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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2

탐정영화 - 아비코 다케마루 / 권일영 : 별점 3점

탐정영화 - 6점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포레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사 FMW의 대표이자 귀재로 소문난 영화감독 오야나기가 촬영 중인 최고의 추리 영화의 결말 촬영을 앞두고 실종된다. 영화사 직원과 스태프, 그리고 이 감독의 영화라는 투자까지 한 여섯 명의 배우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이고, 다급해진 스태프들은 감독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지만 아무런 실마리도 얻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감독이 찍어놓은 96분 분량의 필름을 전제로 범인을 추리해 영화를 완성하려 한다. 여섯 명의 배우와 세 명의 조감독, 그 밖의 스태프들은 십 분 남짓한 영화의 결말을 찍기 위해 시나리오 콘테스트를 열고, 누가 범인이어야 가장 그럴듯한 영화가 될지 고심한다. 그리고 제출된 시나리오들의 결함을 지적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 시나리오를 선정하고 영화 촬영을 마치는데...


아비코 다케마루의 장편소설. 데뷔 이듬해에 썼다고 하는 비교적 초기작입니다.

결말을 모르는 상태에서 궁지에 몰린 스탭들이 스스로 결말을 짜내는 핵심 줄거리처럼 출연자와 제작진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추리가 펼쳐지는 전개가 인상적으로 동호인들끼리의 추리게임 같기도 합니다. 결말 직전까지만 감상하고 그것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낸다는 점에서 말이죠. 이런 점은 <독 초콜릿 사건>의 판박이기도 하죠. 미완성 영화의 결말을 추리해야 한다는 설정도 동일한 소재를 가지고 풀어낸 빙과 시리즈인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와 같고요. 하지만 읽다 보니 전개와 과정은 <허무에의 제물>과 같은 안티 미스터리의 느낌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이런 결말은 어떤가요?"라는 결말이 이어지는 <5인의 탐정가>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미스터리 영화를 완성하는 과정이 이야기의 핵심이니 광의의 의미로 볼때에는 작가 후기에 쓰여진 대로 메타 미스터리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작품들이 떠오르지만 다행히 작품의 독특함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유는 "영화"라는 소재에 굉장히 충실하기 때문이에요. 특히 초반에 화자인 다치하라 (나) 가 출연진들과 이야기하면서 영화에 사용된 서술트릭에 대해 설을 푸는 장면이 괜찮았으며 그 외에도 영화관련 정보들이 곳곳에 삽입되는 것이 그럴 듯 했습니다. 정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썼구나 싶을 정도로 말이죠. 추리적으로도 여러 관점에서의 재미있는 트릭들이 등장해서 풍성함을 전해주는 장점에 더하여 진짜 트릭인 극적인 서술트릭 - 첫 장면은 시점적으로는 영화 속 내용이 모두 흘러간 다음의 일이다 - 은 분명 기발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어 만족스럽습니다. 소설로도 가능하겠지만 첫 장면과 똑같은 화면에서 이야기가 이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영화"라는 장르에 아주 특화되어 있는 트릭이라 다른 데에서는 흉내내기도 힘들다는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그 외에도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에서 문제로 지적했던, 결말을 창작해내야 하는 상황의 설득력이 높았던 것도 좋았습니다. 출연자들이 결말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피력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로 설득력이 높았어요. 자기가 "범인"이어야 영화에서의 비중이 높아지니 어떻게는 자기를 범인으로 만드는 각본을 들고 온다는 것인데 와 닿을 수 밖에 없죠.

하지만 작품 속 추리는 진상이라고 부를 것이 없는 픽션의 영역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출연진이나 제작진 누구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찍더라도 작중에 표현된 대로 "가장 그럴듯"하면 되는 것일 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야부이 센조가 밖에서 사기누마 준코의 방문을 잠그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것도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고요.
그리고 감독의 의도대로 편집, 완성된 결과물은 앞서 언급한대로 트릭 자체는 기발하나 그닥 공정하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렵기는 했습니다. 외부에서 모든 제작 과정을 지켜본 "독자"라면 수긍할만 하지만 이 영화를 처음 접하는 "관객" 입장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반쯤은 반칙이라 여길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관객이라면 사기누마 준코가 죽는 시점에서 다쓰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무리한 서술 트릭을 사용하는 것 보다는 주인공 다치하라 (나) 의 아이디어나 배우 야부우치 젠조의 아이디어가 더 낫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아울러 감독의 실종이라는 상황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라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픽션이기 때문에 가능했지 감독이 원하는 대로 흘러갔으리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최소한 조감독 한명 정도는 사긴의 의도를 알려줘서 의도대로 움직이게끔 하는 공작이 추가로 설명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앞서 말씀드린 다양한 추리가 펼쳐지게 만드는 아이디어는 좋았으며 작가의 초기작답게 젊은 청춘들의 알콩달콩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에서도 좋았던 시절의 행복하고 따스한 이야기라 생각되고요. 추리소설 입문자분들께 추천하고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이런 작품을 쓴 작가가 <살육에 이르는 병>을 쓰다니 믿어지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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