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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3

소름 - 로스 맥도널드 / 김명남 : 별점 4점

소름 - 8점
로스 맥도날드 지음, 김명남 옮김/엘릭시르

"소름" - 로스 맥도널드 / 강영길 : 별점 4.5점

하드보일드 삼대장의 한 명인 로스 맥도널드의 걸작입니다. 이미 십년도 더 전에 동서문화사 동서추리문고 출간본으로 읽어보았지만, 이번에 엘릭시르에서 재출간되었기에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별점 4.5점을 주었는데, 다시 읽어도 흥미롭더군요. 확실히 걸작은 걸작이에요. 범인과 진상을 알고 읽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색다른 재미가 느껴졌습니다. 루 아처가 단서를 하나씩 짚어나가며 20년 전과 10년 전 사건을 거슬러 올라가는 수사가 마지막에 어떻게 범인으로 연결되는지 더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읽는 터라 단점도 제법 눈에 띄었습니다. 우선 범인이 피해자들에게 경고 전화를 하고 방문해 살해한다는 설정이 그렇습니다.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행위인데, 정작 이유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헬렌과 로라 서덜랜드에게만 한 것도 이상해요. 콘스탄스에게는 왜 하지 않았을까요? 모든 것이 드러난 상황이라 체포되기 딱 좋은 마지막 순간에 굳이 "내가 너 죽이러 갈게"라고 전화를 한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전화를 제외하더라도 범행이 지나치게 운에 의지한 부분이 많다는 약점도 있습니다. 헬렌 사건만 해도 루 아처가 그곳에 남아있지 않았던 건 우연이고, 저드슨 폴리가 조금만 빨리 방문했어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요.

또한 범인 티시가 로라 서덜랜드를 어느 시점에서든 살해했다면 사건은 사실상 거기서 끝입니다. 헬렌이 살아있었다면 진상을 폭로했을 것이고, 먼저 죽었다 하더라도 티시가 빠져나가기는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경찰 수사가 제대로 시작되면 로라 서덜랜드 살인 동기는 브래드쇼 부인에게 있다는 점이 밝혀졌을 테니 이야기는 끝이죠. 주요 용의자인 돌리, 맥기 모두 구류 상태였으니까요. 헬렌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맥기를 범인으로 몰기는 어려웠고, 아처가 수사기관에 저드슨에 대한 정보만 제공했어도 그를 옭아매어 헬렌이 누군가를 협박했음을 끌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여간, 사립탐정들은 공권력의 적이에요.
하여튼, 이런 이유들로 인하여 아처가 티시의 정체를 깨닫는 반전의 힘은 강하지만, 사건 해결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이미 사건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요.

그 외에도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묘사나 설정이 분량을 제법 차지하는 점이 아쉽습니다. 예를 들어 헬렌이 창녀와 다름없었다는 증언이 대표적입니다. 과거 사건으로 아버지에게 심한 말을 한 것도 그때뿐이었고, 결국 그녀가 로이 브래드쇼 협박범이 되었다는 점은 씁쓸합니다. 팜므파탈도 아니고 피해자도 아닌 어정쩡한 포지션으로 캐릭터가 애매해지고 말았어요. 차라리 돌리처럼 어린 시절 겪었던 덜로니 사건의 트라우마를 간직한 인물로 설정하는 편이 더 좋았을겁니다.

마지막으로 덜로니 부인이 동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산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로이 브래드쇼의 재산은 결국 부인의 재산이고, 합리적으로 재산이 이동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흔적이 있었을 텐데 이를 전혀 모를 수는 없지요. 또 사건을 덮기 위해 능력을 동원한 덜로니 부인이 동생 티시의 사망증명서를 미리 떼어놓은 것도 이해하기 어려워요. 덜로니 사건은 자살로 종결되었으니 조작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사망증명서는 재혼을 계획하는 로이 브래드쇼에게만 좋은 일이었으니까요.

이렇게 쓰다 보니 단점만 잔뜩 언급하게 되었지만, 걸작인 것은 분명합니다. 서정적이면서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 많다는 점에서는 독보적입니다. 맥기를 감옥의 무게에 짓눌린 성자로 묘사한다든가, 협박범에 불과한 헬렌에 대해 가엾음을 느끼는 아처의 모습이 대표적입니다. 남자는 첫 결혼에 신중해야 하고, 여자가 더 빨리 늙는다는 교훈을 마음 깊이 새기게 해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단지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는 정도입니다.

언제 읽어도 여전한 흥분과 재미를 주는, 제 All-time best 10에 늘 포함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 아직 읽지 않으신 분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번역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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