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를 뜨겁게 달구었던 화제작. 영화보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뒤늦게 감상하게 되었네요. 줄거리는 익히 잘 알려져 있으니 생략하겠습니다.
만화 원작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확실히 B급 향취가 가득하더군요.
특히나 한국인이라면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을 정도로 흔해빠진 무협지의 얼개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습니다. 생명의 은인의 아들을 거두어 제자로 삼은 무림 고수가 죽은 뒤, 제자가 사부의 복수에 나선다는 전형적인 이야기니까요.
여기에 더해 나름 심각한 내용임에도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고 B급 정서를 유지한 것도 좋은 선택이었어요. 마지막 머리가 그야말로 "폭죽처럼" 터지는 묘사, 핀란드 공주의 "뒤로 해줄께" 발언 같은 것이 그 중 백미라고 할 수 있겠죠.
동네 찌질이 에그시가 첩보원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대체로 건너뛰고 철저하게 액션에 집중한 감독의 선택도 나쁘지 않습니다. 혹독한 훈련을 거쳤을 테니 당연히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되었을 것이다라는 건 관객도 당연히 아는 상식일테니까요. 그래도 이 정도로 설명이 없는 것은 드문 케이스이긴 한데 이야기에 크게 지장을 주지는 않는게 신기했어요. 그동안 히어로, 주인공의 성장에 러닝타임의 많은 비중을 할애했고, 그래서 실패했던 영화들도 있는데 정말 발상의 전환이랄까요?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 최고의 매력 포인트는 콜린 퍼스가 연기하는 갤러해드 해리 하트 캐릭터죠. 젠틀맨이 무엇인지 눈빛에서부터 보여주는데 정말로 역대급이에요. 절대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액션도 놀라운 수준으로 선보이고요. 딘 일당을 쓸어버리는 펍에서의 액션도 좋지만 교회에서 광기에 가득찬채 살육을 벌이는 시퀀스는 놀라울 정도로 황홀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해 주더군요. 비록 최후가 좀 시시하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역사에 길이 남을 멋진 모습이었다 생각되네요.
구태여 비교하자면 <스타워즈>의 오비완급이었달까요? <스타워즈>의 프리퀄 작품들처럼 젊은 시절의 해리가 주인공인 프리퀄이 나와도 좋겠다 싶더군요. 배우도 너무나 마음에 드니 아주 오래전 이야기는 아닌걸로. 벽에 붙어있던 날들의 작전 중 하나여도 괜찮겠고 말이죠. (* 방법은 알 수 없지만 후속편에 콜린 퍼스의 해리를 계속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마이클 케인이 킹스맨의 수장 아서로 등장하는 것도 마음에 든 점입니다. 뼈 속까지 영국인 같은 인물들이 젠틀맨으로 연기해주니 어찌 마음에 안 들 수가 있겠어요? 죽을 때가 되니 쌍욕을 하는 것도 독특한 반전매력을 선사해줍니다. 이렇게 친숙한 영국인 배우들이 등장하니 휴 그랜트도 카메오, 아니면 처음에 죽는 란슬롯 역으로 출연해주었더라면 하는 바램이 살짝 생기기도 하더군요.
그 외에 "첩보 영화"의 왕도와도 같은 다양한 특수 무기들이 선보이는 것, 중간중간에 고전 첩보영화 (007?)을 언급하는 유머도 고전 영화 팬으로 좋았던 부분이고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멀린의 해킹으로 모든 위기가 대부분 해결된다는 것이죠. 너무 손쉬운 전개라 기가 막힐 정도였습니다. 이정도 해킹에 대비도 하지 않은 발렌타인이 폭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싶을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이래서야 해리는 대체 왜 죽은건지....
또 록시의 활약이 미미하다는 것도 아쉽더군요. 초중반부의 비중에 비하면 마지막 모습은 이럴 바에야 구태여 등장할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솔직히 핀란드 공주보다도 비중이 없어보여요. 이래서야 분량과 캐릭터의 낭비죠.
허나 장점이 워낙에 확실한, 즐거움 가득한 영화이기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이야기는 헛점 투성이에 유머, 잔혹함의 정도가 과하지만 이상하게 즐겁고 재미있는, 제 취향에는 딱 맞는 영화였습니다. 인생 뭐 있습니까. 보면서 즐기면 그게 최고죠. 후속작이 나온다는데 아주아주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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