함께 알려주어야 하는데 이와 유사한 방식이 아닐까 싶거든요. 확실히 디자인 전문가다운 발상이었습니다.

또 디자이너답게 '형태'에 집중하고 있는 유물도 있는데 이 중에서는 삼한 시대의 오리모양 토기의 형태에 주목한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문화권 토기들과 다르게 사실성, 장식을 배제하고 극도로 단순화한 수준높은 추상조형은 이를 소비하는 지배층의 인식 또한 뒷받침 되어야 하므로 높은 수준의 사회적 배경의 뒷받침되었을 거라는 저자의 의견은 설득력이 높아 보였습니다. 굉장히 모던하고 미니멀리즘적인 삼한 시대 토기 역시 마찬가지고요.
고구려의 다양한 화살촉은 실제 쓰임새(양력 등을 활용하여 보다 멀리 쏠 수 있도록) 때문에 발전된 형태라는 글도 흥미로왔습니다. 오히려 더 진지하게 파고들어 연구할 여지가 많은데 중간에 끝난 것 같아 아쉬웠어요. 왜 후대에 계승되어 더 발전되지 못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일반 화살촉보다 분명한 장점 - 사거리 - 이 있어 보이는데, 그걸 상쇄할만큼 단점이 컸던 걸까요? 그렇다면 어떤 단점이 있었을까요? 아, 궁금합니다.

사진이 아니라 직접 그린 스케치로 이루어진 도판도 아주 좋습니다. 저자의 설명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정확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조형적인 완성도를 알려주는 대부분의 글들 도판들이 특히 빼어난데, 아래의 용봉문 투조 금동장식 속 봉황 등의 조형이라던가, 통일신라 말 발걸이에 그려진 말 캐릭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런 스케치가 아니라면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을터라 무척 고마운 도판이었어요.
몇몇 유물의 경우는 디자인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해 현대의 제품들과의 비교도 시도하는데 이 역시 괜찮았어요. 답을 정해 놓고 끼워맞춘 감이 없지는 않지만, 실제로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많습니다. 한국형 비파형 청동검은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인 걸작품으로 고조선이 상당한 수준의 문명 국가였다는걸 증명해 준다는 등이 그러합니다. 신라의 누금세공 귀걸이도 저 큰걸 귀에 어떻게 걸지? 싶었었는데, 명주실을 꿰어 귀나 모자에 걸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찾아보니 기사도 있네요).

하지만 다소 억지섞인 주장도 없지는 않습니다. 쌍용총 속 벽화의 무인의 패션이 샤넬, 아르마니의 컨셉과 일치하는 시대를 앞서간 패션이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단지 무채색이라는 것 정도로는 논거가 부족합니다. 아래의 백제 허리띠처럼 실제로 꽤 감각적이고 멋드러진 형태라는걸 구체적으로 알려줬어야 했어요.
누구나 최고의 명품이라고 인정하는 금동대향로가 소개되는건 노력의 낭비가 아니었을까 싶고, 무엇보다도 저자의 의견이 과연 맞는지?에 대해서 증빙되지 못한다는 문제도 커 보였습니다.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료적인 근거는 거의 없다시피하거든요.

그래도 디자이너가 유뮬을 제품 관점에서 바라보았다는 책의 컨셉은 확실히 빼어납니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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