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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7

영매탐정 조즈카 - 아이자와 사코 / 김수지 : 별점 2.5점

영매탐정 조즈카 - 6점
아이자와 사코 지음, 김수지 옮김/비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20회 본격미스터리대상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본격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등 온갖 상을 휩쓸고, 자주 가던 추리 소설 커뮤니티에도 극찬하는 분들이 많으시길래 구입해서 읽어본 작품. 아래의 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화. 우는 여자 살인>>
추리소설가 고게쓰는 대학 후배 구라모치 유이카의 부탁으로 영매 조즈카 히스이를 찾았다. 우는 여자에 관련된 이상한 꿈을 꾸었기 때문이었다. 조즈카는 조사를 위해 고게쓰와 함께 유이카의 자택에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유이카의 집을 찾은 둘은, 그녀의 시체를 발견했다. 조스카는 유이카의 혼을 자신에게 빙의시켜, 경찰에게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게 되는데...

<<2화. 수경장 살인>>
고게쓰는 조즈카와 함께 추리소설가 구로고시 아쓰시의 별장 '수경장'의 바비큐 파티에 초대되었다. 수경장에서 발생하는 심령현상의 조사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바비큐 파티가 있던 날 밤, 구로고시 아쓰시는 살해되었다. 조즈카는 범인이 벳쇼라는걸 영능력으로 알아냈지만, 경찰은 구로고시와 불륜 관계였던 신타니를 체포하고 말았다. 고게쓰는 유일한 단서였던 조즈카가 꾼 꿈을 토대로 범인이 벳쇼라는걸 경찰이 믿을 수 있을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데...

<<3화. 여고생 연쇄 교살 사건>>
고게쓰의 팬이라는 여고생 후지미 나쓰키가 자기 학교 여학생들이 살해된 사건 조사를 부탁했다. 고게쓰는 조즈카와 함께, 경찰의 도움을 얻어 사건 현장 및 학교를 방문해서 조사에 나섰다. 조즈카의 영시를 통해 범인이 여자 아이라는걸 알게 된 고게쓰는, 프로파일링을 지어내서 경찰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후지미 나쓰키까지 살해되고 마는데....

<<최종화. VS엘리미네이터>>
그런데 구성이 독특하네요. 1~3화는 각각 완성된 단편들인데, 네번째인 <<최종화. VS엘리미네이터>>를 통해 앞서 3개의 이야기를 뒤집는 반전과 앞에서 설명되지 않았던 여러가지 추리적인 장치들이 정리되고 소개되기 때문입니다.

장점이라면, 최근 본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본격 추리물이라는 점을 꼽고 싶습니다. 본격미스터리대상을 수상할 만 하더군요. 우선 조즈카가 영능력으로 얻은 정보를 통해 진범을 알아내고, 트릭을 밝혀내는 1~3화에서의 고게쓰의 추리와 활약은 꽤 설득력 있습니다. <<수경장 살인>>에서 조즈카의 꿈을 캐비닛 거울과 연결시켰던 추리, <<여고생 연쇄 교살 사건>>에서 나쓰키가 살해되었을 때 범인이 카메라에서 필름을 가져갔고, 렌즈캡을 떨어트렸던걸 단서로 하스미 아야코는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추리 등은 설득력이 높았거든요.
그러나 이 정도였다면 흔해빠진, 그냥저냥한 추리물 수준에 그쳤을거에요. 조즈카가 던져주는 단서가 워낙 명확해서 고게쓰가 대단한 명탐정일 필요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4화 덕분에 이 작품이 한 단계 수준을 뛰어넘는 완벽한 본격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4화에서 조즈카는 영매가 아니라, 천재 탐정으로 사건 현장을 쓱 보고 추리했던 걸, 영능력인양 고게쓰에게 단서를 던져주었다는게 밝혀지거든요 그리고 그녀는 앞서 세 건의 사건에서 그녀가 어떻게 모든걸 추리해 내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해주는데, 이 추리들이 정말 대박이었습니다. 합리적이며 설득력 있는건 물론, 모두 독자에게도 주어졌던 공정한 단서들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왠만한 고전 걸작 본격물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추리적 쾌감을 선사해주는 덕분입니다. 여고생 교살 사건에서 핵심 단서로 쓰였던 스카프 고리와 같은 디테일을 조즈카의 대사로 스쳐지나가듯 드러냈던 장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조즈카가 추리력을 선 보일 때 셜록 홈즈라던가, 일상계의 정의 같은 지식을 피로하는 것도 추리 소설 애호가로서 반가왔던 부분이고요.

하지만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아요. 우선 별로 새롭다는 느낌은 받기 어려웠어요. 1~3화 까지의 설정인, 영매가 영능력으로 탐정과 컴비를 이루어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는 쎄고 쎘으니까요. 귀신이 알려준 단서로 사건을 해결한다는건 이미 만화 <<카코와 가짜 탐정>>에서 써먹었었지요. 고전 <<싸이코메틀러 에지>>라던가, 미쓰다 신조의 <<사상학 탐정>> 도 비슷한 류일테고요.4화의 반전과 본격물로의 전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능력자로 알려진 순진한 미녀가 알고보니 추리력이 뛰어난 닳고 닳은 아가씨였다는건 <<영능력자 오다기리 쿄코의 거짓말>>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라고 하기 어려워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천사에서, 마지막에 정체가 밝혀지고 나서는 고게쓰를 저 위에서 내려다보며 비웃는, 닳고 닳은 건방진 아가씨로 변모한다는 조즈카 캐릭터도 오다기리 쿄코 판박이고요.

지나친 과장과 억지도 불만스럽습니다. 캐릭터부터 만화같아요. 어린 나이에 천재적인 영능력(?)과 추리력을 갖춘 절세의 미소녀 조즈카 캐릭터가 대표적입니다. 게다가 그녀가 영능력(?)을 발휘할 때의 과장된 연기, 고게쓰와의 알콩달콩한 로맨스 묘사는 읽으면서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였습니다. 작가의 묘사력이 영 부족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더군요.
일개 추리 소설가가 경찰과 협력한다는 편의적인 설정이야 본격물이니 그렇다고 쳐도, 현장을 쓱 보고 진상을 모두 추리해냈다는 것도 과장이 지나쳤습니다. 말로 설명하는데 50분이나 걸리는 추리를 단 몇 초만에 끝냈다는게 말이 될까요? 이 정도면 영능력보다 더한 초능력이지요. 추리도 설명은 그럴싸하지만, 결론에 단서를 끼워 맞춘 느낌도 강했고요. 대표적인 예는 2화입니다. 구로고시의 신작이 정확하게 몇 권 배달되었는지, 구로고시가 여분의 책을 가지고 있었는지와 구로고시 서재에 책을 따로 둘 곳이 없었다는 걸 잠깐의 관찰 후 추리하여 단정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에요. 이럴 바에야 그냥 뛰어난 영능력자라는게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겁니다.
그 외에, 고게쓰가 여대생 연쇄 살인마 쓰루오카 후미키였다는 것과 모든 사건이 마무리 된 이후를 그린 에필로그도 뻔하고, 억지스러운 사족에 불과했습니다. 여대생들을 칼로 찌르며 '아프지 않았지?'라고 물어보던 이유가 과거 누나를 잃은 트라우마 때문이었다는 동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애초에 설득력이 높다고 하기는 어려웠고요. 고게쓰에게 납치된 조즈카가 탈출하는 과정도 작위적이었습니다.

분명 좋은 평가를 받을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저에게는 일본 서브 컬쳐 특유의 과장된 묘사, 어디서 많이 보았던 뻔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설정들로 가득차 있다는 단점이 더 크게 느껴졌던 작품입니다. <<사쿠라코 씨 발밑에는 시체가 묻혀 있다>>와 별로 다르지 않은 느낌이에요. 추리 애호가라면 즐길거리가 많은, 잘 짜여진 본격물이기는 하나, 제게는 소문만큼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군요. 차라리 만화였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만화에 가깝게, 가볍게 쓰여진 작품이 먹히는걸 보면, 확실히 시대가 변하긴 변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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