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역사 속 부정부패 스캔들 - 변광석 지음/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역사 속 부정부패 스캔들이라고 해서 정말 이슈가 될 만한 사례들을 모아 놓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호기심에 구입한 책입니다.
그러나 그런 저의 기대와는 거리가 있더군요. 제목 그대로, 비리의 종합선물세트인 인물 아홉 명이 소개되기는 합니다만 부정부패가 당연시되는 인물들을 가지고 '스캔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거든요. 책에도 나오듯, 기준은 애매하나 청백리가 조선왕조 역사상 200명이 되지 않습니다. 이래서야 거의 모든 관리가 부정부패를 저질렀다는 이야기인데, 하물며 무신정변기 정중부의 사위 송유인, 중종반정의 핵심 공신이었던 박원종, 역관으로 거액을 모은 부자였을 뿐더러 원자를 낳은 희빈 장씨의 아버지 장현과 오빠 장희재, 매국노 민영휘와 이지용 등 권력을 손에 쥔 이들이 부정부패를 저지른건 당연합니다. 또 충혜왕은 엄연히 왕이기에 폭군이나 악군으로 묘사할 수는 있어도 부정부패한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어차피 왕이라면 나라가 자기 것이니까요.
그래도 사료를 충실히 반영한 여러 디테일은 제법 볼 만합니다. 비교적 잘 알려진 역사이지만 잘 몰랐던 인물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특히 흥미롭습니다. 고려 말 대표적 간신 염흥방이 조반을 무고하였다가 된서리를 맞고, 조반은 이성계의 개국공신이 되었다는 것 처럼요.
조선 태종의 공신으로 세종 때까지 세력을 유지한 조말생이 대표적으로 대형 비리사건에 연루되었는데, 불법으로 받은 뇌물이 80관 이상이면 교형에 처해지던 시기에 무려 그 10배를 편취하고도 왕들이 적극적으로 사면을 도왔다는 대목도 인상 깊었어요. 책에서는 조말생이 그만큼 대단한 업무 능력이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지는 의문이네요.
그 외에도 중종반정의 킹메이커 세 명(박원종, 유순정, 성희안)이 모두 요절 혹은 비명횡사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순조 때 곡산부사 박종신의 부정부패 행각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눈에 띕니다. 부자, 상인층뿐 아니라 빈민과 영세민에게까지 예외 없이 수탈을 자행하고, 엄하게 다스려 100여 명의 주민이 죽었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농민 봉기 후에도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니, 이래서야 돈을 안 뜯어내면 바보라는 시대가 맞긴 맞았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근대의 매국노 민영휘에 대한 기록은 자료적으로 유용한 정보가 많았습니다. 근대를 무대로 한 창작물을 몇 가지 준비하고 있기에 더욱 관심이 갔는데, 꽤 도움이 되었던 부분입니다. 1917년 민영휘의 총 재산이 5~600만 원 정도로 이는 지금의 6~7천억 원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나마도 추정 불가능한 재산은 제외한 수치라니 놀랍습니다. 이후 한일은행을 경영하며 기업인으로 변신해 더 큰 부를 축적하였고, 그의 사후인 1936년 "삼천리" 기사에 따르면 총재산은 1,200~1,300만 원으로 추정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약 1조 5천억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이와 함께 민씨 가문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매국행위를 저질렀는지도 상당히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조선의 국모로 알려진 명성황후도 사실 자신의 가문을 위해서만 행동한 매국 일파의 일원이었다는 점에서 기황후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결론도 인상적입니다. 하긴 고종부터가 매관매직에 앞장섰다고 하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갔을 리가 없겠지요.
그래도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제목에서 기대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감점하지만, 이런 류의 책치고는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과 책의 기획 의도는 마음에 듭니다. 다른 주제로 출간된 시리즈도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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