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로 딸과 함께 본 홍콩 영화는 "무간도"입니다. 느와르의 탈을 쓴 무협지 "영웅본색", 느와르인줄 알았던 멜로물 "천장지구"를 봤으니 이젠 정말 제대로 된 홍콩 느와르를 볼 차례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는 다시 봐도 여전히 탄탄했습니다. 경찰 내부에 잠입한 조폭 스파이, 반대로 조직에 잠입한 경찰,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내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두뇌 싸움을 그린 각본과 절제된 연출, 그리고 유덕화와 양조위의 대립은 지금 보아도 흠잡을 데 없이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초반이라는 시점에도 불구하고 촌스러운 느낌 없이 도시적이고 세련된 영상미도 빼어나고요.
덕분에 저는 끝까지 몰입하며 보았는데, 딸 아이의 반응은 이전 작품들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별로 재미없어 하더라고요. 두 남자 외에도 조직과 경찰, 또 다른 스파이의 존재 등이 계속 얽히는 식으로 이야기가 복잡한 탓으로, 숏폼 세대에게는 어려웠던 듯 합니다.
게다가 지금 세대에는 이처럼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임무에 충실하거나, 조직에 충성하거나, 정체성을 지키는 인물들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희생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결말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요. 확실히 이런 정통 홍콩 느와르의 정서는 21세기 소녀인 딸에게는 별로 와 닿는 점이 없을테지요.
그래서 이번 "무간도"가, 딸과 함께하는 홍콩 영화 감상의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마침 딸아이가 "귀멸의 칼날" TV 시리즈를 보기 시작했으니, 몇 달 간은 다른 걸 볼 여유도 없네요. 딸과 함께 한 시간이 좋았는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귀멸의 칼날" 감상이 끝날 때 함께 볼 영화를 지금부터 고민해 봐야 겠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