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의 창자 -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내친구의서재 |
<<아래 리뷰에는 트릭, 진상 그리고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탐정 우라노 큐와 조수 와타루(별명 하라와타(창자))는 기묘한 화재 사건 조사를 위해 기지타니 마을로 향했다. 진범을 체포했지만, 우라노 큐는 상처로 죽고 말았다. 기지타니 마을에서 행해졌던 소나 의식 때문에 과거 흉악범들이 '인귀'로 부활했는데, 그 중 한 명에게 치명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저승에서 인귀들을 잡기 위해 과거의 명탐정 고조 린도를 우라노 큐의 몸에 부활시켰다. 고조 린도는 와타루와 함께 인귀들을 없애기 위해 활약하게 되는데...
2023년 국내 추리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화제였던 "명탐정의 제물"의 작가 시라이 도모유키의 신간입니다.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읽었습니다.
작가의 작품 중에서는 "명탐정의 제물"보다는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에 가깝습니다. 추리적인 장치가 엄청나게 많지만, 기본적으로 '특수 설정'이 바탕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그래도 망작에 가까왔던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특수 설정이 이야기의 핵심 장치로 작용하고는 있지만, 추리와 트릭은 특수 설정과 거리를 두고 비교적 합리적으로 설명되고 있는 덕분입니다. 딱 한 가지, 인귀가 상대를 물고 뜯어 타액과 피를 접촉하는 방법으로 혼을 옮길 수 있다는 특수 설정만 핵심 트릭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에요. 이 트릭도 정보 제공은 충분하고 나름대로 합리적이라 나쁘지 않았고요.
인귀들이 벌인 사건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일종의 연작 단편 형식이라 많은 사건이 등장하는데, 범인이 과거의 기억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인귀이기 때문에, 동기가 없어서 주어진 단서만 가지고 추리해야하기 때문에 '추리 퀴즈' 느낌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래처럼요.
1. 기지타니 마을 사찰 간노지 화재 사건.
Q : 청년 6명이 죽고 한 명이 중태에 빠졌다. 피해자들은 묶여 있지도 않았고 별다른 상처도 없었는데, 왜 화재 당시에 잠겨 있지도 않았던 본당에 머무른 채 죽음을 맞이했을까?
A : (우라노 큐의 추리) 방화를 이용하여 알리바이를 만든 뒤, 화재 현장에서 절도를 했던 자료관장 로쿠구루마 다카시가 범인이었다. 청년들은 마을에 원한이 있는 무나카타 다다시의 후손 스즈무라에게 이끌려 '인귀'를 불러내는 소나 의식에 동참한 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쓰러졌었다. 이를 본 로쿠구루마는 청년들 지갑을 훔친 뒤 그들에게 등유를 붇고 불을 붙이고 도주했다. 증거는 로쿠구루마가 최근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던 것 등.
2. 아예 사다 사건
Q : 1936년, 애인 이시모토를 살해하고 국부를 잘라 달아났던 아예 사다 사건의 진상은 무엇인가?
A : 80년 전, 이시모토를 살해했던건 명탐정 고조 린도였다. 원래 고조 린도를 끌어들여 살해하려던 이시모토와 아예 사다의 계획이었다. 아예 사다가 국부를 처음에 신문지로 감싸고 있었지만, 체포되었을 때 지저분한 잡지 종이로 감쌌던게 증거. 처음에 신문지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나중에 2층에 있던 이시모토로 부터 절단한 국부를 건네받다가 떨어트려 지저분해진걸 감추기 위해서였다.
3. 농약 콜라 사건
Q : 클럽 D-Mouse에서 독이 든 음료를 마신 손님들이 쓰러져 한 명이 죽고 세 명이 중태에 빠졌다. 범인은 현장을 촬영하던 '아리스'의 눈을 피해 어떻게 빠져나갔을까?
A : 범인은 사건 당시 술 취했던 친구를 부축해 주었던 '어깨녀'였다. 인귀 '체셔'가 미리 여자 하나를 술에 취하게 만든 뒤, 그녀에게 혼을 옮긴 뒤 죽은 '체셔'를 부축해서 옮기는 척을 했던 것이었다.
4.쓰케야마 사건
Q : 마을 자료관에 보관하고 있던 칼(마도 아카고코로시)을 손에 넣기 위해 자료관을 습격해 직원 니시나를 살해하고, 고조 린도에게도 중상을 입힌 무카이 도키오는 누구인가?
A (와타루의 추리) : 78년 전 무카이 도키오는 칼을 두 자루 준비했었다. 칼은 기지타니에서 마카타로 향하는 도중에 숨겨두었었다. 비가 오는 오늘, 산에 올라 커다란 짐을 짊어지고 내려온건 사냥꾼 이구치 미쓰오 뿐으로 그가 범인이다.
퀴즈들에 대한 증거, 단서는 모두 공정하게 제공되어 정답에 대한 설득력은 높습니다. 시라이 도모유키의 작품답게 퀴즈별로 함께 제시되는 '오답' 추리들도 볼거리입니다. 오답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1. 간노지 화재 사건에서 와타루의 오답 :
사건은 자연 재해였다. 사건 당일, 경내에 곰이 나타나 청년들은 창문이 없는 본당으로 이동했었다. 현장에 '오고령'이라는 종이 그걸 증명한다. 종으로 곰을 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실패해서 냄새로 곰을 쫓기 위해 몸에 등유를 끼얹었는데 하필 본당 화염보주에 벼락이 내리쳐 화재가 나 모두 죽고 말았다.
2, 쓰케야마 사건 :
와타루의 오답 : 무카이 도키오는 깨진 창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정면 입구를 이용했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지팡이가 떨어져 있었다. 즉, 창문으로 들어올 수 없고 지팡이를 사용하던 환자 스즈무라가 범인이다(칼을 손에 넣은 뒤 칼을 지팡이로 이용했다).
고조 린도의 오답 : 무카이 도키오가 정면 입구를 이용했던건 와타루들과 똑같이 통나무 다리가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료관 TV가 부서지지 않은걸 보면 범행 시각은 7시 이후이다. 이건 고조 린도가 습격당한 이후이므로, 범인은 자료관에서 칼을 손에 넣은게 아니었다. 칼은 와타루의 애인 미요코로부터 건네받았다. 미요코는 야쿠자 보스의 딸로 칼을 구하기 쉬웠다.
이런 사건들에 대한 추리 외에도 농약 콜라 사건 범인은 당시 증거를 보면 왼손잡이였는데 체셔는 그렇지 않았았기 때문에, 체셔는 보석점 세이긴도에 나타나 후생성 직원을 가장하여 직원들에게 독약을 먹인 사건의 범인이었다!라던가, 와타루가 어린 시절 히로세 순경에게 폭행당했다는걸 밝혀내는 우라노 큐의 추리, 아리스가 간호사로 대학 병원에서 일한다는걸 맞춘 방법에 대한 추리 등 전체적으로 소소한 추리들이 가득합니다. 모두 공정한 정보 제공 및 합리적 추리라는 본격물의 기본 전개를 잘 따르고 있고요.
과거 흉악범들이 소나 의식으로 '인귀'로 부활한다는 설정을 통해 예전 실제 범죄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치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모두 조금씩 각색되어 있는데, '아예 사다 사건'은 영화 "감각의 제국"으로 유명한 '아베 사다 사건'이 원조이고, '농약 콜라 사건'은 아마도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쓰케야마 사건은 "팔묘촌"에서도 인용했던 '츠야마 사건'이 원조일테고요. 하지만 이 설정이 유치하다는건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과거의 유명인이 부활해서 뭔가를 한다는건 너무나도 많으니까요.
설정에 바탕을 둔 이야기 전개도 대충 넘어가는게 너무 많아요. 대표적인게 모든 사람들이 '저 사람은 우라노 큐로 보이지만, 사실은 되살아난 고조 린도다'라는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경찰 고위 간부까지 이를 쉽게 믿는다는건 말도 안되지요. 와타루의 여자 친구 미요코의 아버지가 야쿠자 보스라는 것도 비현실적인 설정이었고요. 고조 린도 역시 독특함을 찾기 힘듭니다. 건방지고 철없는 천재 탐정의 스테레오 타입에 불과합니다.
추리적으로도 모두 좋은건 아닙니다. 추리를 정답에 끼워맞추고 있다는게 가장 큰 문제에요. 고조 린도를 살해하기 위해 국부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는 아예 사다 사건부터 황당하기 짝이 없어요. 이 논리면 '피를 많이 흘리고 죽은 척'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 상처 부위는 '국부'일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봐도 '국부를 자른다'가 '고조 린도를 죽인다'보다 앞 선에 있는 이유처럼 보이는데 이래서야 말이 안되지요. '괴상한 성적 취향'으로 대충 수습하고 넘어가기는 어렵습니다.
고조 린도의 추리도 억지가 많습니다. 아리스가 현장에 돌아왔다고 바로 그녀가 관계자라는걸 알아챈 것, 쓰케야마 사건에서 미요코가 공범이라고 추리한 것 등이 그러합니다. 고조 린도 대신 팬인 긴다이치 고스케를 부활시키기 위해 고조 린도를 죽이려 했다는 미요코의 동기부터가 설득력이 전무한 탓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추리'의 재미는 잘 살리고 있지만 단점도 많습니다. "명탐정의 제물"보다는 확실히 못했습니다. 만화로 각색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