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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4

사일런트 페이션트 - 알렉스 마이클리디스 / 남명성 : 별점 3점

사일런트 페이션트 - 6점
알렉스 마이클리디스 지음, 남명성 옮김/해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심리 상담사 테오 파버는 그로브 병원으로 직장을 옮겼다.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한 화가 앨리샤 치료를 맡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의자에 묶인 남편을 총으로 사살했고, 그 뒤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직 자화상인 <<알케스티스>>만 남겼을 뿐이었다. 앨리샤와의 첫 면담에서 그녀는 테오를 폭행했지만, 이윽고 그녀도 테오에게 마음을 열며 자신의 일기장을 건네주었다. 테오는 그녀의 형부인 맥스, 사촌인 폴, 친구인 장 펠릭스 등과 만나서 얻은 정보와 일기장 내용을 조합하여, 그녀의 정신병의 원인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냈던 교통사고에 있다는걸 알아냈다.
이런 치료를 통해 앨리샤는 다시 말문이 트였다. 그리고 테오에게 남편을 죽인 사람은 집을 감시하던 정체불명의 인물이라고 말해주었지만, 테오는 물론 병원장 디오메디스 교수 등 모두 그 말을 믿지 않았고, 앨리샤가 약물 과다 복용으로 혼수상태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나는데...

영국을 무대로 한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이자 서술 트릭이 사용된 추리물.
앨리샤 시점에서 사건 전부터 사건이 일어났을 때 까지를 보여주는 부분과, 테오 시점에서 테오가 앨리샤의 치료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 아내 캐시의 불륜을 알고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과정이 뒤섞여 전개되는데, 앨리샤의 일기는 사건 전부터이므로 과거 시점입니다. 당연히 독자들은 테오 시점의 묘사는 모두 현재라고 생각하게 되고요. 하지만 테오 시점의 묘사는 현재와 과거가 뒤섞여 있었다는게 사용된 서술 트릭의 핵심입니다. 테오가 앨리샤 치료를 위해 노력하는 부분만 현재에요. 아내 캐시의 불륜을 의심하다가 뒤를 밟고, 결국 불륜남의 집을 덮치는 이야기는 모두 앨리샤 일기와 동일한 과거 시점이지요. 그리고 앨리샤와 테오의 과거는 서로 만나게 된다는 반전으로 이어집니다! 즉, 엘리샤 일기 속 정체불명의 남자이자 진범은 테오였던거지요.
화자별로 병행 전개되는 이야기의 시간이 서로 다르다는걸 숨기다가, 마지막에 드러내면서 반전으로 이어지는건 <<이니시에이션 러브>>로, 한 명의 화자 시점의 이야기지만 시간이 다른 이야기 두 개가 진행되는 이야기라는건 <<통곡>>으로 이미 접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를 섞어서 진행하는 작품은 처음 읽어 봤네요. 전개가 절묘해서 독자가 쉽게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솜씨도 일품이었습니다. 트릭을 알고 나서 돌이켜보면, 두 이야기가 전혀 섞이지 않게끔 확실히 구분되어 있을 뿐더러, 캐시 이야기에서의 테오는 명백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는 식으로 나름 서술 트릭에 대한 단서도 제공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속을 수 밖에 없었어요.

또 남편에게 배신당한 뒤 말을 잃은 알케스티스 공주 이야기는 단순히 상징인줄 알았는데, 그게 앨리샤에게 실제로 닥쳤던 일이었다는 진상도 꽤 그럴싸했습니다. 테오는 앨리샤의 남편 가브리엘이 아내 캐시의 불륜남이라고 확신하고, 집을 덥쳐서 앨리샤와 가브리엘을 포박한 뒤 가브리엘에게 누굴 살릴 것인지 선택하라고 했지요. 이 때 가브리엘이 자기를 살려달라고 이야기한게 앨리샤의 과거 - 어머니와 함께 타고 가던 차가 사고가 나서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가 앨리샤가 죽었어야 했다고 절규했던 - 상처를 헤집어 폭발시켰던 겁니다. 그래서 테오가 사랑을 비웃으며 떠난 뒤, 앨리샤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죽이고 가브리엘도 죽인거지요.
맥스, 폴, 장 펠릭스 등 앨리샤 주변 인물들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는게 하나씩 밝혀지는 앨리샤의 일기 내용도 흥미를 더해주는 요소였습니다. 앨리샤가 테오를 처음 만났을 때 공격했던 이유는, 테오가 침입자였다는걸 알았기 때문이라는 내용은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고요.

하지만 조금 과장된 심리 묘사와 비정상적인 등장인물들이 많다는건 아쉽네요. 두 화자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주변 인물들 (특히 앨리샤) 모두 수상하고, 비정상적입니다.
앨리샤의 일기도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며 흥미를 더해주는건 맞지만, 그냥 읽으면 혼란스러워요. 명백한 사실은 테오가 앨리샤 집을 감시하다가 침입해서 사건을 일으킨 것 뿐입니다. 그 외의 내용들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를 잘 모르겠거든요. 증거도 일기 외에는 전무하고요. 피해망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일기를 읽고 당사자들을 찾아가서 추궁하는 테오에게 거의 모두가 사실을 털어놓는다는건 작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앨리샤를 치료했던 적이 있다고 일기장에 쓰여있다며 테오가 크리스티안을 추궁할 때 처럼요. 크리스티안은 그로브에서 앨리샤 치료를 맡은 정신과 의사입니다. 앨리샤가 자신이 아는 정신과 의사 이름을 대고 거짓말을 할 가능성은 왜 생각해보지 않은걸까요? 테오야 지은 죄가 있으니 앨리샤의 모든 증언을 믿는다 쳐도, 병원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그걸 믿을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침입한 이후 가브리엘을 죽인게 테오인지 앨리샤인지, 캐시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건 맞는지, 그 불륜 상대남이 가브리엘이 확실한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테오의 심리 상태도 극히 불안하고, 마리화나도 피우는 탓에 1인칭 시점 묘사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무리이니까요.

테오가 앨리샤의 입을 막기 위해 약물 과다 복용을 위장하여 피하 주사를 놓아 죽이려 했다는 결말도 석연치 않습니다. 앞서 테오가 이끌어 내었던 앨리샤의 증언 - "앨리샤는 범인이 아니고, 그 집을 감시하던 정체불명의 침입자가 범인" - 은 디오메디스 교수 등을 통해 부정됩니다. 그냥 봐도 제 정신으로 한 증언으로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정신병이 있는 환자의 이 정도 증언따위가 테오에게 위협이 될 수 있었을까요? 게다가 이 증언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정체불명의 침입자가 테오라고 주장한다는건 인정될리 없습니다.
뭐 앨리샤의 말문이 트인게 위협이라고 생각되어 살의를 품었을 수는 있습니다만... 구태여 피하 주사 자국을 찾았다는걸 밝힐 필요는 없었습니다. 약물 과다 복용으로 자살했다고 누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타살이라는걸 부각시켜 얻을게 별로 없지요. 혐의를 크리스티안에게 뒤집어 씌운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어요. 크리스티안이 과거 앨리샤를 진료했다는걸 숨겼다는게 살인 동기라는데, 이를 증명하는건 모두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앨리샤의 증언과 일기장은 실체는 남아 있지 않았고, 오로지 테오의 증언만 있는 상황에서 크리스티안을 옭아매는건 무리였다 생각됩니다.
앨런 형사가 일기장을 찾았다며 테오를 찾아와 그가 범인이라는 페이지를 읽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앨리샤의 몇 안되는 짐에서 일기장을 찾지 못하고 경찰에게 빌미를 준 테오의 행동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이 일기가 증거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거든요. 그녀의 증언은 이미 정신과 의사들이 모두 거짓이라고 말했는데, 일기가 진실일 이유는 없잖아요. 일기는 굉장히 설득력있게, 잘 정리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일기 전체가 거대한 거짓말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최소한 테오가 범인이라는걸 밝히기에는 많이 부족했어요. "열심히 치료해 주었는데, 뒷통수를 맞았다!"고 주장한다면, 그런 테오의 주장을 뒤집긴 힘들었을겁니다.
캐시가 연극도 포기하고, 정크 푸드만 먹는 돼지가 되었다는 결말도 불륜남 가브리엘이 죽은 탓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설명되지 않아 답답했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 너무 비정상적인 심리 묘사가 많고, 결말이 석연치 않아 감점하지만 아이디어도 좋고 전개도 일품인 만큼, 색다른 추리 스릴러를 찾으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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