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5/09/16

데인 가의 저주 - 대실 해밋 / 구세희 : 별점 1.5점

데인 가의 저주 - 4점 대실 해밋 지음, 구세희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콘티넨털 탐정 사무소에 소속된 '나'는 도난당한 다이아몬드를 찾아 달라는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레게트 가를 방문한다. 에드거 레게트의 딸 가브리엘을 알게 된 나는 그녀가 아버지를 증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다이아몬드 사건의 수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용의자로 지목되던 남자들이 살해당하고 레게트 본인마저 자살하면서 레게트 가에 감춰져 있던 충격적인 내막이 드러나는데… 과연 악몽같은 사건들의 연속은 '데인 가의 저주'에서 비롯된 것인가? (출판사 책 소개 인용)


대실 해밋 전집 두번째로 출간된 작품. 컨티넨털 탐정사의 이름없는 탐정이 주인공인 시리즈입니다. 첫번째 작품은 유명한 <붉은 수확>입니다만, 아주 오래전 (대학교 3학년 쯤 되었을 때인 20여년 전, 당시 거주하던 인천 동네 문방구 서점에서 구입!) 일신 추리문고 시리즈로 읽어보았기에 이 작품부터 읽게 되었네요. <붉은 수확>의 두께를 보니 제가 예전에 읽었던 버젼은 일어 중역일뿐만이 아니라 내용 자체가 좀 축약되고 줄어들었으리라는 확신이 들지만, 뭐 읽긴 읽은거니까요.
<붉은 수확>도 좋은 작품이지만 <몰타의 매>가 워낙에 걸작이니만큼 꽤 큰 기대를 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단편 <쿠비날 섬의 약탈> 역시 재미있게 읽었었고 말이죠.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솔직히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어요.
일단 제목만 보면 막장 가문이 등장하는 일본 고전 추리물 느낌인데 정작 내용은 그렇지 않습니다. "데인가"의 딸 가브리엘의 주변에서 수많은 살인사건들이 벌어지기는 하지만 애초에 근거도 없고 애매한, 게다가 가브리엘의 의도는 하나도 없는 상황일 뿐이에요. 이걸 "데인가의 저주"라고 묶는 것 자체가 문제죠. 가브리엘도 뭔가 있어보이게끔 생김새까지 제대로 묘사하지만 정체는 불쌍한 어린양에 불과해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주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김성모 화백의 만화를 보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막나간다는 점이죠.

그나마 1부라 할 수 있는 레게트 (메이엔) 부부의 죽음까지는 읽을만 합니다. 앨리스가 가브리엘이 어렸을 때부터 벌인, 광기어린 복수극이 꽤 그럴싸하게 펼쳐지니까요.
물론 미쳐도 너무 미쳤다 싶은 광기는 과했으며, 레게트가 아내 살해의 누명을 쓰고 투옥된 후 겪은 - 프랑스에서 베네수엘라와 멕시코, 미국에 이르는 -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이 너무 황당해서 그닥 설득력있게 다가오지는 않는 단점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이 정도면 그냥저냥 무난하고 읽을만한 하드보일드로 평작 정도는 됩니다.

허나 가브리엘이 치료를 위해 사이비 종교단체라 할 수 있는 성배의 사원에 머무르게 되는 2부부터는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황당한 이야기의 연속입니다. 사이비 종교단체의 비밀이 가스와 최면 효과를 이용한 과학적인 사기였다는 진상만큼은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데인가의 저주"와 엮어서 이야기를 전개한게 문제랄까요.
또한 아무리 최면술이 강하다 하더라도 미니가 리스를 죽이게 된 것 처럼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조종한다던가, 조셉이 스스로 신이 된 착각에 빠진다는 류의 설정부터 영 와닿지 않네요. 조셉이 아내 에레니아를 죽이려는 이유도 미쳤다는 것으로 끝내기에는 설명이 부족하고요. 사실 1부도 그랬지만 그냥 "미쳤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합리적으로 만드려는 작가의 고민없는 전개도 볼썽사나웠어요.
범행들도 하나같이 허술해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뭘 이렇게 거하고 어렵게 사건을 일으키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제가 조셉 할던이었으면 차라리 정면으로 쳐들어가서 죽이고 신도들을 자신의 최면술과 카리스마로 입막음을 했을겁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3부, 가브리엘의 남편 에릭이 죽은 후의 이야기는 막 나가는 전개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에릭의 시체가 발견된 후 가브리엘이 사라지고, 그녀가 용의자로 의심을 받는 와중에 갑자기 경찰서장 코튼의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으며, 불륜 상대인 하비가 용의자로 급부상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다다르는 과정도 급작스러운데, 불륜 상대 하비의 알리바이를 코튼 부인이 증명하는 황당한 상황에 더해 코튼이 그를 범인으로 만드려고 현장을 조작하는 등의 개막장 스토리가 펼쳐지니 제가 대한민국의 일일연속극을 보고 있는 건지, 하드보일드 3대 거장 중 한명의 하드보일드 장편을 읽고 있는건지 아주 혼란스럽더라고요.
마지막에 시체가 따뜻했다는 이유로 코튼을 진범으로 체포하는 결말 정도만이 이 작품이 그래도 하드보일드 추리물이구나 싶은 요소였습니다만... 추리물로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즉흥적인 전개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마지막 4부는 결말이 밝혀지는 대단원인데 앞의 개막장 이야기를 어떻게든 하나로 엮으려는 시도가 펼쳐집니다. 이를 위해 그동안 상상도 못했던 인물인 작가 오웬 피츠스테판이 진정한 흑막으로 등장하죠. 허나 설득력을 갖추었다 보기에는 어려운 뜬금없는 결말일 뿐더러 작가가 피츠스테판을 흑막으로 만들기 위해 1부, 2부, 3부의 사건을 하나로 엮는 억지스러움에는 눈물이 날 정도였어요.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 1부 - 피츠스테판도 데인가의 후손이다! 이렇게 해서 앨리스와 엮죠 (불륜 관계였다는 설정도 살짝 포함)
  • 2부 - 에레니아 할던과 불륜 관계였다! 
  • 3부 - 범인 하비는 사실 죠셉 할던 밑에서 일하던 핑크의 양아들이었다! 그래서 에레니아를 통해 조종이 가능했다!
... 이게 당쵀 뭔지 싶습니다.

아울러 피츠스테판을 괴물처럼 묘사하려는 시도 역시도 실패작이에요. 무엇보다도 피츠스테판의 모든 범행은 운에 의지한 즉흥적인 범죄들이 대부분이라 한번 걸리니 증인들이 속출해서 모든 사건에서 범인으로 밝혀지게 되니까요. 애초에 피츠스테판이 사건에 개입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으로 "나"가 과거의 인연으로 본격적인 사건 조사 전에 방문한 것이 시작이니 피츠스테판이 뭔가 작전을 짜는 등의 시도를 할 이유나 여유가 없기도 하고요.

그리고 주인공 탐정이 가브리엘을 보살피는 과정은 왜 들어갔는지 그 이유도 좀 궁금합니다. 여주인공의 마약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는 주인공이라... 뭔가 차도남같은 이미지를 만들어주려 한 것 같은데 여러모로 어색하고 안 어울렸어요. 하드보일드 주인공이라면 따뜻한 보살핌이 아니라 구타와 감금으로 마약을 끊게 만들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콘티넨털 탐정 사무소에 소속된 주인공 탐정이 나름 묵직하게 묘사된 점과, 그나마 가브리엘이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결말 정도는 괜찮지만 그 외에는 딱히 읽을 가치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하드보일드 장편들이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단점인 복잡한 인간관계를 극단적으로 활용해서 작위적인 이야기를 만든 아이디어는 그럴듯합니만 전개가 너무 막장이었어요. 이야기 하나하나는 앞서 말씀드린대로 괜찮은 것도 있는 만큼, 차라리 하나하나를 단편으로 발표하는게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이번 독서의 유일한 가치는 작가의 대표적으로 <몰타의 매>와 <붉은 수확>만 거론되는 이유를 알려준다는 점 뿐이군요. 전집은 3,4권으로 이어지기는 하지만 더 읽어볼 필요가 전혀 느껴지지 않네요. 차라리 <붉은 수확>이나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