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가와 란포 파노라마 섬 기담 - 에도가와 란포 지음, 박용만 옮김, 이성규 감수/시간의물레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계획이 성공해서 고모다가 된 히토미는 고모다가의 돈을 이용하여 공상하던 자신의 유토피아를 실제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모다의 아내 치요코가 히토미의 정체를 눈치챘고, 히토미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살해할 결심을 굳히는데....
에도가와 란포의 대표작 중 한 편. 1926년에 발표된 비교적 초기작입니다. 중편 분량으로 히토미가 고모다가 되기 위해 벌이는 작전을 그린 전반부, 고모다의 재산으로 꿈꿔오던 유토피아를 만든 뒤 그곳을 아내 치요코와 둘러보는 후반부로 나뉩니다.
전반부는 꽤 재미있습니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이었던 변장, 자살로 위장하여 히토미 히로스케의 존재를 없앤 방법, 원래 있었던 고모다의 시체를 파낸 뒤 옆의 다른 묘에 묻어 은닉한 방법 등 모두 비교적 현실적이면서 정교하게 짜여져 있는 덕분입니다. 간질 발작으로 사망한 뒤 다시 살아난 사례를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설득력도 높고요. 에도가와 란포 특유의 공포심을 자아내는 묘사도 볼거리입니다. 특히 고모다의 시체를 파내는 장면에서 빛을 발합니다. 그렇잖아도 공포스러운 상황을 자극적으로 풀어나가는 솜씨는 역시다 싶더군요.
다만 아무런 조명도 없는 칠흙같은 밤에 무덤을 파내어 시체를 꺼낸 뒤 옆의 무덤에 파묻어 깜쪽같이 위장한다는건 실제로는 무척 어려웠을겁니다. 약간 부가적인 설명이 덧붙여졌더라면 좋았을겁니다.
반면 후반부의 유토피아(아마도 '파노라마 섬')를 치에코와 둘러보는 장황한 묘사는 별로였습니다. 상상력만큼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글로 풀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아래와 같이 그림이 곁들여지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니까요.
설득력도 낮습니다. 아무리 눈의 착각을 이용했다고 하더라도, 넓이 자체를 혼돈할 만큼의 조작을 자연 환경에서 구현했다는건 어림반푼어치도 없지요. 게다가 이 공간을 많은 사람들까지 고용하여 채웠다는건 더욱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숙식 및 기본 생활에 대한 설명이 전무한 탓입니다. 차라리 제목처럼 거대 파노라마를 만들었다고 하는게 말이 되었을겁니다.
치에코를 살해한 뒤 기둥에 숨겼는데, 이를 탐정 기타미 고고로(아마도 아케치 고고로?)에게 들킨 뒤 자살한다는 결말도 급작스러웠으며, 기타미 고고로가 고모다의 정체가 히토미라는걸 눈치챈건 히토미가 과거 습작처럼 투고했던 습작 때문이었다는건 억지스러웠어요. 쌍둥이처럼 닮았다는건 대학 동창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을테니, 이런 증거를 내세울 필요도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제 별점은 전반부만 따로 떼 보면 2.5점, 전체 통합해서는 2점입니다. 발표 당시 시점으로 본다면 볼만한 가치가 충분했겠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그할만한 가치는 없습니다. 다양한 상상력으로 구현한 이상한 공간들을 수없이 접한 시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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