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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8

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 - 마사키 도시카 / 이정민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시청 앞에서 노숙자 여성 마쓰나미 이쿠코가 살해당했는데, 그녀의 지문이 1년 4개월 전 지바현에서 살해된 히가시야마 요시하루의 가방에서 검출된 지문과 일치한다는게 밝혀졌다. 이쿠코의 과거 행적 수사를 통해, 그녀가 요시하루를 살해한 뒤 도쿄로 도주하여 노숙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공무원이었던 요시하루가 이쿠코의 생활보호지원금 지급을 거절했던게 동기였다.
하지만 경시청의 ‘파스칼’이라 불리는 순간 기억 능력자, 미쓰야 슈헤이는 주변 인물들의 진술을 분석하며 사건 이면의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데...

이 작품은 마사키 도시카의 장편 소설로, 경시청 미쓰야 슈헤이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전통적인 본격 추리나 수사물이라기보다는, 사회파 추리 소설에 더 가깝습니다.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는 마쓰나미 부부의 실직을 계기로 한 장년층 빈곤 문제입니다. 부부에게 닥친 경제적 어려움과 이를 무시하는 공무원의 행태는 직접적인 사건의 동기는 아니지만, 중요한 배경이 되지요. 보호가 필요한 시민에 대한 공무원의 무관심이라는 설정은 나카야마 시치리의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두 번째는 SNS를 통한 허상의 행복 이미지에 중독된 현대인의 문제입니다. 행복해 보이려는 욕망과 실제 삶의 괴리, 그로 인해 놓쳐버리는 진짜 삶의 가치가 이야기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 현실과도 맞닿아 있어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이외에도 빈곤 부부를 노린 사기, 부부간 불화와 히키코모리가 된 자식과 같은 사회 문제들이 단편적으로 등장합니다.

사회적 문제와 엮이는 이야기도 볼만합니다. 이쿠코는 남편이 무리한 노동 끝에 사고사한 뒤, 행복해 보이는 히가시야마 부부를 원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상 히가시야마 부부는 SNS와 주변 시선에 얽매여 행복한 부부인 척을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후 아내 리사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요시하루가 딸 루미나를 자신의 친딸이 아니라 여겨 성적으로 접근하려 했고, 이에 충격을 받은 루미나가 그를 살해했으며 이 장면을 몰래 지켜보던 이쿠코가 루미나를 돕기 위해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고 도주했다는 진상으로 이어지는 전개도 깔끔합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이쿠코가 노숙자 소년인 줄 알았던 ‘에이군’이 사실은 루미나였다는 반전도 괜찮았고요.

수사 과정에서 순간 기억 능력자 미쓰야 슈헤이의 관찰력도 잘 활용됩니다. 리사는 SNS 중독자였고, 노숙자 신분이 된 이쿠코를 도와준 이들은 이자와 유스케, 다카하시 형제, 그리고 루미나였다는 사실을 몇몇 사소한 상황의 관찰로만 추리해내는 덕분입니다.
초반부의 토끼 인형으로 일부러 가린 가족 사진이나 집 바깥에 꾸며놓은 꽃꽂이 장식, 그리고 중반 이후 햄버거 가게에서의 손님들 관찰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요시하루 사건과 이쿠코 사건 모두 우연이 지나치게 많다는 단점은 큽니다. 이쿠코가 미행한 날 우연히 루미나가 요시하루를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거나, 크리스마스 이브에 전남편의 무관심에 분노한 기무라 나루미가 이자와 유스케를 몰래 따라가 이쿠코와 마주치고 격분한 끝에 그녀를 살해한다는건 모두 과한 우연이라 억지스럽게 느껴집니다.
이자와 유스케가 사실은 이쿠코 남편의 사고를 일으킨 트럭 운전사였고, 다카하시 형제가 이쿠코 남편을 빚쟁이로 만든 회사 사장의 아들들이라는 설정 역시 마찬가지에요. 인물들을 어떻게든 얽어놓으려는 시도가 지나쳤습니다.
이자와의 전처 나루미가 이쿠코 사건의 범인이라는 사실도 이자와 유스케의 동선과 SNS에 올라온 크리스마스 케이크 사진이라는 간접적인 증거를 통해 밝혀지는데, 이마저도 운에 가까운 단서에 의존한 것이고요. 

추리물로서의 완성도 역시 아쉽습니다. 미쓰야 슈헤이의 관찰력은 몇몇 장면에서 돋보이지만, 이를 통해 밝혀지는 사실들은 사건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탓입니다. 예를 들어 리사가 SNS 중독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는건 작품 분량만 소비했을 뿐, 사건 해결과는 무관합니다. 이자와, 다카하시 형제, 루미나가 서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실제 범행과 직접 관련이 없고요. 그들이 범행 현장을 훼손(?)한 것도 일부러는 아니며, 범인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도 아니었기에 추리적인 재미를 느낄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이렇게 미쓰야의 관찰력을 강조하려는 설정은 실제 사건 해결 과정에 효과적으로 녹아들지 못해서 분량 낭비에 불과하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이자와 유스케의 아들이 히키코모리라는 설정, 다카하시 형제의 등장도 분량 낭비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다카하시 형제가 건물 관리 업무를 통해 이쿠코의 은신을 도왔다는 설명은 있지만, 굳이 그런 인물들이 필요했는지 의문입니다.

어머니가 살해당했던 과거사가 있는 순간 기억 능력자 미쓰야에 대한 설정과 기계같은 언행 묘사도 별로입니다.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어서 현실감을 느끼기 어려웠던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볼 만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닌데, 뚜렷한 장점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별로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이 시리즈도 더 볼 일은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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