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받지 못한 사람들 -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성미 옮김/북플라자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건 복지 사무소 과장 미쿠모가 납치되고 보름 후, 결박당해 아사(餓死)한 시체로 발견된다. 참혹한 범행 방식을 볼 때 원한 관계가 의심되나 피해자는 직장 내, 외적으로 인격자로 모든 이의 존경을 받고 있던 인물이었다. 수사에 난항을 겪던 경찰 앞에 두 번째 아사 시체가 발견된다. 피해자 조노우치 타케루는 지방 의회 의원으로 살해 방식을 비롯하여 모든 점에서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였다.
때문에 피해자들의 접점을 찾던 경찰 도마시노와 하스다는 그들이 8년 전, 한 지방 보건 복지 사무소에서 함께 근무했었다는 걸 알아낸다. 8년 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으며, 범인은 누구인가?
"호의라든가 배려라는 건, 일대일로 주고받는 게 아니야. 해준 일에 감사했다면 너도 똑같이 낯선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면 돼. 그런 일들이 점점 퍼지고 퍼져 세상은 점점 좋아지는거야." - 케이
비교적 재미있게 읽었던 범죄 스릴러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저자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 화끈한 범죄 스릴러를 기대했는데 고전적인 정통 사회파 범죄 소설이더군요.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 때문에 사건이 일어나고, 트릭보다는 "동기" 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물론 <<개구리 남자>>도 형법 39조의 모순을 다룬 사회파 추리, 범죄 소설이었죠. 사회적인 이슈를 전면으로 다루면서도 진범이 아닌 사람을 1인칭에 가깝게 묘사하여 진범처럼 내세우는 전개, 그리고 진범이 따로 있다는 반전도 <<개구리 남자>>와 완전히 똑같아요.
하지만 <<개구리 남자>>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추리, 범죄보다 사회 고발 쪽에 훨씬 큰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에서 고발하는건 기초 생활 수급자와 생활 보조금 관련 문제인데 정말 철저하게, 그리고 처절하게 다루고 있거든요.
특히나 아사(餓死)라는 살해 방식을 선택한 이유인 8년전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압권입니다. 생활 보조금이 너무나도 필요했던, 그야말로 죽기 일보 직전의 케이 할머니의 서류 접수를 피해자들이 거절해서 할머니가 굶어 죽는 사건이 주요 관계자인 도네 카스하시 시점으로 처절하게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마지막에 먹은 건 역전 앞에서 무료로 나누어주는 휴지였다니 말 다했죠. 또 원인이자 사건의 동기인 피해자들의 말도 안되는 탁상 행정에 대한 묘사는 실제 생활 보조금 지급이 얼마나 부실하게 관리되는지를 재고하게 만들며, 또한 독자도 함께 분노하게 해 줍니다.
이와 함께 예산 부족과 노령층 인구 등 기초 생활 수급자의 급격한 증가로 철저한 심사가 필요하다는 현실을 수사 과정에 결합해서 전개하는 장면도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생활 보조금 지급 대상자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설득력을 더 해 주고요. 희미하게 시큼하고, 희미하게 달달하다는 '가난의 냄새' 묘사에서 시작하여 생활 보조금 지급에 대한 불법 행위라던가 기초 생활 수급자들의 절규가 눈 앞에서 보는 듯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는 덕분이죠. 정말 자료 조사를 철저하게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너무 사회 고발 쪽 비중이 큰 탓에 추리, 범죄물로는 점수를 줄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애초에 추리라는건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경찰의 수사만 있을 뿐이죠. 게다가 도네 카스하시가 범인이 아니고 마루야마 스가오가 범인이었다는 반전은 급작스러울 뿐 아니라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케이 할머니 사망 당시 중학생이었던 마루야마 스가오가 증오를 품고 있다가 8년 뒤 범행을 벌인 이유가 대체 뭘까요? 게다가 본인 스스로 생활 보조금 지급 업무를 진행하게 되었다면, 더더욱 피해자들의 불가피한 사정도 알았을텐데 말이죠. 그들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법률적으로 하자는 없는 행동이었으니까요. 이렇게 억지스럽게 반전을 집어넣느니 도네가 범인인 도서 추리물 형태로 구성하는게 더 깔끔하고 명확했을겁니다. 정 간짱이 필요했다면 케이 할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불쌍한 사람을 돕는 착한 어른이 됐다 정도면 괜찮을텐데 말이죠. 캐릭터에게 급격한 변화를 주는게 작가의 특기 같은데, 좋아보이지는 않는군요.
추리적으로 건질게 없다면 범죄물로의 가치라도 있어야 할텐데 역시나 함량 미달입니다. 초반, 자신의 족적을 숨기기 위해 사이즈 범위가 넓고 바닥 무늬가 없는 슬리퍼를 신었다는 디테일 정도만 볼만하며 그 외에는 전부 대충 넘기고 있거든요. 납치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미쿠모 과장의 경우는 마루야마 스가오가 부하 직원이라 방심했을테니 납치가 용이했다 치더라도, 두번째 피해자 조노우치, 세번째 피해자 (가 될 뻔한) 가미사키를 쉽게 납치한 방법은 전혀 설명되지 않아요.
이야기 전개의 핵심인 도네의 행동도 이해되지 않는건 마찬가지입니다. 대표적인게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공항에서 변장한 도네를 경찰이 체포하는 장면입니다. 도네의 목적은 마루야마의 범행을 막기 위해 가미사키를 공항에서 납치하려 했다는건데 이게 말이나 됩니까? 공항에서 경찰과 대치하느니 마루야마의 뒤를 쫓아 범행을 막는게 훨씬 현실적이잖아요. 이야기 속에서 도네가 진범이 아니라는걸 너무 작위적으로 숨기고 있는 것도 문제고요.
마지막으로, 휴지를 먹다 죽어간 케이 할머니의 죽음이라는 동기는 처절하지만 나름 수입이 있었던 도네가 단지 '찾아뵙지 못해서' 할머니가 아사한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송금을 하거나, 배달을 시키거나 하는 등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여러가지 방법이 있었을텐데 말이죠. 작 중에서도 설명되지만 '누군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생활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되는데, 도네는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게다가 누가 보아도 할머니는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이를 두고 출장을 갔다는건 도네 역시 할머니 죽음을 방조했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할머니 사망 후 무려 10년 형을 받을 정도로 폭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역시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에요. 복수보다는 속죄를 해야 하지 않았나 생각 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얼마전 아베 총리가 이야기한,' 노후 자금으로 2억이 필요하다'는게 충분히 이해가 될 정도로 사회파 소설로의 가치는 높지만 추리, 범죄물로는 점수를 줄 여지가 없어서 감점합니다. 생활 보조금 관련된 이슈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읽어보셔도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시다면 딱히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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