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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2

왕의 밥상 - 함규진 : 별점 3점

왕의 밥상 - 6점 함규진 지음/21세기북스

부제는 '밥상으로 보는 조선왕조사'.
제목처럼 조선 시대 왕들이 먹었던 식사와 관련된 많은 정보들을 알려주는 미시사. 문화사 서적입니다.

조선시대 역대 왕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했는지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는데, 이를 통해 여러가지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알 수 있었습니다. 브리아 샤바랭이 말했던 "Dis-moi ce que tu manges, je te dirai ce que tu es. 네가 먹는 게 무언지 말해주면 네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마" 가 허언이 아니라는걸 새삼 깨달았네요.
대표적인게 세조의 예입니다. 세조는 술을 좋아하고 주량이 남달랐다고 하니까요.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호전적인 성격답습니다. 종친 중 가장 어른으로 영향력이 상당했던 양녕대군이 수양대군 편에 섰던 이유도, 호탕하게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천하의 호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니, 술을 좋아한게 긍정적으로 작용한, 역사에서 보기 드문 한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성종도 식사를 통해 할아버지 세조와 다른 점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성종은 수랏상 음식 양이나 반찬 가짓수를 줄이는 철선과 감선을 자주 했다는 점에서, 문치주의를 국정 기조로 삼았던 학구적인 왕이었다는게 드러나니까요. 그런데 성종이 서병이라는 병을 고질적으로 앓았던게 문제였습니다. 서병에는 찬 음식이 독과 같아서, 검소한 식단을 구성하고 물 말은 밥을 많이 먹은게 명을 재촉했던 거지요. 할아버지처럼 술은 좋아했고, 여색도 심하게 탐해서 병치레도 잦았고요.
성종의 아들 연산군은 그 식탐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조선, 소고기 맛에 빠지다>>에서 소고기는 대부분 더 이상 농사에 도움을 줄 수 없는 늙은 소의 고기였다고 하는데 연산군은 소의 태아를 즐겨먹었다고 하니까요. 연산군의 강했던 왕권도 새삼 느껴졌습니다. 덕분에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요.
연산군에 대해 반정을 일으켜 집권한 중종은, 당연히 왕권도 약해서 연산군만큼 막 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사슴 꼬리나 노루 새끼, 사슴의 혀와 같은 진미는 포기하지 못했다니, 식탐만큼은 이복형 못지 않았던 셈입니다.
광해군은 편식이 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네요. 이를 통해 독선적이고 고집이 셌다고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 중간이 없었던 셈인데, 그래서 당파간 세력 다툼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게 아닐까요?
효종은 북벌을 결심했던 만큼 무인 기질이 강했고, 그래서인지 술을 좋아했고 식탐이 많았다는 사료가 많습니다. 세조 스타일인 셈입니다.
영조는 장수와 오랜 집권 기간을 누린 군주답게, 철선과 감선도 정치적으로 활용했다는게 재미있네요. 왕이 스스로를 학대하는 것 처럼 보여서 신하들이 알아서 기게 만든거지요. 절대 왕권을 내세우거나, 특정 당파를 밀어주는게 아니라 신하들이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참으로 현명했다 싶어요. 게다가 이 철선과 감선이 과식을 막고, 결과적으로 장수를 누리게 했기에 정말로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반면 정조는 영조의 밥상 정치를 흉내내었지만 건강도 함께 챙긴 할아버지의 현명함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감선하면서 업무의 강도는 그대로였으며 편식도 심해서 건강을 해쳤고, 이씨 왕조 핏줄답게 술은 좋아했던데다가 담배까지 즐겨서 결국 천수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정조의 아들 순조는 아버지와는 다르게 담배는 백해무익하다고 멀리했지만, 매독으로 사망한걸 보면 여색을 탐한 것으로 보이고요.
고종 때에는 외국 문물이 들어와 마구 섞이고, 왕실 권위가 떨어져 궁중 법도도 흔들렸던 시기라 여러 문제가 있었습니다. 고종이 돌이 든 밥을 먹다가 이빨이 부러지는 사고까지 있었다니 놀랍네요. 고종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다는데, 직계가 아닌 탓이었을까요? 조금 궁금합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볼 때, 식탐이 있었고 술을 좋아했으며 여색을 탐했던 왕들이 많은데 확실히 피는 못 속이나 보네요.

이러한 왕의 밥상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설명 뒤에는 실제 왕의 수랏상에 올랐던 여러가지 음식에 대한 소개가 이어집니다. 단순한 수랏상 소개를 넘어서서, 언제 어떤 요리를 먹었는지, 음양오행과 의식동원의 원리는 무엇인지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어서 자료적 가치가 아주 높아요. 조선 왕들은 그렇게 화려한 음식을 먹지 않았다는 건 새롭게 다가왔고요. 곰발바닥, 제비집같은 희귀한 재료도 없고, 세간에서는 못 먹고 왕만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유밀과 정도만 사치를 금하는 의미에서 민간에서 먹지 못하게 했을 뿐이거든요.
이유는? 나라가 가난했던 탓은 아닙니다. <<청성잡기>>나 <<전집>> 등의 사료에서 한양의 양반 대가들이 사치스러운 요리를 먹는 행태를 알려주고 있는걸 보면 말이죠. 저자는 그 이유를 조선의 궁중 요리 조리법에서 찾고 있습니다. 사치스러운 재료보다는 정성스럽게 만든, 요리사들의 손이 무척 많이 가면서, 재료들의 맛이 조화를 이루게 만든 평범한 음식이 조선의 궁중요리이기 때문이라면서요. 평범하면서도 은근하게 멋스러운, 조선백자의 아름다움과 일맥상통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의식동원에 대한 설명은 지나친 감이 있네요. 그냥 논문 한 편을 수록해 놓은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왕의 밥상에 사용되기는 했지만, 의식동원 자체는 왕의 밥상을 통해 관련된 역사를 논한다는 취지와는 동떨어진 내용이었고요.
그래도 독특한 미시사 서적으로 재미와 자료적 가치도 모두 높은 좋은 책이라는걸 부정할만한 단점은 아닙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다큐멘터리 영상물로 제작된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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